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hicus)를 위한 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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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hicus)를 위한 변론
  • 오동운
  • 승인 2017.05.12 11:5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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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운 변호사
법무법인(유한) 금성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 곳 어딘가에 샘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 ‘그해 법원이 아름다웠던 것은 자네가 있었기 때문이야’. 지방법원에 부장으로 내려갔을 때의 일이다. 동료 판사들과 지내다 나름 억울한 일을 당하여 연수원 동기로 같은 법원에 부장으로 있던 후배한테 상담하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조심스러워 털어놓기도 쉽지 않은 고민을 들어주고 해결책까지 제시해 주니, 그는 내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그의 위로는 상처입은 내 영혼을 어루만지는 터치였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나는 그의 팬이 되었다. 그가 하는 말이라면 흡수력 100%가 된다. 그의 사법연수원 제자들이 법원을 방문한다기에 지인의 숲속 농가를 부탁하여 편의를 제공하였다. 그를 위한 작은 베풂이 큰 기쁨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그의 공감의 능력은 엄청난 힘이다. 나는 그의 능력에 이끌리는 자가 된다.

미래학자 리프킨(J. Rifkin)이 인간이 세계를 지배하는 종이 된 것은 자연계의 구성원 중에서 인간이 가장 뛰어난 공감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한 말[공감의 시대(The Empathic Civilization, 2009)]을 빌릴 것도 없이, 그의 공감 능력은 나로 하여금 그에게 헌신하게 하는 힘이다.

그의 공감 능력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첫째는 공감적 경청인 듯하다. 그가 동그란 눈으로 온갖 얼굴의 표정과 근육을 다 바쳐 나의 말을 들어준다. “형님 그러셨어요?”, “진짜 그 사람 너무하네” 나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며 그가 내 이야기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다. 그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면 그 자체로 위로를 받는다. 그는 내가 알고 있는 Homo Empathicus(공감적 인간) 중에서 최고이다. 타인의 감정과 고통을 내 것처럼 이해하는 것이 도덕관념의 기초라 하는데, 그러고 보면 그는 엄청 높은 도덕적 기초를 가진 사람이다. 그의 공감적 경청은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토대로 하는 것 같다.

공감적 경청. 경청이란 말이 기울여서 듣는다는 것으로 이미 자세로 보면 공감의 자세인데, 공감적 경청이란, 자세에서뿐만 아니라 감정적, 정서적으로 청자가 화자 쪽으로 45도 이상 기울어져 듣는 것이다.

둘째는 그의 공감은 수용적 존중을 통하여 중재자의 역할로 이어진다. 그는 화자의 감정과 고통이 다른 곳으로 새어나가기 전에 문제의 본질을 붙들고 곧바로 실천한다. 그는 나의 행동을 집중적으로 관찰하여 나의 행동을 온몸으로 이해하며,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계획을 실행으로 바꾸는 민첩한 실천자의 모습을 갖는다. 그는 나의 고통에 대한 토로가 끝나기도 전에 내 고통의 도화선이 된 사람에게 벌써 달려가 있다. 분위기를 부드럽게 해서, 그는 이미 부드러운 남자이므로, 일부러 애써 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없다. 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열 일 제쳐놓고, 내 고통의 현장에서 밭을 일군다. 그의 해결책이 얼마나 근사한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가 내 고통을 덜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모습에 내 마음이 감동되니, 벌써 나의 고통의 무게가 반이나 가벼워져 있다.

이런 멋진 Homo Empathicus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나의 인생을 이끈다. 지방의 법원에서 서울 쪽으로 전보인사가 있을 때 그가 이사한 지역으로 이사하게 하고, 그가 서울에 올라온 지 한 해 건너 변호사로 전직하였는데, 이제 와 보니 그의 행보를 좇아 나 또한 그 좋은 판사직에서 물러나 변호사로 나서고 있다. 그의 실천하는 공감 능력은 마력이 되어 나의 변호사 생활에도 너무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법정에서 변론할 때 나의 가장 큰 어려움 중의 하나는, 구속된 피고인의 딱한 사정에 관하여 변론하다가, 재판부가 뚫어지게 보는 중에, 울컥하는 마음에 뜨거운 눈시울을 내보이지 않으려고 억지로 참는 것이다. 피고인이 흘려야 할 눈물을 훔쳐가는 것 같아 상당히 미안한 대목이다.

에스트로젠 과다 분비로 인한 화학적 반응인가? 가만 생각해 보면, 그 Homo Empathicus가 나에게 가르쳐 준 공감의 능력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난 요즘 후배에게 배운 공감의 능력으로, 구속된 피고인들을 위해 마음속 깊이 그들과 공감하는 나의 변호사로서의 삶이 너무 감사하다. 상대방의 감정과 고통에 대하여 경청하고 감정과 고통의 소용돌이가 식기 전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실천자의 모습, 피고인들이 흘리는 눈물의 한 방울도 땅바닥에 흘려 버려지지 않게, 나의 자세와 음성의 색깔과 글꼴 하나하나에 고통받는 자의 그 울부짖음을 그대로 전달하고자 한다. 공감의 변호사로 나서는 길을 안내해 준 멋진 Homo Empathicus, ‘그대는, 해 질 무렵 붉은 석양에 걸려 있는 그리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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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미자 2017-05-13 15:48:29
내고통의 도화선이 된 그사람(현장)에 이미 달려가고 내 고통의 현장에 밭을 일구는 공감~~^-^
감동적인 시 한귀절을 읽는 듯~ 힐링되고 배움이 되는 표현이시네요
공감능력 뛰어나신 오변호사님!
깊은 울림을 주시는 글, 감사한 마음으로 읽었슴다.

감사 2017-05-13 11:41:35
공감가는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공감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좋은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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