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리의 여행칼럼> 밖으로 나가면 세계가 보인다 - 유럽소국 몰타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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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리의 여행칼럼> 밖으로 나가면 세계가 보인다 - 유럽소국 몰타 ②
  • 제임스리
  • 승인 2017.05.17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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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리(Rhee James)
호주 사법연수과정(SAB), 시드니법대 대학원 수료
호주 GIBSONS 법무법인 컨설턴트 역임
전 KOTRA 법률전문위원
전 충남·북도, 대전광역시 외국인 투자유치 위원
전 인천국제공항공사 고객위원
저서 ‘법을 알면 호주가 보인다’ (KOTRA 발간, 2004)
현재 100여개국 해외여행 경험으로 공공기관 및 대학 등에서 강연

전편에 이어…

1798년 나폴레옹은 이집트 원정길에 몰타를 점령하고 기사단을 축출하였으나, 나폴레옹의 몰락 후 몰타는 1800년에 영국령이 되었다가 1964년 독립하여 영연방국가가 되었다.

몰타의 수도인 발레타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중세의 모습을 지닌 항구로서 오스만투르크 함대에 대적하였던 발레타 장군의 공적을 기려 이름을 지었다.

발레타가 수도로서 자리매김을 하게 된 이유는, 섬의 다른 쪽은 배를 접안시키기 힘든 바위가 많은 해안인데 반해 발레타는 지형적으로 함대와 배들을 정박할 만한 항만이 있어서다.
 

▲ 발레타 입구에 있는 성벽

당시 몰타 기사단은 이 항만에 바로 인접한 곳에 요새를 건설하고 이곳을 중심으로 활동했는데 그러다보니 처음 페니키아인들이 요새를 구축하였던 엠디나 지역은 점차 쇠락하고, 반면 발레타는 지속적으로 번성하여 수도로서 지금에 이르렀다.

몰타가 로마의 지배하에 있을 때의 일이다. AD 60년경 사도 바울이 기독교 포교라는 죄명으로 당국에 체포돼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압송되던 중 크레타 섬을 지나 몰타 인근에서 난파를 당했다. 이후 사도 바울은 약 3개월간 이곳 몰타에 머무르면서 지속적으로 기독교 전도를 했다고 한다.

사도 바울의 난파 사건은 성경의 사도행전 28장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이런 이유로 몰타에서는 매년 2월 10일에 ‘성 바울 난파축제(The Feast of St Paul's Shipwreck)’를 열어 기념해오고 있다.

이 때 로마 파견관 푸블리우스가 기독교로 개종, 후에 몰타 최초의 주교가 되었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성 바울 성당을 세웠으며 지금도 이곳에서 예배를 본다고 한다.
 

▲ 발레타와 슬리에마 시내를 오가는 크루즈

공항을 빠져 나와 공항 앞에 있는 노선 버스를 타기 위해 1일권 버스표를 1.5 유로에 끊고, 일단 수도인 발레타로 가서 골목골목을 누볐다.

마침 훼리 선착장이 있기에 훼리를 타고 건너 편의 슬리에마로 가서 숙소를 찾기로 했다. 관광객들이 너무 많아 그런지 방을 구하기가 여의치 않아 배낭을 메고 땀을 뻘뻘 흘리며 이곳 저곳을 찾아 다니느라 마음이 급해졌다.

결국 지나가는 현지인에게 물어 물어서 바다가 보이는 중급 호텔을 하루 밤에 55 유로(약 7만원)를 주고 묵게 되었다. 숙소 바로 앞에 펼쳐지는 장면은 마치 호주 시드니 인근 바닷가를 연상케 하였는데, 하얀 요트와 바다 문화가 관광객들의 소란스러움과 한데 어우러져 풍요로운 느낌을 주었다. 다행히도 이 호텔은 가격대비 숙박 조건이 좋아 마지막 여정을 멋있게 장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숙소문제를 해결한 후 고조 섬 및 코미노 섬을 가려고 크루즈 여행을 예약했는데, 그 날은 덤으로 2시간 반 걸리는 발레타크릭을 크루즈로 공짜로 여행을 시켜준다는 것이다.

크루즈를 타고 수도 발레타 주변을 돌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크루즈 여행이 끝난 후, 시간을 아끼기 위해 다시 발레타로 가기 위한 시내버스를 탔다.
 

▲ 유적지와 요트

버스터미널에 내려 낮에는 보지 못했던 장소를 다시 한번씩 거닐다보니 어느덧 성 요한 성당에 도착했다.

메인 스트리트에 위치한 성 요한 성당은 전 유럽에 걸쳐 초기 바로크 건축의 백미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화려하고 진귀한 볼거리가 많았지만, 마침 문을 열지 않는 일요일이라 아쉽게도 발길을 돌려야 했다.

특히 기사들은 자신이 소장한 예술품을 이곳에 기부해 성당 내부를 장식했다고 한다. 성당에 붙어 있는 작은 미술관에는 미켈란젤로에 비견되는 이탈리아의 대표 화가인 카라바조가 기사들의 후원을 받아 그린 ‘세례 요한의 참수’가 있다. 5미터의 화폭에 참수의 현장을 리얼하게 그려낸 수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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