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135) - 맛집은 아무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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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135) - 맛집은 아무나 하나
  • 차근욱
  • 승인 2017.05.01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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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공단기 강사

살다보면 배신의 순간을 만난다. 어린 시절 목욕탕에 가서 탕이 시원하다는 어른들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었다가 뜨거운 맛을 본 것처럼. 세상살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살다보면 배신의 순간이 모여 이루어 진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들 때가 있는데, 내 경우에는 대체로 음식점이 그랬다.

업무 차 전국의 이 곳 저 곳으로 갈 때가 있는데, 기차도 좋아하고 새로운 거리도 좋아하는 편이라 피곤하긴 해도 출장은 즐거운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출장을 가면 가장 어려운 것이 먹거리와 잠자리다.
 

일단 잠자리의 경우에는 지역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비싸지 않고 깨끗한 곳을 찾기 마련인데, 그게 참 첫사랑이 이루어질 가능성만큼이나 어렵다. 대부분 외지 사람이라고 생각이 되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비싼 값을 부를 뿐만 아니라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 숙박업소 구조의 특성상 퀴퀴하면서 담배냄새까지 찌든 상황에서 밤을 보낼 때가 많아, 이럴 때면 차라리 찜질방을 찾아 갈 걸 그랬다는 후회로 잠을 설치기도 한다. 하지만 찜질방에서는 긴장 상태에서 밤을 지새워야 하니, 선택의 여지가 그리 많지는 않다.

그동안 출장을 다니며 최악의 잠자리라고 꼽을만한 곳은 19대 대선의 계절적 특성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의 숙박업소였는데, 밤 새 주먹만한 바퀴벌레를 4마리나 잡아야 했다. 방 안의 모든 시공간이 끈적했고 담배냄새가 눌어붙어 눅진 이불과 공기 속에 거대한 바퀴벌레가 연이어 달리고 있었다. 아마 그 날 내 컨디션이 보다 좋았다면 10마리까지 잡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끔찍한 밤이었다.

숙소사정이 이러니 출장 중 밥이라도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마음에 이런 저런 시도를 해 보지만 출장지의 식당 역시 숙소와 그리 다르지 않은 경험을 하곤 한다. 처음에는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지역 맛 집을 찾아보자는 생각에 인터넷을 검색 하곤 했는데, 인터넷 맛 집으로 소개된 곳의 대부분이 음식 맛과는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삼겹살 맛 집이라는 곳은 고기가 푸석했고 생선구이 맛 집이라는 곳은 비린내로 한동안 식욕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마치 투덜이 스머프같기도 하지만, 아시는 분들은 아시리라. 나는 웬만한 음식은 남기지 않고 맛있게 먹는 인간이라는 것을.

한 곳은 인터넷에 맛 집으로 진짜 유명해서 근처에 2호점까지 낸 곳이었는데, 3번이나 갔음에도 왜 맛 집이라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 할 수 없었다. 마지막 갔을 때에는 인터넷 블로그에 소개된 것과 같이 2인분에 2만 5천원이나 하는 제육볶음을 시켰는데, 주문을 하자마자 돌아온 반응이 ‘상추나 야채는 없어요.’라는 퉁명스러운 응답이었다. ‘어떻하지요’도 아니고 ‘죄송하지만’도 아니다. 그냥 ‘없어요’일 뿐이다.

이어 준비된 제육볶음 또한 응대 태도와 비슷했는데, 양이 많은 것도 아니고 고기질이 특별한 것도 아니고 양념이 맛있는 것도 아니었다. 질펀한 국물에 잠겨있는 제육볶음은 걸죽해 보였다. 그리고 난 이 제육볶음을 끝으로 ‘내가 잘 몰라서’ 혹은 ‘내가 주문을 잘 못해서’ 맛 집의 진가를 찾지 못했으리라는 생각을 접었다. 그 집의 음식은 나와 맞지 않았던 것이다.

대체로 비싼 음식은 맛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산산조각 내는 경우도 있다. 특히 길가에 있는 식당은 그러한 법칙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는데, 비싼데다 맛까지 없으면 정말 억울한 마음이 들 뿐이다. 가끔 하루 정도의 시간이 허락된다면 ‘대게 무한리필’과 같이 ‘정말 그럴까?’ 라는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생활정보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음식점을 찾아 멀리 멀리 떠나보기도 하는데, 문제는 정작 해당 지역에 가면 모두가 TV에 소개된 바로 그 집이라는 플랜카드가 걸려있어서 어느 집이 진짜인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가게에 물어보면 모두 한 목소리로 바로 이 집이 바로 그 집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주문을 해보면 아니나 다를까 TV의 소개와는 다른, 조악하고 저급한 음식이 툭 툭 성의 없이 던져질 뿐이다. ‘대게 무한리필’집이지만 ‘대게’는 무게에 따라 사는 것이고 반찬만 무한리필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이런 해명을 들으며 앉아 있노라면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인터넷을 믿지 않기로 했다. 식당에 걸린 플랜카드는 물론이다.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서 거짓말을 이어갈 뿐이다. 조국 재건을 위해 양심을 부르짖는 분도 계시던데, 정말 우리 요식업계에 절실한 것이 양심이 아닐까.

정말 맛 집은 실은 그렇게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맛 집은 시장에도 있고 동네에도 있다. 그렇게 화려하지도 허름하지도 않은 평범한 식당이 진짜 맛 집인 경우가 경험 상 차라리 많았다. 광주에 가면 늘 들르는 추어탕 가게가 있는데, 3년 만에 추어탕 외에 뼈 해장국을 먹었다. 처음에는 일상에서 만나는 작은 뼈 2개의 7천 원짜리 해장국을 생각하고 8천원이라는 돈이 좀 과하지 않나 생각했는데, 음식을 받으면서 내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크고 살 많은 뼈 3조각이 뚝배기에 올려 나와, 뼈 해장국 한 그릇을 먹고 배가 부르기는 처음이었다. 앞으로 추어탕은 잠시 미루어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까.

정당한 값에 합당한 정당한 상품. 내가 원한 것은 단지 그것이었다. 그게 정말 공정한 것이니까. 존경하는 민법 교수님 한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다. 사기 피해자도 사실은 욕심을 부렸기에 피해자가 되는 거라고. 그때 그 말씀을 듣고 나서 과연 그렇구나 했었는데, 맛 집도 결국은 그런 것이 아닐까. 자신이 제공하는 가격보다 더 많은 만족을 바라는 욕심과 인터넷 등을 활용해 그런 욕심을 이용하려는 욕망이 맛 집이라는 허상을 만들어 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뭐 어쨌든, 나는 이제 인터넷을 믿지 않는다. 인터넷이란 정보의 바다라고 하기 보다는 비뚤어진 욕망의 바다에 가까우니까.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인터넷이 문제는 아니겠지. 결국은 모두, 사람과 욕망의 문제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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