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eop'(142) - 혼삼을 부탁해
상태바
차근욱의 'Radio Bebeop'(142) - 혼삼을 부탁해
  • 차근욱
  • 승인 2017.06.20 18: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차근욱 공단기 강사

뭐 진정한 ‘혼밥러’는 혼자 고기를 구워먹는 단계라고들 이야기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게 뭐 그리 대수야,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혼자 고기를 구워먹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혼자 고기를 구워먹는 것은 생각보다 즐겁다.

여러 사람이 고기를 구워먹을 때의 광경을 묘사해 보자면, 나름 서열에 따른 역할분담이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관계를 중요시 하는 우리네 문화에서 여러 사람이 고기를 구워먹게 될 때에는 대부분 가장 마음이 좋거나 가장 막내가 고기를 굽기 마련인데, 고기를 굽는 사람은 일단 고기를 잘 구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고기를 굽기는 하지만 실상 자신이 구운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짬은 그다지 나지 않는다.
 

게다가 일단 여러 사람이 고기를 먹는 상황이기 때문에 고기를 빨리 빨리 구워야 기다리는 분들이 먹을 수 있으니 불을 쎄게 할 수 밖에 없고, 그러다보니 당연지사 고기가 탈까봐 눈과 손을 부지런히 놀려 고기를 구울 수밖에는 없다. 고기를 구우며 조금이라도 고기가 탈 때는 주변에서 고기 판만을 보고 있던 사람들로부터 이런 소리 저런 소리를 들어야 할 테니, 만일 막내입장이라면 그야말로 긴장할 법한 일이다.

게다가 고기가 구워진다고 해도 구워진 고기는 금새 사라질 터이니 고기를 굽는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정신없이 고기만을 굽는 모습이 연출된다. 물론 고기를 굽지 않는 사람들 편에서도 왠지 좀 미안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한 마음에 열심히 먹으며 ‘너도 굽지만 말고 먹어.’라고 말이야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을 일이다. 그러니 ‘너도 먹어’라는 말은 단지 말하는 사람의 심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겉치레일 뿐이다.

게다가 먹는 사람들은 조금 탄 부위가 있으면 탄 부위를 잘라내라거나 고기를 좀 뒤집으라거나 고기굽기와 관련된 온갖 주문을 다하기 마련인데, 고기를 구워야 하는 서열의 사람에게는 괜한 참견과 잘난 척이 전부 그저 부담일 뿐이다.

고기를 굽지 않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배를 채웠다 싶으면 식사 자리는 정리되기 시작하지만, 사실 그 무렵은 바로 고기 굽던 막내에게 겨우 식사가 시작될 무렵이다. 하지만 식사를 마친 다수는 먹었으면 일어나자며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하는데, 남들은 다 먹었는데 혼자 먹고 있는 것 역시 불편하니 아직 식사를 온전히 하지 않았을 막내 입장에서야 웃으며 잘 먹었다고 할 다름이다.

하지만 고기를 굽지 않는 편도 마음이 그리 편한 것만은 아니다. 일단 고기 굽기 서열을 벗어난 경우라 할지라도 함께 식사를 하러 온 주변의 다른 사람과 분위기를 맞춰야 하거나 대화의 장단을 맞추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고기 굽는 이를 생각할 겨를도 없을뿐더러 생각을 해준다 하더라도 이미 고기를 굽기 시작한 도중에 집게를 건내 줄 리도 없으니 그저 서로 불편하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함께 고기를 먹는 자리란, 혼자 굽는 고기에 비해 불편하기 그지없다. 이렇게 부담스러운 식사자리에서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은 만큼 제대로 먹을 수 있을 리 없으니 함께 하는 고기 굽기의 끝이란, 식사를 한 것도 아니고 안 한 것도 아닌 애매함만이 남을 뿐이다.

반면에 혼자 고기를 구워 먹을 때에는 굳이 불을 강하게 해 놓고 빨리 구워야 할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의 식사 속도에 맞추어야 할 필요도 없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은 만큼 먹고 싶은 때까지 먹을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고기 굽기가 어디 있겠나.

하지만 혼자 고기 굽기란 늘 허락되는 것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아직 우리나라의 많은 고기 집은 혼자 고기를 먹으러 온 손님을 반기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2인부터입니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발길을 돌려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 돈 내고 밥을 먹으러 왔다가 왠지 잘못해 꾸중 듣는 듯 한 무안함으로 가게를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손님이 그리 많지도 않은 시간에 2인분 이상을 먹겠다 해도 혼자라는 이유로 삼겹살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혼자 먹으면 둘보다는 조용하고 빨리 먹을 수 있으니 좋지 않은가.

그러다보니, 혼자 가는 손님도 반겨주는 가게가 있다면 반갑기 그지없다. 그게 아이러니인 게다. 혼밥의 정점은 ‘고기굽기’이지만, 고기를 혼자 구울 수 있는 상황이란 늘 허락되는 것이 아닌 우리네 일상이.

물론, 혼자인 손님을 받는 것이 절대적으로 손해일 때도 있다. 그럴 때라 하여도 웃으며 손님의 마음을 다독여 주며 거절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아직 실제로 마주하는 경험은 인상을 찌푸리며 혼자이니 안 된다 듣는 수가 훨씬 많다.

식사란 문화적 행위이기도 하고 삶을 위한 생존적 행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혼자 삼겹살을 굽는 ‘혼삼’의 경우는 과연 문화적인 측면에서 용납될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생존적인 측면에서 용납될 수 없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혼삼 따위, 아무래도 용납 받을 수 없는 것인지 고민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혼밥의 정점인 혼삼은 이러한 부정 속에서 성장하는 것은 아닌지. 혼삼은 고기 집에서 거부당해 고기를 구울 수 없기에, 혼자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다가 거리의 너른 터로 소형 버너와 프라이팬을 들고 나아가 의연히 홀로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을 때 진정한 혼밥 마스터로 인정받으며 완성되는 것은 아닌지.

바로 거기에 혼삼이야말로 혼밥의 정점이라는 말의 의미가 진정으로 숨어 있었던 것은 아닌지. 강철 같은 마음으로, 오가는 시민과 눈인사하며 고기 구울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어쩌면 혼밥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시대와 역사에 말하련다.

나 그냥 제육볶음 1인분.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