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131) - 슬립테크(sleep tech)가 필요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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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131) - 슬립테크(sleep tech)가 필요하세요?
  • 차근욱
  • 승인 2017.04.04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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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공단기 강사

최근에 뉴스기사를 보고 알게 된 것 중에 ‘슬립테크(sleep tech)’라는 말이 있었다. 단어로 다들 눈치 채셨으리라 생각하는데, 그렇다. 이것은 잠과 관련된 최신기술들을 말한다. 예를 들어 잠자리에 들면 휴대폰 등을 이용해 몇 분이나 뒤척이고 얼마나 코를 골고, 어떤 상태에서 얼마나 자는지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여 이를 활용해 질 높은 수면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기술적 방법이다.

깊고 포근한 잠자리만큼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이 어디 있겠나. 오죽하면 불안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 중에는 ‘프로포폴’을 이용한 숙면에 중독되어 마약류 복용자로 처벌받는 일도 불사할까.

개인적으로는, 불면의 밤으로 시달리지 않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아니, 평생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제법 오래 전의 일로 기억하는데, 그 때는 솔직하게 말해 불면증 이라기보다는 낮과 밤이 바뀌어 괴롭고 괴롭고 또 괴로웠다.
 

낮과 밤이 바뀐 라이프 스타일을 경험해 보신 분들은 누구나 아시리라 생각하는데, 낮에 자고 밤에 말똥말똥한 생활이란,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시작은 뭐, 그렇다. 누가 처음부터 피곤하고도 게으른 인생을 살겠다고 작심해서 낮과 밤을 바꾸겠나. 처음에야 밤샘작업을 통해서 뿌듯하고도 성취감 가득한 인생을 살겠다는 야망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밤을 새고 난 뒤인 다음날 오전 9시가 좀 넘어갈 즈음이면, 잠이 쏟아진다. 뭐, 전날 뿌듯하게 밤도 샜으니 잠이 오는 거야 당연한 일이려니 해서 푹 잔다. 나는 누구보다 앞서가는 엘리트라는 오만함을 품은 채로. 그런데 일어나면 오후 3~4시가 되어 있다. 출출하다. 뭐, 열심히 할 일도 했고 잠도 잤으니 잘 먹어야지. 따져보면 7시간 정도 잤으려나. 죄책감 따위는 없다. 너무나 열심히 살고 있는 것만 같아서 맛 나는 것도 실컷 먹는다. 어제 밤도 샜는데 이 정도야. 그리고 뭔가 시작해보려니 해가 뉘엿뉘엿 진다. 좀 늦었다는 초조감이 든다. 할 일이 있다. 그러니 지금부터 시작해야지. 그러다보면 다시 밤을 샌다. 그리고 또 새로운 하루의 낮을 잠으로 보낸다.

밤샘을 한 뒤의 일상이란 참으로 이상하다. 처음엔 4시간 정도만 자도 일어날 수 있다. 조금 두통이 있긴 하지만, 뭐, 이정도야. 그런데 그렇게 하루 이틀 밤을 계속 새다보면 이상하게도 낮에 자는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4시간이 6시간으로, 6시간이 8시간으로, 8시간이 어느새 12시간을 자도 피곤한 상태가 된다. 뭔가 이건 아니다 싶어 밤에 자고 낮에 일을 해보려 하지만, 이제는 밤에 잠들 수 없다. 하루에 4~5시간가량 겨우 말똥말똥한 밤을 보내고 그 외의 시간은 내내 자는 거다. 하지만 자도 자도 피곤하다. 자고 일어나면 여지없이 두통이 있다. 그리고 몸이 무겁다. 힘이 든다.

밤에 깬 채로 있다 보니 누구와도 함께일 수 없다. 두통이 있고 초조하니 집중이 되지 않는다. 무력감이 든다. 어느 샌가 세상에서 고립되어 오직 홀로 살아가게 된다. 마치 종말 이후의 세계를 살아가듯이. 무기력하고, 외롭고도 고독하게.

밤에 잠들지 못하는 형벌에서 벗어나고자 이런 저런 방법을 전부 동원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그러다 어느 시점인가 묘하게 밤에 잠이 들게 되고 낮에 다시 생활하게 되면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형벌의 고통은 곧 잊혀 진다. 어느새 다시 밤샘을 하고 싶은 유혹에 흔들린다. 밤샘을 하며 보내는 하얀 밤은 달콤하다. 매혹적이고 아름다우며 또한 짜릿하다. 하지만 그 대가는 생각보다 잔인하다.

오늘날 우리는 늘 쫓긴다. 시대적 요구에, 자신의 욕망에, 그리고 알 수 없는 미래에. 그래서 잠들지 못한다. 뒤척뒤척. 잠자리에 누워도 온갖 상념이 떠오른다.

불안하다. 슬프다. 그리고 외롭다. 어둠은 무섭다.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어디선가 나를 노리는 존재 때문에 휴대폰을 찾는다. 지금 전화하면 누군가 받아주려나. 문자를 쓰다가 지우기를 반복한다. 바보 같아 보이지 않을까. 혼자 허둥대다 선잠이 든다.

순식간에 찾아오는 아침은 늘 무겁고 피곤하다. 화가 난다. 대상없는 짜증이 우리를 엄습한다. 깊이 자고 싶다. 푹 자고 개운하게 아침 햇살을 맞이하고 싶다. TV 광고에 나오듯, 좋은 향이 날 것만 같은 하얀 순면의 언더웨어를 입고 건치가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오렌지 쥬스를 든 채로 태블릿을 보며 아침을 시작하고 싶다. 마치,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신기한 것은, 자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 더 잠들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피곤해 죽겠는데 잘 수 없는 것이다. 마치 졸음과 싸우는 밤샘 운전으로 몇 병이고 각성제를 들이키며 고속도로를 달리다 겨우 발견한 휴게소에 들러 차를 세우곤, 잠깐이라도 자려고 눈을 감지만 머릿속 불이 꺼지지 않아 잠들지 못하는 사람처럼.

최고의 잠은 스르륵 드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아무도 모르게. 쥐도 새도 모르게. 스르륵 스르륵. 무언가 모두 잊어도 좋다는 기분이 든 것만 같이. 미련도 없고 불안도 없이, 속없이 편안히. 스르륵 스르륵. 죽음처럼, 깊은 잠. 아침의 햇살까지 잠이 깨는 순간까지, 단 한 순간도 깨지 않는, 심연의 숙면.

미움 받을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머리만 대면 잔다. 깜빡 깜빡 필름이 끊기듯. 어떻게 그럴 수 있나 가만히 돌이켜보니 깨어 있을 때 이리 뛰고 저리 뛴 덕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예전, 밤낮이 바뀌었을 때 경험상 최고의 처방을 등산으로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신적 긴장을 풀어 헤칠 수 있는 것은 틈 없는 육체 활동일 테니.

슬립테크에 관한 기사를 읽었을 때, 개인의 수면정보가 얼마나 숙면에 도움이 될까 싶어 조금은 의아했다. 아무리 침대가 푹신하고 베개에서 피톤치드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온다고 해도, 과연 그런 것들이 우리를 숙면으로 이끌어 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원인 없는 결과가 어디 있던가. 숙면처럼 절박했던 낮들이 죽음 같은 잠을 만든다고, 나는 적어도 그렇게 믿고 있다. 원인보다는 현상에만 집착하는 문명의 해법이, 문득 세상 만물은 하나로 이어졌다고 믿었던 조상님들의 지혜를 떠올리게 했다. 밤에 잠들지 못한다면, 낮에 보낸 자신의 시간을 돌아보는 것이 어쩌면 진짜 슬립테크일지도 모른다. 좀 구식이긴 해도.

하늘 아래 진짜 새로운 것이 어디 있던가. 그래서 그런 말도 있지 않나. 오래된 미래라는, 말장난 같지만 소름 돋는 진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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