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업 변호사의 법과 정치 (12)- 재판의 척도(裁判의 尺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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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의 법과 정치 (12)- 재판의 척도(裁判의 尺度)
  • 강신업
  • 승인 2017.05.26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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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BC 399년. 그리스 아테네. 소크라테스가 재판을 받았다. 멜레토스에 의해 고발된 때문이다. 죄목은 “국가가 인정하는 신들을 신봉하지 않고, 청년들을 부패시킨 것”이다.

당시 아테네의 재판은 배심제로 운영됐다. 배심원은 30세 이상의 남자 시민 중에서 추첨을 통해 뽑았다. 원고의 고발로 소송이 시작되면 사건의 경중에 따라 배심원단을 구성하고 피고는 스스로 자신을 변호할 수 있었다. 재판은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1부에서 먼저 피고의 유무죄를 결정하고 유죄 판결이 나면 2부에서 형량을 결정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민의 이성과 양심을 믿고 자신의 죄 없음을 강력하게 논증했으나 1차 투표 때 500명의 배심원단 중 281: 220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2차 투표 때는 원고가 사형을 주장한 데 대해 소크라테스는 벌금형을 주장했다. 361: 140으로 원고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사형이 확정되었다.

소크라테스는 형이 확정된 후 지인들로부터 도망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독배를 마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크라테스가 판결을 받아들인 이유다. 사실 소크라테스는 당시의 사법제도가 정한 절차에 따라 무죄를 항변할 기회를 충분히 보장 받았다. 소크라테스는 500명이나 되는 배심원으로 이루어진 시민법정의 판결을 거부할 명분이 없다고 생각했다. 절차적 정의가 달성된 이상 판결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민주주의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2017. 5. 23. 대한민국 서울.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피고인 박근혜에 대한 재판이 시작됐다. 이날 검찰은 공소요지를 진술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법치주의와 국민주권주의를 위반하고 헌법수호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직위를 이용하여 직권을 남용하고 뇌물을 수수하는 등 관련법을 어겼다고 논고했다.

이에 대해 박근혜 전 대통령은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측은 검찰이 상상과 추론에 의해, 여론과 언론기사를 증거로 해서 기소를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측은 모두진술에서 미르, K스포츠재단 설립 및 대기업 출연금을 받았다는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서는 뇌물을 받아야 할 동기가 없고, 최순실과 공모했다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최순실과 언제, 어디서, 어떻게 했는지 공모관계에 대한 설명이 없으며, 형사사건에서는 유죄의 입증을 위해 엄격한 증명이 요구됨에도 사실상 유죄를 입증할만한 증거가 없다고 논박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런 입장은, 최순실이 그동안 사심 없이 자신을 도와왔기 때문에 그를 믿고 개인적인 사생할 부분에서 일부 도움을 받았을 뿐 최순실이나 그 딸인 정유라에게 어떤 특혜를 준 적이 없고, 자신은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오로지 국가를 위해서 노심초사 했을 뿐 대통령이라고 하는 자리를 사익을 취하는 수단으로 삼지 않았다는 그동안의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이제 게임은 지금부터다. 과연 검찰의 주장이 옳은지 아니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주장이 옳은 지는 앞으로 재판을 통해 밝혀질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말대로 문화융성과 창조경제를 위해 미르·K스포츠재단을 설립하고 대기업으로부터 자발적인 출연을 받은 것인지, 검찰의 주장대로 최순실, 안종범 전 수석과 공모해 전경련 소속 기업들이 두 재단에 774억원을 강제 출연하도록 하고, 삼성 등으로부터 592억원에 이르는 뇌물을 수수한 것인지는 앞으로 있을 증거조사와 증인신문 등을 통해 밝혀져야 한다.

물론 유죄를 입증할 책임은 검찰에 있다. 검찰은 치밀한 논증과 확실한 증거를 갖고 재판에 임해야 한다. 탄핵을 받아 파면을 당했으니 이미 유죄가 입증된 것이라는 식의 태도는 절대 금물이다. 재판부는 절차적 정의가 달성될 수 있도록 재판의 공정성 측면에 특히 유의해야 한다. 이런 점을 의식했는지 담당재판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판기일 첫 날, 백지 상태에서 편견 없이 재판할 것과 헌법과 법률에 따라 재판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당연한 말이다.

재판은 결론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과정이다. 절차적 정의가 담보되지 않는 한 결과적 정의는 요원하다. 인간은 신이 아닌 까닭에 지상의 척도는 현실로 나타난 증거일 수밖에 없다. 명판결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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