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중단, 가치재판, 관행 등에 대한 법철학의 설명은?
상태바
연명의료중단, 가치재판, 관행 등에 대한 법철학의 설명은?
  • 김주미 기자
  • 승인 2017.06.21 18: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법철학회 춘계학술대회서 조명
현대 법철학의 최신 동향에 따라...

[법률저널=김주미 기자] 법학의 일부이자 철학의 일부인 법철학은 ‘법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통해 법의 근원과 나아갈 목표를 밝히는 학문’이라 정의된다.

이러한 법철학에서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연명의료중단, 헌재와 법원의 가치 재판, 규범성을 갖는 관행 등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까.

지난 17일 한국법철학회(회장 김도균)와 이화여자대학교 생명의료법연구소(소장 장영민)는 ‘현대 법철학의 최신 동향’이라는 주제로 춘계학술대회를 가졌다.

이 날 학술대회에서는 총 5가지 주제가 다루어진바 △자율성 역량 모델의 법적 적용 가능성(서울대 송윤진) △동의의 구조와 본질(이화여대 김휘원) △가치와 규범의 격위와 권리 문제의 해결(서울대 이민열) △아르스로서의 법(이화여대 박지윤) △관행의 규범성(서울대 이현경) 등이다.

이 중 특히 송윤진 박사, 이민열 변호사, 이현경 박사의 발제로부터 연명의료중단, 가치재판, 관행 등에 대한 법철학적 견해를 들을 수 있었다.
 

▲ 장영민 전 법철학회 회장이자 이화여대 생명의료법연구소 소장이 환영사를 하고 있다. / 이화여대 제공

‘자율성’ 개념 재해석에 따른 고찰,
연명의료중단 결정에 적용해보니...

송윤진 박사에 따르면 ‘자율성’이라는 용어는 ‘도시의 정치적 자립성’을 설명하기 위해 가장 처음 사용됐다.

이것이 점차 인간에게 유추적용되면서 자율성이 인간의 한 속성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는데, 그 배경에는 서구 유럽을 중심으로 한 근대화가 있다.

오늘날 자율성 담론은 대체로 인간의 속성과 연관되는 개인의 자율성에 집중되고 있다. 이러한 개인적 자율성 개념은 구체적 개인의 ‘자기결정성’에 보다 주목한다.

그러나 송박사는 이 같은 ‘자기결정성’이 도덕적 자율성에서 요구하는 극대화된 인간의 보편적 이성능력의 수준을 대폭 낮추었다고 지적한다.

‘자율성’ 문제를 최소한의 규범적 성찰을 통한 ‘개인의 합리적 성찰능력’ 혹은 ‘자기반성능력’의 문제로 치환했다는 것.

송박사는 “오늘날처럼 자율성을 협의의 자기결정 즉 의사결정능력으로 이해할 경우 인간이 결정을 내리는 상황의 다양한 변수들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은 간과되기 쉽다”고 꼬집었다.

개인의 의사결정능력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으며 결정자가 처한 상황적 변수들에 따라 변화할 수 있기에 인식적 능력만을 강조하는 자율성 개념은 전환이 요구된다는 주장이다.

또 ‘합리적 성찰능력’을 중심으로 하는 오늘날 자율성 논의는 ‘합리성’이 무엇인가를 규명하는 과정에서 매우 절차적인 특성을 보인다는 문제도 제기했다.

합리성의 ‘내용’ 판단은 각자 개인의 몫으로만 맡긴 채 개인이 스스로 판단해 결정했다는 ‘형식’에만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송윤진 박사는 ‘자율성 역량 모델(Autonomy Capability Model)’이라는 새 개념을 주장했다.

이는 문자 그대로 ‘자율성’과 ‘역량’을 조합한 용어로서, 그녀는 이를 통해 오늘날 이해되고 있는 ‘자율성’ 개념에 대한 인식론적 전환과 의미의 확장을 시도했다.

이 개념의 이론적 기초로는 관계적 자율성론에 대한 비판적 인식에 더하여 역량 이론을 그 배경으로 적용했다.

송 박사는 이러한 ‘자율성 역량 모델’의 함의를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종래 관점과 다르게 설정(공동체의 적극적 협력) ▲개인과 공동체 간 협력적 상호신뢰 구축 필요성 ▲후견주의를 재해석해 개인과 공동체의 배타적 관계를 극복하고 상호협력적 관계로 구상 ▲자율성에 대한 자유권적 담론과 사회권적 담론을 연결하는 교량 역할(자기결정권의 사회권적 성격) 등으로 정리했다.

나아가 이 자율성 역량 모델을 이른바 하드케이스들에 적용해보기도 했다. 연명의료중단결정, 장기기증의 의사결정, 여성의 낙태 결정 등 주체가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쉽게 내리기 어려운 경우들이다.

특별히 연명의료중단결정에 대하여 그녀는 “연명의료결정에서 중요하게 강조되는 역량의 요소는 ‘생명’으로, 의학적·윤리적·법적·개인적·가족관계적 요소들과 환자의 생명이 총체적으로 연결된 이러한 하드케이스를 푸는 데 있어 협소한 자기결정권 개념은 아무런 실질적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따라서 ‘누가’ 결정을 내리는가보다 ‘어떻게’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으며, 결론적으로 개인의 의사가 반영됐는가 아닌가의 여부를 단편적으로 찾기보다 개인이 구체적 상황에 직면해서 보다 인격적인 방식으로 존중받는가의 측면인 ‘과정’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법기구의 역할, 가치재판은 아니다”

이민열 변호사는 ‘법해석의 많은 사안들이 궁극적으로는 가치판단의 문제’라는 명제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가치의 형량이란 공적으로 외재화하여 표현되지 못하는 사적인 성격을 가지며, 저마다 어떤 법익이 더 중대한가에 대한 직관이 다르기 때문에 규범과는 격위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각자의 정신적 감각, 즉 의미있게 외재화할 수 없는 감각의 비중인 가치형량을 근거로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결국 자의적인 사적 감각을 근거로 공적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보였다.

그는 이 같은 ‘가치와 규범’의 혼용현상에 맞서는 이론적 시도로써 크게 다섯 가지 점에 대해 논증했다.

△가치와 규범은 행위를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상이한 논리적 속성을 갖는 하나의 이유(reason)들이다 △규범논증은 ‘관계위반검사’라는 독특한 논증의 형식을 갖지만 가치 논증은 그렇지 않다 △법적 권리 문제해결에서 규범 논거는 가치 논거에 대해 우선성을 갖는다 △가치는 법규범의 정립에서 규범 구체화 등의 역할을 한다 △규범해석을 할 때 가치에 관한 판단을 새로이 하여 규범을 뒤집는 것은 규범의 존재이유에 반한다 등이다.

이 변호사는 법원이나 헌재가 가치재판을 하게 될 경우 권리는 단지 특정한 가치들을 추구하기 위한 임시적 도구의 지위에 그치게 되며, 그 지위의 보장은 전적으로 어떤 가치 균형을 관철시킬 것이라는 목적론적 사고방식에 의해 결정된다고 지적했다.

즉 자유와 같은 권리가 부 혹은 전통문화 계승 등과 같은 가치와 나란히 놓여져 그때그때 보존될 수도, 희생될 수도 있는 헌법상 명령으로 전락한다는 설명이다.

이 변호사는 “규범들이 형성하고 있는 통합된 체계에 내재한 구성원들의 관계를 오롯이 구현하는 것이 법해석의 중핵이며, 법원과 헌재는 그러한 규범을 다루는 곳”이라며 “그러한 관계들의 통합된 체계를 위반하는 방식으로 가치논의를 끌어들임으로써 직접 권리의 내용을 조형하는 입법자가 되는 것은 사법기구의 역할이 아니”라고 말했다.
 

▲ 사진 이화여대 제공

‘관행’이 무엇이길래...

이현경 박사는 ‘법학적 관행 이론’을 들고 나왔다. 상가권리금 수수 관행에서 비롯된 2009년 용산참사, 의료계의 오랜 관행으로부터 빚어진 보라매병원 사건과 연대세브란스 김할머니 사건, 잘못된 관행으로 온 국민을 울게 만든 세월호 참사까지, 모두 ‘관행’이 문제된 사건이라는 인식에서다.

그녀는 “정작 관행이 무엇인지를 물으면 누구도 쉽사리 답을 주지 못한다”며 “우리가 접하는 수많은 분쟁들은 결국 관행에 대한 다양한 인식 불일치를 방증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관행이란 이제 우리의 일상생활 뿐만 아니라 본격적인 법적 문제의 장 한가운데 들어와 있음을 알 수 있다”며 관행의 규범성에 대한 담론을 개념분석적 차원, 정당화 차원, 평가적 차원 등 크게 세 차원에서 접근했다.

그녀는 먼저 개념분석적 차원에서 ‘관행 정식을 충족한 진성관행은 특별한 종류의 규범’이라고 밝혔다. 다음 정당화 차원에서는 ‘관행은 규범적 위계를 가지며 관행규범성의 원천은 다층적 논변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끝으로 평가적 차원에서는 ‘진성관행은 추정적 효력이 있지만 나쁜관행의 경우 그 효력이 부인되며 준수 의무가 없다’는 점을 논했다.

이 같은 고찰을 바탕으로 이 박사는 “관행이란 합리적 주체가 공동의 조정 혹은 협력 문제에 직면하여 실천적인 추론 과정을 통해 수렴된 균형점으로서, 명시적인 합의나 약속이 없이도 행위자들 간의 사회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고 자율적으로 존속하는 묵시적인 규범적 질서”라고 정리했다.

즉 ‘실천됨을 존재론적 기반으로 삼는 특별한 사회적 규칙으로서 그 자체의 메커니즘 상 참여자에게 행위이유를 제공하고 행위를 향도하며 준수의무를 창출할 수 있는 규범’이라는 것이다.

이 박사는 자신의 ‘법학적 관행 이론’이 “기존에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유지되어 왔던 특정질서에 대하여, 관행으로서의 존재나 효력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측과 그것의 불합리나 부조리를 근거로 효력을 부인하는 측 양쪽 모두가 균형있게 참조가능한 이론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