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민주화 30년, 개헌은 준비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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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민주화 30년, 개헌은 준비되었는가?
  • 신희섭
  • 승인 2017.06.09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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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항쟁 기념사에서 개헌논의의 물꼬를 텄다. 2017년 올해는 1987체제 즉 민주화체제가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게다가 전임대통령의 탄핵이라는 큼직한 사건이 있었던 해라 개헌을 추진하기에 시의적절하다. 84%라는 역대최고의 지지율을 기록한 문재인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 개헌의 구심력이 될 것이다. 구체적인 시한으로 2018년 지방선거를 국민투표일로 잡고 개헌을 진행하겠다는 의지표명은 국민들의 기대도 명확하게 만들 수 있다.

모든 조건이 좋다. 다만 이해당사자인 정치권을 제외하면 정치권에서는 권력 구조부터 신경이 쓰이기 때문에 각 정당의 세력에 비추어 계산을 달리하고 있다. 정부형태에서 의원내각제를 주장하는 이들은 한국정치 현실보다는 자신들이 소수정당으로서 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연립정부구성카드로 의원내각제를 주장한다.

한편 정당간 연대를 도모해서 대통령권력을 장악하고 다시 계파정치로 상호간 담합(log-rolling)할 수 있다고 보는 정당들은 프랑스가 사용하고 있는 이원집정부제를 선호한다. 이원집정부제는 대통령제와 동일하게 대통령을 선출하지만 의회내 다수파가 총리가 되고 총리에게 실권을 부여할 수 있는 제도이다. 만약 한 정당 내 계파가 두 개면 한 계파에서 유력정치인이 얼굴마담 역할과 외교를 전담하며, 다른 계파의 수장은 총리가 되어 국내정치의 실권을 장악할 수 있다. 그러니 계파 간에 권력공유로 담합하기 딱 좋다.

문재인대통령이 제안한 안은 현대통령제를 중임으로 바꾸고 임기도 4년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는 6공화국 대통령제도의 역사성을 넘어보겠다는 것이다. 현재 5년 단임제의 대통령제도는 숨 가빴던 1987년 혹시 민주파와 권위주의파가 대통령직선제 합의를 깨는 것이 아닐까하는 두려움 속에서 급히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 2명의 장기집권 대통령의 비극은 한국의 정부형태를 대통령 제도를 쓰되 5년 단임제로 규정하였다. 또한 당시 권력연장이 필요했던 권위주의 집권세력은 민주파가 분열할 것이라는 계산과 지역주의 선거 전략을 사용하면 적은 수로도 당선될 수 있다는 계산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일정비율의 득표를 해야 당선될 수 있는 절대다수제도 보다는 한 표라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상대다수제를 선택하게 만들었다.

정부형태만 정략적으로 계산된 것이 아니다. 의회제도 역시 정략적으로 결정되었다. 원래 계산으로는 대통령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 집권당인 민정당이 거대 정당이 되고 국회 과반수를 넘길 수 있게 소선거구제와 상대다수제를 선택하였다. 물론 우리가 알고 있듯이 정당들의 지역주의 선거 전략으로 인해 그 취지는 못 이루었지만 말이다.

1987년의 ‘8인 회의’에서 결정된 현재의 헌법은 민주주의로의 이행의 산물이다. 그러니 사회적 합의를 배제한 채 급하게 처리되었고 사회요구 상당부분을 반영하지 못하였다. 그래도 그 시기 민주주의를 사망하게 하지 않고 권위주의 파들의 반혁명을 저지하면서 현재 한국 민주주의의 기초를 다졌다는 점에 의미를 둘 수 있다.

하지만 민주화 30년을 기념하고 있는 현재 한국의 정치는 그때와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이 시기동안 한국은 이념의 정치가 지역주의를 압도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번 19대 대선에서는 이념을 내세운 정당들 간의 다자 경쟁이 있었다. 교섭단체요건인 의회 의석 20석을 기준으로 유효정당을 평가했을 때 4개의 유효정당으로 이루어진 다당제를 보여주었다. 또한 19대 대선의 5명의 유력후보들을 이념으로 살펴보면 혁신, 진보, 중도, 보수, 수구가 한 자리에 정렬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한국은 30년의 민주화 기간 동안 다문화사회가 되었다. 혈족적 동질성을 강조하던 전통이 이제는 약해졌다. 이에 더해 세대 간 갈등은 점차 골이 깊어지고 있다.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는 한국에서 ‘청년실업문제와 노인복지문제’로 상징화되는 갈등은 한국정치에서 재깍거리고 있는 시한폭탄이다.

계층갈등과 계급갈등도 나타나고 있다. 과거 한 세대 안에 계층이동을 가능하게 했던 ‘개천에서 나오는 용’신드롬은 이제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막혔거나 사다리가 걷어차인 상태가 되어 거부당하기 일쑤이다. 계층이동의 기대감상실과 함께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직업안정성 약화에 대한 두려움까지 가세하면서 젊은 세대의 불안감과 불만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북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갈 것인지에 대한 장기적인 그림도 필요한 상황이다. 이러한 복합적인 사회균열과 잠복하고 있는 사회갈등선들은 한국의 개헌이 단순한 대통령제도의 단임과 중임에만 논의를 국한시키면 안된다고 말한다. 지극히 원론적이지만 우리가 하게 될 개헌은 향후 30년 이상을 내다보고 진행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헌법을 수정하고 새로운 사회계약을 하게 되는 이들이 강조하는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이다. 대통령제도라는 불신의 제도를 통해 권력분립을 달성하면서 자유 확보를 원할 것인지 효율성에 초점을 두고 정당과 의회라는 제도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하여 권력공유를 할 수 있는 의원내각제로 갈 것인지를 먼저 정해야 한다. 그리고 레이파트(Arend Lijphart)가 제시한 대로 사회균열구조를 보고 다수결주의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유럽국가들이 사용하고 있는 협의주의로 변경할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이 밑그림 아래 대통령제도의 유지, 결선투표제사용, 대통령제와 다당제간의 조응성, 원내정당화와 같은 세부적인 그림들이 조화를 이룰 수 있다.

한국은 지난 30년간 민주주의를 숙성시켜왔다. 이제 한국 민주주의라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을 때가 되었다. 향후 30년을 숙성시킬 새 부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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