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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의 '국문학과 국사의 입맞춤'(18)-조선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서양인과 진짜 서양인의 실상_홍순학의 <연행가(燕行歌)>와 병인양요(丙寅洋擾)
이유진  |  gosilec@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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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13  15:4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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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남부고시학원 국어

국사전공지식 : 이재혁

“눈깔은 움쑥하고 콧마루는 우뚝하며 머리털은 빨간 것이 곱슬곱슬 양모 같고 키꼴은 팔척장신 의복도 괴이하다. 쓴 것은 무엇인지 우뚝한 전립 같고 입은 것은 어찌하여 두 다리가 팽팽하냐, 계집년들 볼짝시면 더구나 흉괴하다. 퉁퉁하고 커다란 년 살빛은 푸르스름…… 새끼놈들 볼 만하다. 사오륙세 먹은 것이 다팔다팔 빨간 머리 샛노란 둥근 눈깔 원숭이 새끼들과 천연히도 흡사하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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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학(洪淳學)의 기행 가사 <연행가(燕行歌)>에서 서양인들을 익살스럽게 표현한 부분입니다. 연행가는 1866년(고종 3) 3월에 왕비 책봉을 청나라에 주청하기 위하여 사행(使行:사절단)의 일원이 된 홍순학이 4월 서울을 출발하여 북경에 갔다가 그 해 8월 다시 서울로 돌아올 때까지 총 133일 동안의 견문을 기록한 가사입니다.

이는 서양인들을 ‘오랑캐’로 인식한 데서 오는 조선 지식인들의 보편적인 관점이 드러난 것입니다. ‘오랑캐’는 중화의 문화인 성리학을 지키고 향유하는 조선인보다 미개한 존재들이라는 것이죠. 그러나 당시 실제의 서양인들은 그렇게 미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동양의 문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종교부터 시작해서 의술에 이르기까지 많은 신문물을 중국에 전하고 있었습니다. 외국(外國)이라고는 ‘중국’과 ‘일본’밖에 모르고, 서양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던 조선인들은 홍순학이 연행사로 북경에 다녀온 후, 서양을 의식하기 시작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 해 10월, 강화도에서 ‘병인양요(丙寅洋擾)’가 일어났기 때문이죠.

그 해 서양인들의 상선이 조선 항구에 자주 출몰하였고, 그들은 종교를 전파할 선교의 권리와 무역을 할 수 있는 교역권을 요구했습니다. 이때 서양 ‘오랑캐’에 대한 조선 정부의 생각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그 중 하나는 정도(正道)인 성리학적 질서가 강화되면 다른 ‘나쁜’ 정신이나 세력이 들어와도 이것들이 스며들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소멸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관점의 조정 관료들은 내부적으로는 성리학적 질서를 강화하면서 그들과 필요한 부분을 교류하는 배타적 무열을 하자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신료들은 교류의 문을 여는 것을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서양인들이 통상을 요구하는 목적이 조선 정부의 상식을 초월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영국과 프랑스 등으로 대표되는 서양 세력들은 조선에서의 자유로운 무역과 통상 관계를 원했고, 산업혁명으로 엄청나게 늘어난 물자 생산력을 바탕으로 이를 내다 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나라의 문호를 여는 것이 가정 먼저 할 일이었습니다. 이 때 서양 세력이 문호를 여는 전형적인 방식은 ‘선교’와 ‘무력행사’였습니다. 이를 예상한 측은 한번 문을 여는 것은 나라를 다 내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위기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었죠.

서양과 교류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로, 조선 안에서 천주교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이 일어났습니다. 전에도 간간히 천주교 신자에 대한 박해가 있었지만 가혹하고 철저한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 병인년의 박해란 뜻으로 이 해 조선 정부가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에 나선 것이다)’에서는 신자들을 ‘말살’하는 데 목적을 두었습니다.2) 이처럼 조선정부는 전통을 지키고 강화하여 ‘사학’과 서양 ‘오랑캐’를 막아보고자 하였습니다.

마침 박해의 과정에서 9명의 프랑스 선교사가 살해되었습니다. 이때 살아남은 3명의 프랑스 신부 가운데 한사람인 리델이 중국 천진으로 갔습니다. 천진에는 당시 프랑스 함대가 정박 중이었는데 리델이 이들에게 도움을 청하려 한 것이죠. 리델은 당시 함대 사령관이었던 로즈(Rose) 제독을 만나 병인박해의 상황을 설명하고 군대를 파견해 선교사의 죽음에 대한 복수와 피해보상을 조선정부에 주장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서양 열강들은 성공적인 중국 개항을 통해 동아시아 문호개방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로즈 제독과 북경주재 프랑스 공사는 이 설명을 듣고 지금이 조선의 문호를 강제적으로라도 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로즈 제독 휘하의 극동 함대는 약간의 정찰 이후 프랑스 본국의 정식 허가를 얻어 7척의 함대로 강화도를 침략하였습니다. 조선 정부는 한강 주변의 경비를 강화하여 서울로 향하던 프랑스 군 일부를 물리쳤습니다. 한성근(韓聖根) 부대가 문수산성(文殊山城)에서, 양헌수(梁憲洙) 부대는 정족산성(鼎足山城)에서 프랑스 군을 크게 무찔렀습니다.3) 생각보다 강한 기세에 프랑스군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조선 입장에서도 많은 것을 잃어야 했는데, 외규장각의 도서들을 비롯한 각종 병기와 서적을 불법적으로 약탈당해야 했습니다.

이처럼 조선인이 <연행가>를 통해 접한 우스꽝스러운 서양인과 실제의 서양인은 큰 차이가 있어습니다. 조선인들이 생각하는 서양인들은 미개한 동물이나 다름이 없어서 언제든지 물리칠 수 있는 ‘오랑캐’였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조선에 들이닥친 서양인들은 매우 강력한 군대와 무기를 가지고 있었고 탐욕스러웠으며, 언제든지 조선을 집어삼킬 수 있는 공동의 이해관계로 협력하는 연대 세력을 이루고 있었죠. 그리고 이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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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
2) 한국사통론, 변태섭, 삼영사
3) 한국사통론, 변태섭, 삼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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