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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133) - 마음이 지칠 때
차근욱  |  gosilec@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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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18  12:2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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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공단기 강사

얼마 전 우연히 뉴스기사에서 왜 사람들이 폭식을 하는가에 대한 글을 읽었다. 스트레스를 받게 되어 불안과 외로움을 느낄 경우, 사람에게 가장 효과가 좋은 심신 안정 방법은 스킨십인데, 이 스킨십이라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일이 아니므로 무의식 중에 대체수단을 찾아 그 결과로 먹게 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장기도 피부인지라 음식을 먹으면 몸 안에서 스킨십의 효과가 생기기 때문이라나.
 

   

음, 과연. 생각해보면 확실히 그렇다. 음식을 씹어 삼키면 식도와 내장을 스~윽 타고 내려가니 그것도 분명히 스킨십은 스킨십이다. 오호, 이 양반, 천재인데? 정말 그럴 듯해서, 글을 읽은 뒤 감탄하고 말았다. 왠지 피자 한 두 판쯤은 먹어도 괜찮다는 격려로 들리기까지 했다. 그렇다. 내가 원고를 쓰면서 뭔가 꾸역 꾸역 먹고 있노라면 그건 내가 식탐이 많아서가 아니라 단지 원고를 쓰는 그 고독감을 이겨내고자 하는 행위였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나를 오해하신 분들께서는 고개를 끄덕여 주시기를. 그래서 내가 늘 그랬잖아. 사실 나는 식탐이 없다고 말이지.

삶은 고독하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고 사랑받고 싶지만, 세상살이라는 것이 녹록치 않아 실망하고 좌절하다보면 누구나 마음이 지치기 마련이다. 아픈 마음을 부여안고 어쩔줄 몰라 쩔쩔매다보니 인생은 늘 외롭다.

어느 날 갑자기 친구가 색소폰을 배우겠노라고 선언한 적이 있었다. 뭔 뜬금없이 색소폰인가 했더니 지친 마음을 음악으로 달래고 싶어 졌다고. 그 때 알았다. ‘취미’는 정말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렇구나.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키덜트라고 해서 레고를 모으는 사람도, 프라모델을 조립하며 몰두하는 사람도, 허리가 끊어지게 아픈 자세도 마다 않고 쪼그려 앉아 붓을 잡는 사람도 결국은 외로웠던 것이다. 그래서 그 외로움을 잊고자, 무언가에 몰두하며 마음의 짐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도록 우리에겐 ‘취미’가 필요했던 것이다. 사실 음악만큼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이 또 어디에 있겠나.

‘Shall we dance’라는 영화가 있다. 1996년에 만들어졌던 영화인데 당시 일본문화에 대해 터부시하던 우리나라에 일본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았던 작품이다. 무료한 일상을 살아가는 직장인이 사교댄스를 배우며 삶의 활력을 찾아간다는 이야기인데, 이제와 새삼 영상을 찾아보니 야쿠쇼 코지씨와 다케나카 나오키씨가 이렇게나 젊었던 시절의 작품이었구나 싶어 왠지 감회가 새로웠다. 문득, 얼마 전 광주의 이정 원장님께서 ‘나도 40대였던 때가 있었겠지?’라며 우수에 젖으신 채 그윽한 눈동자로 말하시는 모습을 뵈며 ‘원장님, 10대셨던 시절도 있으셨지 않았을까요?’라고 했던 대화가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고(그런데 상상은 잘 안갑니다. 원장님, 죄송).

나이가 들수록 취미가 꼭 있어야 한다는 친구의 말은, 사실 가볍게 들을 말은 아니었다. 나이 들수록, 연륜이 깊어질수록 그만큼의 회한도 깊어지는 법이니 마음을 달랠 무언가가 우리에겐 필요한 거겠지. 어느새 인가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경쟁 지상주의가 되었다. 경쟁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 덕분에 이렇게 법고 살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니까. 하지만 뭐든 한쪽으로만 치우치는 것은 건강하지 못하다. 건강하지 못하니 당연히 병이 날 밖에. 그것도 마음속에.

다들 먹고 살기 힘들다고 죽겠다고 하지만 쉬는 날이면 고속도로가 꽉 꽉 막히는 모습을 보면서 흥, 다들 거짓말 뿐이야, 라며 시기어린 눈으로 바로보곤 했지만 실은 그렇게 뛰쳐나가는 모두들 마음 둘 곳이 없었기에 길을 나섰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취미생활을 하면서 마음을 달랠 줄 아는 우아한 분들이 몇 분이나 되겠나. 그저 모두들 어찌할 바를 모르니 술이든 나들이든 마음만 급할 밖에.

네트워크도 발달했고 소통도 쉬워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는 더 외롭고 더 적막한 세상 속에서 산다. 마음이 지칠 때 마음 둘 something special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축복일지 모르겠다. 그것이 댄스든 색소폰이든. 그래서 그런지 나이가 들수록 작은 것에 감동하고 작은 것에 슬퍼하게 되는 모양이다.

사치가 아니다. 우리에겐 살면서 가끔 마음 기대고 쉴 곳이 필요하다. 소소하지만 가장 자기 자신다울 수 있는 순간을 선사하는 취미 하나쯤, 이제는 우리에게도 있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었다. 마음이 지칠 때, 적어도 내장 스킨십을 통해 위로를 얻어야 하는 일상이 계속 된다면, 그건 좀 너무 슬프잖아.

아.. 아.. 빨리 돈벌어 안마의자 사야지. 그런데 외롭다고 안마의자에 안겨 있는 것도 왠지 좀 오싹하지 않나요? 아니 뭐, 계속 먹는 것 보다야 나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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