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청년들에게- 경험 쌓고, 경험 담기, 결국은 역지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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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청년들에게- 경험 쌓고, 경험 담기, 결국은 역지사지
  • 이은경
  • 승인 2017.06.16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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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전국에 11,784개 고시원이 있다는 국민안전처 통계를 보았다. 지하방, 옥탑방, 고시원을 합한 말이 ‘지옥고’라던데, 청년들의 팍팍한 삶이 절로 느껴진다. 청춘을 담보로 공부에 매진했건만, 막상 고생 끝에 입성한 법조 현실도 갖은 파란을 치고 있으니 선배들도 마음이 무겁다. 그래도 한마디 하라면, 소위 ‘관계’에 관한 최고의 전문성이 지금의 ‘위기’를 장래의 ‘기회’로 바꿀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다. 나를 상대방의 입장에 서게 하고, 나의 영역에 들어온 타자(他者)에 대해 일시적일지라도 이해를 도모하는 게 ‘법’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경험의 폭을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의 생각과 행태는 대체로 각 개인의 ‘경험’이란 틀 속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보통 상대방을 이해하기 힘든 건 나의 경험이 상대방의 경험을 담을 정도로 크지 않기 때문이다. 태생적으로 주어진 환경의 제약을 깨고 다양한 경험을 지속적으로 쌓아야 한다. 다른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가능한 많은 독서도 필요하다. 외국어 습득, 오지 여행도 좋다. 경험이 다양하고 많다는 건 그만큼 타인에 대한 이해도가 넓다는 거다. 이것이 관계에 도움을 주는 건 확실하다.

다음은 역설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비우는 것’이다. 다양한 경험 쌓기는 세상에 대한 통찰력을 키우고 올바른 가치관을 세울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경험조차도 절대성을 부여하는 순간 또 다른 독선과 편견에 빠질 수 있고, 상대방을 이해하는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 숙성된 가치관 위에 타인의 경험에 의한 다양한 가치관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자신의 경험에 대한 한계를 인정하는 관대함의 훈련이다. 물론, 이 말이 가치가 상대적이란 뜻은 절대 아니다. 분명 사회를 옳은 방향으로 이끄는 공동선은 존재한다. 다만, 각 개인을 관계 공동체로 연결키 위해 상대방의 경험을 나의 경험 속에 포섭하여 규범적으로 해석해 내는 능력을 키우라는 것이다. 실은 그런 능력 역시 다양하고 폭넓은 경험으로부터 얻어지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법조인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바로 ‘역지사지’다. 역지사지는 소통을 수단으로 하는 관계의 핵심어다. 하나 단순히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상대방은 나와 다른 경험에 바탕한 다른 인생이기 때문이다. 이 또한 훈련이 필요한데, 상대에 대한 배려를 넘어 ‘나를 바꾸는 노력’이 그것이다. 요즈음 ‘세대’ 간 소통 단절이 문제라고들 한다. 직장 내에서도 시니어, 주니어 사이에 대화조차 어렵다고 한다. 그 이유는 서로에 대해 잘 모르고, 방법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연륜이 주는 경험의 누적은 자연스럽게 직관과 통찰력을 개발해 준다. 특히 조직을 이끄는 리더는 단시간 내 수많은 의사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자리가 그걸 요구하기도 한다. 그들은 업무 보고를 받는 순간, 한두 마디 들어도 결론을 직관적으로 감지하고, 본인의 결론과 일치하는지만 확인하려 든다. 짧은 핵심만 원하기 때문에 서두가 좀 길든지 내용이 장황하면 보고자의 능력을 의심하기 일쑤다. 반면 주니어들은 열정과 패기가 넘치고, 치밀하고 논리적이다. 더욱이 젊지 않은가. 업무 보고 시에도 실력과 열정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서론부터 결론까지 순차적으로 논증하고, 경위도 설명하고 싶을 게다. 하나 시니어들이 말부터 자르면서 고압적으로 ‘결론이 뭐냐’고 물어대니, 도무지 경청이란 걸 모르는 권위적인 상사를 한탄하지 않을 수 없는 거다.

그런데 사실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 보단 서로 입장이 다른 걸 모르기에 역지사지를 못하는 경우다. 관계의 첫걸음은 서로 입장이 다름부터 인식하는 것이다. 시니어는 입을 닫고 귀를 열어 주니어들의 말을 들어주는 훈련을 해야 하고, 주니어는 결론이 도출된 쟁점을 피력하는 방식으로 보고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예시에 불과하지만, 중요한 건 갈등 없는 소통을 위해선 역지사지가 필수적이고, 이 또한 훈련이 필요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과연 바람직한 관계의 발현은 무엇으로 가능할까. 첫째, 나의 경험 쌓기, 둘째, 상대방의 경험 담기, 셋째, 역지사지다. 모든 관계는 소통의 규범적 프레임이고, 결국은 도움을 매개로 한 ‘역지사지’라는 걸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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