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134) - 마음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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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134) - 마음의 풍경
  • 차근욱
  • 승인 2017.04.25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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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공단기 강사

길을 가면서 가장 많이 피부에 와 닿는 변화는 ‘라일락’이다. 자태며 향기며 청초하다. 라일락은 목련과 함께 햇살 속에서 활짝 웃는 듯한 싱그러움에 새봄스럽다. 봄날 피어나는 생명의 아름다움이랄까. 그래서 그런지 가끔은 길을 걷다 우두커니 서서 한참을 보곤 한다. 아마 나는 라일락을 통해 조용히 지나가버린 언젠가를 물끄러미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려서부터 살았던 집에는 늘 작은 뜰이 있었다. 뜰에는 어머니가 심어 놓으신 꽃이며 나무 등이 가득해 그 안에서 장난감 병정을 세우며 놀거나 풀들을 사진 찍기도 했는데, 나이가 좀 들어서는 의자에 앉아 그 생생한 초록을 보며 자랐다.
 

공부하느라 의자에 앉아 있는 건 그리 오래하지 못했으면서도 돌 모퉁이나 의자에 앉아 뜰을 바라보는 일은 참 질리지가 않았다. 가끔 가다가 난초를 파로 알고 잘라서 라면에 넣는 사태가 벌어지긴 했어도, 우리의 뜨락은 참으로 평화로웠다. 집에는 화분도 제법 많은 편이었는데, 이 화분들을 마당에 내놓거나 겨울에 마루로 들여놓는 일을 할 때면, 어린 마음에 지저분하고 귀찮은데다 자리만 차지하는 화분을 왜 이리도 안고 살아야 하는 걸까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싹이 나고 줄기가 곧게 올라오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마음이 든든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어른이 되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살아갈 무렵,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작은 화분을 길가에 늘어놓고 파는 좌판을 보고선 문득 그 시절 어머니의 마음을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숨 쉴 틈도 없이 돌아가는 우리네 세상살이 속에서 잠시 마음의 한 뼘쯤, 여백이 생기는 그 한 호흡이 우리를 안심시키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그날 나는 잘 키울지 못 키울지도 모르면서 결국 화분을 두 개나 사서 돌아왔었는데, 결국 화분 하나를 제대로 키우지 못해 얼려 죽이고 덜컥 겁이 나서 나머지 하나는 근처 사찰 마당에 묻어 주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TV를 잘 보지 않는 편이지만 언젠가 채널을 돌리다가 반려견을 대상으로 한 TV채널을 발견했다. 그저 풍경을 찍어 놓거나 느긋한 클래식이 흐르는 채널이었는데,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그저 멍하니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때 들었던 생각이, 사람 보는 채널보다 반려견이 보는 채널이 더 낫구나, 였다. 적어도 반려견을 대상으로 한 채널에서는 마음의 때가 낄 내용이 그리 많지는 않는 듯 싶어서.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이 바뀌는데도 왜 세상에는 범죄가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모두들 무언가에 내몰리고 쫓기고 그래서 결국 항상 불안해지는 탓은 아닐까. 마음 속 욕망 때문에 결국 사람 사는 세상에는 범죄도 불행도 없어지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2009년, 노르웨이 국영방송채널인 NRK에서는 기차가 선로를 따라가는 기차여행을 7시간 동안 생중계했다. TV에서 그저 기차가 가는 모습만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무런 방해도 없이, 7시간 동안 그저 주변의 풍경이 흐르는 장면만이 이어진다. 누가 이렇게 재미없는 TV를 보겠느냐 하겠지만, 실제 시청자는 백만이 넘었고 나중에 집계된 바에 따르면 이 기차여행과 함께 한 노르웨이 국민은 30%이나 되었다. 그 후에 다시 노르웨이에서는 해안선을 따라가는 크루즈 여행의 화면을 생방송으로 134시간이나 중계했는데, 이 6박 7일 동안의 시청률은 36%였다. 500만명의 천체 인구중 320만명이나 시청했다는 수치가 집계되기도 했다.

어쩌다 가끔, TV라도 볼까 싶을 때면 우리나라에도 이런 채널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 그저 묵묵히 눈오는 날의 산을, 비오는 날의 들판을, 활활 타오르는 장작만을, 바람 부는 날의 대나무만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무런 나래이션도 없이, 아무런 음악도 없이. 오로지 타닥 타닥 빗소리처럼 있는 그대로의 소리만 날 수 있도록.

봄날의 꽃을 바라볼 마음의 여유도 없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에 사랑이 깃들 수 있을까. 그리고 자신의 곁에 있는 소중한 순간을 사랑할 줄 모른다면, 우리네 인생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어른이 되고 나서야 내가 우두커니 앉아 있을 수 있었던 뜰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살다 쫓겨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는지도 모호해질 무렵, 이렇게 바라보는 라일락은 잊었던 기억을 다시 떠오르게 한다. 소중했던 순간, 아름다웠던 시절,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사람을.

무심히 지나버릴지도 모를 계절은, 그래서 실은 우리에게 축복으로 곁에 있는 모양이다.

이젠 정말 온 세상에 꽃이 피었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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