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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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 (84)
  • 박준연
  • 승인 2017.06.02 11:1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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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계속하는 힘

일본 격언 중에 "계속하는 것은 실력이 된다(継続は力なり)"는 표현이 있다. 우리 속담의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나 "티끌모아 태산"과도 의미가 통하는 부분이 있지만 보다 직설적으로 계속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물론 계속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 일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면 계속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계속한다고 해도 결과물의 수준까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영 적성에 맞지 않으면 그만두는 용기도 중요하다.

이번 연재로 84회가 되는 연재를 계속하면서 80을 넘어가는 숫자에 감회가 새롭다. 호기심은 많지만 싫증도 빨리 내는 성격때문에 끝까지 다 읽지 못한 책도 많은 내가 80여 주 빼놓지 않고 글을 써왔다고 생각하니 은근히 내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진다. 물론 매회 좋은 글을 썼는지는 내 자신이 판단할 수 없지만, 이런 기회가 없었으면 혼자 생각하고 넘어갔을 내용을 지면을 통해 공유할 수 있는 즐거움은 매주 쓸거리를 생각하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원동력이 되었다.

로스쿨 생활에도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미국 로스쿨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로스쿨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번뜩이는 머리가 제일 중요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는다. 하지만 내 생각에 로스쿨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끈질김이다. 드물게는 끈질긴 노력없이도 수월하게 공부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학생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실제로 숨어서 어떤 노력을 하는지 알기는 어렵다. 그외 대부분의 학생들은 잘 모르는 개념, 법리와 싸워가며 공부를 계속한다. 그 과정에서 개념과 법리 하나하나를 전부 이해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증거법 (Evidence) 수업이다. 1학년때와 같은 긴장은 조금 누그러지고, 게다가 교수님은 다른 로스쿨에서 방문 교수 프로그램으로 온 분이라서 수업 내용에 대해 미리 교환하곤 하는 노트나 다른 정보도 없어서 나뿐 아니라 많은 학생들이 우왕좌왕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특히 힘들었던 것은 기말시험 준비였다. 교과서와 부교재, 그 외에 배부된 수업 자료를 읽어봐도 무언가 막힌 것 같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오피스 아워를 통해 교수님께 질문도 했지만 그래도 그 막힌 것 같은 기분은 가시질 않았다. 끈질기게 공부를 계속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다른 뾰족한 수가 없어서 책과 자료 전부를 다 싸들고 도서관에 가서 앉아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어렴풋하게, 막혔던 개념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한 순간에 마법처럼 전부를 이해하게 된 것은 아니고, 뿌옇던 부분이 아주 조금씩 또렷해지는 느낌이었다. 그 덕분에 비교적 좋은 시험 성적을 받았다.

또 개인적으로는 끈질기게 임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 취업(정확하게 말하면 2학년 마친 후의 서머 잡을 구하는 활동)이었다. 처음에 지나치게 긴장하고 그래서 시간과 공을 들여 자료 조사를 하고, 주변에서 그 회사에서 일한 사람들에게 물어보기까지 했는데 그게 역효과가 났는지 면접에서는 지나치게 긴장했고 그것이 좋지 않은 인상을 준 것 같다. 주변에서도 여름에서 일할 회사를 이미 정한 눈치였고 (학교에서도 그렇게 주의를 주기도 했고, 대놓고 과시하는 경우는 없었지만 주변의 많은 동기들이 여름 일할 곳을 찾고 안도한 듯 보였다), 나만 남들이 다 끝낸 과정에 매달려있는 것이 괴로웠다. 하지만 계속하는 수밖에 없었고, 다시 지원 서류를 보내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연락도 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2개월 가까이를 계속한 후에야 나도 비로소 몇 군데 연락을 받고 한 회사, 그러니까 뉴욕에서 예전 근무하던 회사를 정하게 되었다.

사소한 것으로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운동을 한 후 출근을 하자고 결심을 해도, 이 책만은 끝까지 읽자고 결심을 해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내가 계속하는 것은 실력이 된다고 쓸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자신에게 남기는 메시지(note to self)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 수석 합격한 재원이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펌 중의 하나인 ‘Latham & Watkins’ 로펌의 도쿄 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l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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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오 2019-03-12 21:56:43
멋있어요 마지막.사소한 것으로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운동을 한 후 출근을 하자고 결심을 해도, 이 책만은 끝까지 읽자고 결심을 해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내가 계속하는 것은 실력이 된다고 쓸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자신에게 남기는 메시지(note to self)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2년이 다 되어 가는 글이네요. 앞으로도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abcde 2017-10-22 01:20:33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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