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시험장을 떠나지 못하는 응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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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시험장을 떠나지 못하는 응시자
  • 이인아 기자
  • 승인 2017.04.14 13:2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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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저널=이인아 기자]지난 3월 18일 경찰 1차 시험이 치러졌다. 시험이 치러진 지 2주가 넘었지만 기자는 당시 상황을 되돌려 몇 자 적어보려 한다. 경찰 시험도 대중성이 높은 시험 중 하나이기 때문에 적잖은 부담을 가지고 취재에 나섰던 것 같다. 기자는 이런저런 요건을 따져본 후 최종적으로 서울공고를 취재현장으로 정했다.

서울공고에서는 남자 순경 공채 시험이 치러졌는데 이날 서울공고에는 경찰 시험 뿐 아니라 용접기능사, 공조냉동기능사, 전자계산기능사 등 자격시험도 치러져 시험장은 그 어떤 시험 때보다 학생들로 북적였던 것 같다. 북적였던 것도 그러하지만 경찰 남자모집 시험에다가 용접, 공조냉동 등 남자 지원이 많은 자격증 시험을 치르다보니 시험 전후로 시험장에는 남자들이 즐비했고 이에 기자는 “이 세상 젊은 남자들 여기 다 모인 것 같네”하고 잠시 놀라워하기도 했다.

남성 응시자들이 있는 시험장이어서 그런지 시험장에 부모와 동행하거나 하는 모습은 거의 없었고 오전 9시 30분까지 입실을 해야 한다는 기관 측의 지침을 어기는 이도 없었다. 입실시간에 늦어 정문에서 컷 당하는 사례도 몇 번 봤었지만 이번 경찰 1차 고사장에서는 단 1명도 시간을 어기는 응시자가 없었다. 시험은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질서정연하게 별 탈 없이 진행된 모습이다.

시험을 마치고 응시자들이 귀가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 기자가 원하는 구도로 사진이 나올 때까지 사진을 몇 컷 찍다보면 어느 새 응시자 절반가량이 고사장을 빠져나간 후가 된다.

사진을 찍은 후 기자는 잽싸게 응시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어느 정도 취재가 됐다고 할 시 의견들을 정리한 후 고사장을 나서게 된다. 기자가 고사장을 나설 때쯤이라고 해봐야 시험 끝난 후 20분~25분 정도인데 이 때쯤이면 응시자들도 거의 다 고사장을 다 빠져나간 후이기 때문에 기자는 응시자가 모두 빠져나간 뒤, 적막함 속에서 고사장을 나서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이번 경찰 1차 시험도 별 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기자가 이제 정리하고 고사장을 나설 찰나 집에 가지 않고 고사장에 머물고 있는 응시자를 보게 됐고 기자는 마지막 취재원이라 생각하고 다가가 말을 건넸다. 그는 처음 본 사람이 다가오니 다소 경계하는 눈치였고 신문사에서 왔다하니 그때서야 미소를 지어보였다. 사실 기자는 빨리 한마디만 듣고 기사를 작성하러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그와 이런저런 말을 나누고 대화시간이 길어지면서 당초 예상했던 시간보다 약간 더 늦게 취재를 마치게 됐다.

이번 시험에 대한 응시자 평가, 소감에 대한 말을 나눴지만, 정작 대화시간이 길어진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가 후에 꺼낸 한마디 “시험장을 못 떠나겠다”는 말 때문이었다. 기자는 순간 이 응시자의 말을 자세히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얘기를 나누면서 결국 그와 전철역까지 같이 가게 됐다. 보통은 시험이 끝나면 빨리 집에 가서 휴식을 취하거나 친구를 만나서 수다를 떨거나 하는데 시험장을 떠나지 못하겠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아마도 아쉬워서, 허무해서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일 테다. 그는 직장생활을 하는 중에 적성에 맞는 일을 하고자 지난해부터 경찰 시험을 보게 됐단다.

의경을 나왔는데 그때 경험이 적성에 잘 맞다고 판단해 경찰을 직업으로 삼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공부한 지 1년가량 됐고 중상위권이지만 시험을 통해 부족한 면을 채우고 있다는 말이다. 시험장을 못 떠나겠다..이에 대해 그는 마냥 아쉽다기보다 막상 시험을 보고 나니 준비가 덜 됐다는 것을 알게 됐고 시간안배를 좀 덜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이런 생각을 좀 가다듬기 위해 고사장에 좀 더 있었다는 것으로 풀이했다.

시험이 끝나면 허무한데 허무한 이유가 시험을 그냥 못 봐서가 아니라 공부한 건 많은데 시험에 나오는 문제는 공부량에 비해 조금이고, 그나마도 안 본 곳에서 문제가 많이 출제되니까 허무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란다. 공부를 안했으면 안했으니까 점수가 안 나와도 자기합리화가 되는데 공부는 나름 열심히 많이 했음에도 시험을 보면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보이니까 답답한 것이라는 것.

그는 영어, 한국사는 잘 본 편이라 생각하지만 이번 시험에서 자신이 형법, 형소법 공부가 부족했다는 것을 또 느꼈고 운이 좋아서 이번에 합격하면 더할 나위가 없지만 2차 시험까지 가야된다면 준비를 더 잘 해야겠다고 각오를 다지는 모습이었다.

그와 이런 얘기를 나누면서 고사장을 빠져나왔고 그는 노량진에 가서 책을 좀 봐야겠다며 전철타기를 희망했다. 기자와 작별 인사 후 그는 전철을 타러 지하로, 기자는 할 일을 하러 지상 횡단보도를 건넜다. 합격하면 수기하나 써달라는 말을 건넸고 꼭 그러겠다는 확답을 한 채 말이다. 그와 헤어지고 기자는 만감이 교차했다. 사람이 아무리 솔직하다 해도 정작 치부는 드러내지 않는 법이다.

수험생이라는 입장이 치부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불안정한 신분인 탓에 사실 여기저기 드러내고 다닐만한 입장은 또 아닌 건 사실이지 않나싶다. 그런 의미에서 전혀 모르는 이에게 속내를 드러내 준 그가 일단 고맙기도 했고, 내용은 다르지만 이상과 다른 현실, 기자나 수험생이나 어떻게 보면 자신의 진로에 대한 비슷한 맥락의 고민을 짊어지고 가는 사회구성원이라는 범위에서 볼 때 기자 역시 수험생과 입장이 별 반 다르지 않기에 씁쓸함이 느껴지기도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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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4 15:32:40
좋은 기사네요 그 수험생도 기자님도 솔직한 생각이 드러나서 진실성이 있어 보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기사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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