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드라마로 보는 공무원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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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드라마로 보는 공무원 한국사
  • 노범석
  • 승인 2017.04.25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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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법국사 노범석 교수의 영화와 드라마로 보는 공무원 한국사>

절룩거리는 민주주의를 풍자한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 영화 <효자동 이발사>

대선기간 중 최근 성폭행과 관련된 이슈가 회자되고 있다. 지난 일요일에 있었던 토론 방송에서도 토론이 시작하자마자 세 후보가 동시에 해당 후보의 사퇴를 요구하였다. 이는 한 인물의 윤리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당시의 폭력적인 성인식이 팽배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 <효자동 이발사>에도 비슷한 사례가 등장한다. 주인공의 아버지인 성한모(배우 송강호)는 지방에서 올라와 일하는 면도사 아가씨(배우 문소리)를 겁탈하였다. 지방에 결혼을 약속한 애인이 있었던 그 아가씨는 낙태를 하고 싶어했지만, 성한모는 “사사오입이면 헌법도 바꾸는데 아이도 임신한 지 5달 지나면 낳아야 한다”고 우기면서 우여곡절 끝에 아이를 낳게 되었다.

청와대 주변 동네인 효자동에서 이발사를 하고 있는 성한모는 굴곡진 현대사에서 우직한 성품을 지닌 평범한 시민으로 그려진다. 정부가 하는 말은 곧이곧대로 들었던 성한모는 3.15 부정선거 당시 개표조작에 참여한 것을 나라를 위해서라고 곧이곧대로 믿었으며, 박정희 정부 때는 정부에서 말하는대로 간첩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철저히 신고하였다.

그러나 1.21 사태가 벌어지고 정부에서 ‘설사를 하는 사람이 간첩’이라는 말도 안 되는 발표를 하였는데, 그는 이 말을 곧이그대로 믿고 설사를 하는 낙안이를 데리고 경찰서로 간다. (영화에서는 설사병의 병명이 ‘마루구스’ 병이기 때문에 이를 시국 돌파용으로 쓰자고 주장하였지만 이는 실제로 실존하지 않는 질병이다) 낙안이는 중앙정보부에서 고문을 받은 트라우마로 다리를 못 쓰게 되었고, 그 이후로 성한모도 정부에 대해서 의심하게 된다.

성한모는 박정희 정부 당시 수상한 사람을 신고하라는 중앙정보부장의 이야기를 듣고 밤에 지붕 위에서 임무 수행중이던 중앙정보부 요원을 신고하는 헤프닝을 벌인다. 박정희는 성한모의 용기를 높이 사 대통령 전속 이발사로 채용하게 된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중고생 삭발령도 발령하는데, 이에 성한모가 운영하는 이발소도 나날이 번창한다.

그러나 1.21 사태 이후에 성한모의 태도는 조금씩 변화가 생긴다. 아들의 다리를 고치기 위해 전국의 용하다는 의원을 찾아다니지만 낙안이의 다리를 고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어느 암자에 있는 의원에게서 “내년에 서울에서 용이 죽거든 그 눈알을 파서 먹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이듬해 10.26 사태가 일어나 박정희라는 용이 죽게 되었고, 그는 진짜 눈을 구할 수는 없어 대통령의 초상화에 그려진 눈을 파낸다. 이때 성한모는 그간 있었던 여러 가지 우여곡절 때문인지 하염없이 울었다. 그러나 초상화의 눈을 먹은 낙안이의 다리는 여전히 낫지 못하였다.
 

 

‘낙안’이라는 이름을 받은 이 아이는 영화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를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다. 정식 결혼도 하기 전 겁탈로 태어난 낙안이의 탄생 과정 자체가 미국에 의해 민주주의가 갑자기 도입된 것을 뜻하기도 한다. 1.21 사태 이후 낙안이가 고문을 당한 후 다리를 못 쓰게 된 것도 1960년대 후반 이후 박정희의 독재가 가속화되어 한국의 민주주의가 병들어갔음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박정희 초상화의 눈을 먹어도 효험이 없었던 것은 이후 12.12. 사태 때 전두환의 신군부가 집권하여 독재 체제가 이어졌던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낙안이는 결국 문민정부가 들어섰을 무렵 기적적으로 다리가 낫게 된다.

5공화국이 들어선 이후 성한모는 과거 박정희의 이발사란 이유로 전두환에게 스카웃되었지만, 정치권력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한 그는 예전과 같이 성심성의껏 이발하려는 마음이 사라진 상태였다. 전두환을 처음으로 이발해주던 날, “각하, 머리가 자라면 다시 오겠습니다.”라고 말하였고, 그는 낙안이처럼 두들겨맞고 청와대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이때의 성한모는 더할나위 없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라고 할 수 있는 영화 <효자동 이발사>는 암울한 현대사의 모습을 작중 내내 코믹하고 감성적인 연출로 보여주었다. 20세기에 종말을 고했어야 할 박정희 신화는 전세계적인 경제위기와 더불어 잠시 부활하였지만, 탄핵과 더불어 다시 무너졌다. 10.26 사태 당시 낙안이의 다리가 낫지 못했던 이유는 전두환이 곧이어 집권했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당시 정치권력의 암투로 박정희가 갑작스럽게 암살되어 시민들의 손으로 정권 심판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으로 볼 수도 있다. 다가오는 대선은 지난 정권에 대한 시민들의 심판이면서,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던 60~70년대 독재 체제에 대한 심판이기도 할 것이다.

덧. 성한모가 박정희를 이발할 당시 가족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이때 성한모는 아들 낙안이를 낳게 된 헤프닝을 이야기하면서 ‘사사오입’ 운운한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하였다. 이에 박정희는 잘 배워쳐먹은 놈들이 나라를 망친다며 비위가 상해 바로 나갔으며, 그날 밤 성한모는 “사사오입”을 외치며 총살되는 꿈을 꾸게 된다. 이처럼 박정희는 이승만 정권을 철저히 비판하였는데, 오늘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면서 박정희와 이승만을 동시에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모습은 역사적으로 봤을 때 아이러니한 촌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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