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132)-4월의 냉수마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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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132)-4월의 냉수마찰
  • 차근욱
  • 승인 2017.04.11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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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공단기 강사

내게 4월은 봄 그 자체였다. 4월이 오면 이젠 봄이려니, 하는 마음에 더 이상은 온수를 쓰지 않는다. 다시 온수를 사용하기 시작하는 것은 빨라야 10월이다. 덕분에 달력을 보고 이제 찬물로 목욕을 해야 겠네 싶어 냉수마찰을 하다 추운 감이 들어도, ‘4월인데...’라는 생각에 ‘왜 춥지?’라며 의아해만 할 뿐, 온수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이상한 고집일지는 모르겠는데 여튼 내게 4월이란 이렇듯 온수와 이별하는 계절이다.

4월은 또 다른 의미로 내게 벚꽃과 동의어이기도 하다. 매년 제대로 벚꽃놀이를 즐겨보지는 못하지만. 이건 누군가 억지로 막아서가 아니라 순전히 스스로 마음의 감옥에 갇혀있는 탓이다. ‘아직 원고도 못 끝났는데 어딜!’이라는 생각에 혼자 연구실에 틀어박혀 찌그러지는 것이다. 매년 어찌 어찌 급한 원고가 끝난 뒤에는 이미 벚꽃이 진 무렵인지라 왠지 맥이 풀리곤 한다. 그러다보니 봄이 왔다는 설레임은 어느새 봄이 지나가버렸다는 낭패감으로 바뀌어 멍하니 길 잃은 몽구스 꼴을 한 채로 봄의 끝자락과 이별 할 뿐이다.
 

아쉬움과 함께 찾아오는 여름은, 열이 많은 내게는 재앙인지라, 그 때부터는 그저 이를 악물고 버텨낼 뿐이다. 폭염의 고문은 9월까지 계속된다. 그래서 이래저래 정신을 차릴 때가 되면 아주 짧은 가을 즈음인데, 그 때는 또 일 때문에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써도 이틀에 하루를 잘 수 있을지 말지의 전쟁 속에서 살아가는 터라, 한 해가 조금 마무리 되는 12월 초가 되어서야 겨우 제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그러다 보니 내게 1년의 이미지란 뭔가 영화 ‘올드보이’를 연상시키는 봄과, 덥다고 찬물만 들이키면서 어서 여름이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인고의 순간과 벌써 12월이 왔다는 허전함이 드문 드문 조각나 있는, 형형색색의 천 조각들을 기워놓은 컵받침 같은 모양이다. 그런 사이클이 매해 갈수록 더 빨라지고 있는 듯만 같아서, 이런 생각으로 모골이 송연해 질 때면 어린 시절 봤던 놀이공원의 다람쥐 통 속에 갇혀 가속도가 붙어갈수록 얼굴이 질려가는 소년의 얼굴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거울을 꼼꼼히 들여다보게 되기도 한다.

뭐, 그런고로 내게 4월이란 찬물샤워를 하며 절대 온수를 틀 수 없노라고 다짐하는 계절로 남게 되었다. 마치 새까만 글리터 고깔모자를 쓴 노파가 오래된 국자로 스프를 저으면서 자신의 고집만을 위해 악쓰고 있는 모습이랄까. 그러다보니 내 인생의 봄이란 벚꽃이 피었으려니 짐작은 하지만 어둡고 축축한 동굴에서 눈을 퍼렇게 희번득이는 매부리코의 고집불통 노파로 살고 있는 계절이 되어 버렸다고 해야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마음의 감옥’이란 참 이상하고도 무섭다고 느끼는 요즘인데, 어차피 일에 진척이 없다면 툴툴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렇게 떠나고 싶은 봄 여행이라도 다녀온 뒤에 다시 펜을 잡는 것이 지혜로운 행동일 것이겠지만, 실제로는 마음에 갇혀 아까운 시간들과 이별만 하게 될 뿐, 여행은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정작 얼음처럼 굳어서 초조해만 할 뿐,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주제에.

모래시계의 까슬한 모래처럼 시간이 사박 사박 소리를 내며 쏟아지는 순간 순간의 소소함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마음의 감옥’에 갇혀 있다 보니 보아도 보지 못하고 맛봐도 느끼지 못한다. 그저 삭막한 키보드와 모니터를 노려보며 앉아 있을 뿐이다. 고개를 돌려서 하늘을 보고 봄의 싱그러운 공기를 맡는 것에 그리 별다른 수고가 들지도 않을 터인데.

이상하게도 한 2년 전부터 4월부터 시작하는 냉수목욕이 요즘 들어 으슬으슬해 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한번도 4월의 냉수목욕을 춥다고 느껴보지 않았던 터라 이제는 나도 나이를 먹는 것인가 싶어 세월의 무게를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문득 두려운 마음이나 서글픈 마음에 가깝겠지만.

요즘 거울을 볼 때면, 나는 잘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 나이를 먹으면서 추해지지는 말아야지, 라고 늘 생각은 하는데 그게 그렇게 쉽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요즘 들어 절감하고 있다. 태산처럼 흔들리지 않는 정중동의 묵직함과 주변의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관대함을 쌓아가야 할 텐데, 소소한 일에도 오만가지 생각이 들고 작은 실수에도 불뚝 불뚝 화가 솟으려 하는 마음을 보고 있노라면, 이놈의 가벼움은 좀체 변하질 않는구나 싶어 실망스럽기만 하다. 스스로의 모양새에 실망하고 있는 것도 어찌보면 관대하고 너그럽지 못한 것이니 그 깜냥을 생각하면 그저 얼굴이 붉어질 뿐이다.

얼마 전부터 문득 기회가 생기면 ‘화투’를 배워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대학에 들어갔을 때부터 몇 번이고 배워보려 시도를 했었지만, 그 때마다 실패했다. 예전에는 ‘화투’가 필요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적은 없었는데, 요즘 들어 이 그림 맞추기가 어쩌면 사람들과의 온기를 나누는 또 다른 방식이 될 수도 있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너그러워진 것일지도 모르지.

앞으로도 난 나이를 먹어갈 것이다. 해가 지날수록 냉수 목욕이 더욱 추워질지도 모른다. 그럴수록, 어쩌면 그렇기에 더욱 난 나이 들어감에 대해 새롭게 배우고 새롭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새로운 방식으로 마음을 나누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을 있는 그대로 보내는 여유도 이제는 품을 줄 알았으면 싶다. 마음의 감옥에서 나와 조금은 더 꽃을 바라보고 숨 쉬고 걸을 줄도 알게 되었으면.

아직은 서툴다.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매일 새롭게 깨닫고 있지만, 어쩌면 그것이 내가 조금씩 성장하는 증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그건 정말 다행이겠지. 얼치기 인생살이, 언젠간 조금은 의젓해 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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