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140) - 인생수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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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140) - 인생수업료
  • 차근욱
  • 승인 2017.06.07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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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공단기 강사

세상에는 궂은 날도 있고 맑은 날도 있든, 살다보면 좋은 날도 있고 억울한 날도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속상할 때가 손해 봤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다. 우리가 인터넷 검색을 그리 열심히 하며 신상을 찾는 이유도 나중에 호갱소리를 듣기 싫어서인데, 내가 사고 나서 더 싸고 좋은 물건을 찾게 될 때의 속 쓰림은 이루 다 말을 할 수가 없다. 다들 세상 살면서 손해 보거나 사기당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만은, 안타깝게도 손해 안보고 사기 안당해본 사람 찾기도 쉽지 않다. 적어도 사회생활을 넓게 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사람 만나는 일을 하는 나도 예전에는 사람 대하는 일이 직업인만큼,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 정도는 구별할 줄 안다는 생각을 했다. 그야말로 세상 물정 모를 때의 어리석은 교만이었다. 그리고 조금 더 살아보면서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49%의 사기꾼과 49%의 이기적인 사람들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그렇다고 해서 세상을 회의적으로 보는 것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에게는 2%의 소중하고 감사한 사랑하는 이들이 곁에 있으니까.

6월이 되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지금보다 더 어설펐던 시절, 6월 초의 어느 날. 그러니까 바로 이 맘 때 즈음, 중고 자동차를 사려고 한 적이 있었다. 당시 마침 타고 있던 자동차가 고장이 나서 고칠까 새로 살까를 고민하던 차에, 새로 사면 꽤나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급한 마음에 중고 자동차를 사서 바로 타고 다니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주변에서 중고 자동차 매매에 관련해 워낙 흉흉한 소문들을 들어왔던지라, 조심해야지 하면서 천천히 아는 사람들을 수소문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당시의 일은 우연 혹은 필연으로 생각되는데, 그러던 어느날 밤, 일을 하기 위해 인터넷 창을 띄우고 있다가 마침 사려고 했던 자동차에 대한 중고 자동차 광고를 보게 되었다. 자동차의 상태는 매우 훌륭해 보였고 가격은 예상보다 저렴했다. 전화 한 통화 정도는 어떠려니 했는데 사실은 그것이 함정이었던 것이다.

세상물정을 모르던 나는 늦은 시간이라 사이트에 적혀진 번호에 문자를 남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다. 마치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전화를 한 남자는 젊은 듯 했고, 살갑게 이야기를 하면서 자동차는 매우 상태가 좋으며 언제라도 가져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가격이 시세보다 저렴한 이유를 묻는 내게는 자신이 사장님의 아들인데다 해당 차량이 사업을 하다 망하신 분이 급매로 내 놓은 차량이라 그렇다는 답을 들려주었다. 들어보니 그럴 법도 하다 생각했고 인터넷에 가게 이름이며 자기 얼굴이며 전화번호를 공개해서 사업을 하는데 설마 사기꾼이겠는가 싶어 한번 들르기로 했다. 나는 여기서 가면 안되는 것이었지만, 어찌되었든 그 다음날 부평쪽 사무실에 가기로 했다.

TV에서 없는 자동차를 매물로 올려놓고 막상 찾아가면 없다고 다른 차를 사라고 한다는 뉴스를 보곤 했어서 만약 자동차가 없다고 한다면 바로 집으로 오겠다는 생각을 했던 터라, 차가 있는지를 먼저 확실하게 확인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어제 전화를 했던 사내를 만났는데, 자신을 ‘윤팀장’이라고 소개하며 나이는 이제 막 30이 되었다고 해서 설마 저 나이에 사기를 칠까 싶었다. 열심히 자신의 길을 개척하려는 친구로 보여 대견해 보이기도 했다. 나는 저 나이에 무엇을 했던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동차는 상태가 좋았다. 일단 매물로 나왔던 차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적어도 사기는 아니겠다, 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정말 어렸던 게지. 세상에는 다양한 방식의 다양한 사기방법과 다양한 종류의 사기꾼과 다양한 스타일의 거짓말쟁이가 있다는 것을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몰랐던 것이다. 그저 믿어주고 노력하면 세상이 아름다워지리라는 신념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만 생각했다.

차량에 이상이 없고 바로 가져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나는 그냥 정해진 액수를 이체해주고 바로 차를 가져가려 했다. 그러자 윤팀장은 준비금 100만원이 먼저 입금이 되어야 절차가 진행되니 100만원을 입금해 주고 나머지는 그 다음에 입금을 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그저 믿는 마음에 100만원을 입금해주었다. 그 사이 사이 윤팀장은 아버지에게 온 전화라면서 사장의 아들다운 대사를 하며 전화를 받았다. 뭐, 사장 아들이라고 하니 사장 아들이겠거니 하고 믿고 그냥 그런갑다 하고 흘려 넘겼다.

100만원이 입금되고 나자 갑자기 윤팀장의 태도가 바뀌었다. 차량에 문제가 있으니 차라리 다른 좋은 차를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차를 사기 싫으면 100만원을 포기하고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조금 황당했지만 문제가 있는 차를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다른 차를 보기만 하는 것은 뭐 어떨까 싶었다. 하지만 그 때부터 일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다른 차를 보고 문제가 없다고 해서 사서 바로 가져가겠다고 하니 이번에는 ECU가 고장 나서 고속도로에서 정지할 수 있다고 하며 40킬로미터로 달리면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세상에 누가 40킬로미터로 달리기 위해 차를 구입한단 말인가. 돈을 입금하기 전까지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해 놓고 입금을 하고 나면 말이 바뀐다.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뒤였지만 이미 송금은 끝났다. 사실 나는 이 시점에서 경찰을 불러야 했지만, 내 판단에 따른 실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잘못을 수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택도 없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 이후에 결국 나는 중형자동차 새 차 값을 주고 거의 폐차 직전의 차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정신을 차린 나는 그날 저녁부터 이 자동차 사기꾼과 법과 제도를 동원해 싸우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런 류의 사기꾼은 이 세상에 많았고 나는 그저 어수룩한 바보였을 뿐이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끝내 나는 환불 받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150만원과 더불어 별도의 돈과 시간을 잃었다. 하지만 사기꾼의 얼굴이 어떤지, 어떤 방식의 사기가 세상에 존재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다. 그러지 않던가. 세상, 당해봐야 안다고.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두 가지를 배웠다. 첫 번째는 그야 말로 ‘인생도처 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라. 세상에는 나보다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 많다는 사실. 내가 얼마나 어리숙하고 철없는지를 배웠고 두 번째는 이익에 눈이 먼 인간이 얼마나 거짓말을 잘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더불어 세상에 가장 믿을 수 없는 존재도 인간이고 가장 믿고 싶은 존재도 인간이라는 사실까지도.

살다보면 인생 수업료를 지불해야 하는 때가 있다. 아무리 피해가려 해도 어쩔 수 없을 때는 어쩔 수가 없다. 그 이후로도 가제본 도서를 100만원 정도의 비용을 들여 만들었더니 해당 교재의 내용이 교과목에서 없어지는 일도 있었고 기차표를 구매했는데 날짜를 잘못 입력해서 기차표 비용을 그저 날려버리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맷집이 조금 늘었는지 조금 속이 상하기는 했지만 그냥 툭툭 털어버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가끔 실수를 하거나 인생 수업료를 또 소소하게 지불해야 할 때면 ‘윤팀장’이라 했던 사기꾼을 떠올린다. 얼마나 내가 바보 같았을까.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도 한다. 그 때 내가 어쩌면 세상사는 방법에 대한 예방접종을 맞았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돈이 아깝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일은 분명 일어났고 나는 그 과정을 통해 아주 조금 더 어른이 되었다.

세상살이는 쉽지 않다. 그 과정에서 좋은 일도 있고 속상한 일도 있다. 하지만 그런 모든 일들 속에서 인생 수업료를 내면서 우리는 조금 더 의연해지고 조금 더 중심을 잡아가며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때때로 나는 속 쓰린, 그리고 참 바보 같은 일을 당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늘 스스로를 돌아본다.

인생살이, 수업료 주고 제대로만 배우면 뭐, 부끄러워도 그냥 그러려니 하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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