차근욱의 Radio Bebop (143) - 놀아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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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 (143) - 놀아야 산다!
  • 차근욱
  • 승인 2017.06.27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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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공단기 강사

철없던 대학 시내기 시절, 신이 나서 부르던 노래 때문에 어머니께 혼이 났던 적이 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로 시작하는 ‘노래가락 차차차’라는 노래였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은 못 노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얼시구 절시구 차차차, 지화자 좋구나 차차차
화란춘성 만화방창,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간 아들 녀석이 젊어서 놀자는 노래를 신나게 부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어머니께서는 아마도 걱정이 되셨으리라. 그래서 여튼, 혼이 났다. 어머니 말씀의 요지는, ‘이제 막 대학생이 되었으면 어떻게 열심히 살지 생각을 해야지, 벌써부터 놀아 제끼자는 노래나 불러서 뭐가 되려고 그러느냐.’라는 말씀이셨는데, 워낙 흥겨운 노래였던 탓에 갑자기 비장한 분위기 속 죽일 놈이 된 나는 뭔가 좀 머쓱하기도 했고 억울하기도 했다. 그래봤자 그냥 웃자고 부른 노래 한 자락인데... 하면서.

처음 혼이 나고 나서는 어머니의 말씀이 귓가에 남아 어떻게 하면 건설적인 인생을 살 것인가에 대해 늘 고민하기도 했지만, 가끔은 좀 이상하기도 했다. 노는 건 죄악인가? 싶어서.

이러한 의문에 대해서는 최근에 들어서야 나름의 답을 찾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노는 건’ 잘못이 아니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잘 노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라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서 논다는 것은 주야장창 허송세월을 보내며 유흥을 즐기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끔찍하고 징그러운 것이 유흥 좋아하는 아저씨들과 보내는 술자리이니까.

내가 아는 논다는 것은, 삶의 무게와 마음의 긴장을 내려놓고 느긋하게 시간의 유속을 즐기는 것을 의미한다. 그 과정은 혼자라도 좋고 여럿이라도 좋다. 마음 맞는 친구만 있다면야 조용한 것도 좋고 다소 시끌벅적한 것도 좋다. 단지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를 뿐, 기본적으로는 무언가에 쫓기지 않고 그 순간에 집중하며 긴장을 풀어내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창의적 아이디어는 무언가 아이디어를 짜내겠다고 억지로 고심에 고심을 더할 때 보다는 하릴없이 느긋한 시간을 보낼 때 떠오를 가능성이 더 높다. 너무 일! 일! 일! 일! 만을 외친다고 해서 결과가 나오지만은 않는다. 세상만사, 너무 조이기만 하면 끊어지는 법이 아닌가. 사람이란 욕망에 눈 멀어버리면 맹점으로 어두워져 버리기 마련이다, 게다가 쉬지 않고 일만을 한다면 피로가 누적되어 효율성은 계속 떨어져 나중에는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도 몸만 축나고 시간만 보내는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사실은 조금 다 내려놓고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면서 새로운 자극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틀을 깰 때 비로소 아주 조금이라도 성장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다보니 더 일을 잘하기 위해서, 더 자신의 역할을 잘하기 위해서 쉬기도 해야 한다. 어설프게 노는 사람보다 가치있게 잘 노는 사람이 잘 사는 이유는 아마 여기에 있으리라.

어려서는 ‘논다’는 것에 강박관념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을 뭔가 근사하게 보내야 한다는 압박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논다’라고 하면 누군가를 만나서 뭔가 유명한 곳에 가서 시끌벅적 화려하게 놀아야 한다고도 생각했던 것 같다. 정말 철이 없어도 유분수지. 그게 어디 휴식이고 노는 건가, 또 다른 일이 되어버리는 게지.

그렇게 속된 기준에 맞춘 노는 일을 생각 하다 보니 제대로 놀아보지도 못했다. 나는 유명한 곳에 갈 형편도 못되었고, 누군가 만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화려한 것과는 거리가 먼 인간인지라, 논다는 일의 화려함에 대한 동경만이 남았다.

그렇게 한참을 돌고 돌아, 이제는 꼬마 티를 조금은 벗고 나서야 정말 논다는 것이 어떤 것이고 휴식이란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알게 된 것일지 모르겠다는 기분이 들었다.

한동안 몸도 마음도 조금 지쳤다. 그래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지만 일정상 그러지 못했다. 무언가 목구멍까지 차올라 왔지만, 그저 삼켰다. 하지만 이제 조금이라도 내게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책 창고에 틀어박혀 놀리라. 무위도식하는 사람처럼, 실컷 늦잠을 자고 일어나 눈을 비비고 또 책을 보며 뒹굴 거리리라.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이 책을 읽다가 저 책을 읽고 그것도 지겨워지면 운동을 하러 나가서 숨이 터지도록 달리고 땀을 흘리리라. 재미없는 인생 따위, 누가 바란다더냐.

어딘가에 가야만 노는 것이 아니고 무엇을 해야만 노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정말 맡은 일을 잘 해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휴식이 필요하고, 잘 놀아야 일도 잘 할 수 있다는 것도 이제야 알게 되었다. 화려하게 노는 것이 아니어도 마음 편한 나만의 시간과 공간이 얼마나 자신을 키우고 위로하는지를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놀아야 한다. 무의미하고 허무하게 노는 것이 아니라 빛나게 놀아야 한다. 젊어서 책도 보고 고민하고 운동하며 신나게 놀아야 한다. 늙어지면 바빠서 못 할 테니. 허망한 환상을 찾아 노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자신다운 휴식으로 자신을 키워나가야 한다. 그렇게 놀고 노래하고 행복할 때, 비로소 새로운 세상이 보이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찾아온다. 평소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실들을 깨닫고 성장할 수 있다. 가끔은 한 걸음 떨어져서야 보이는 풍경도 있는 법이다. 세상은 일만으로는 발전할 수 없다. 일과 함께 여유도 필요하고 놀이도 필요하다. 그래야 더 잘 살 수 있다.

마음부자가 되기 위해 놀자. 자신을 추스를 수 있도록 스스로 격려하고 다독일 수 있도록 따스히 쉬자. 오만함과 상스러움으로 악취 나는 놀이 말고, 정말 파란 하늘같이 성성하게 푸르디 푸른, 청춘답게 후회 없이 찬란히 놀자.

내가 갓 스무 살이 될 무렵 신나게 불렀던 그 노래는 아마 그런 뜻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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