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민법개정 작업과 회기계속의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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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민법개정 작업과 회기계속의 원칙
  • 백태승
  • 승인 2017.03.31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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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태승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09년부터 추진되어 2013년 마무리 된 민법 중 재산법 개정작업의 결과, 성년기 연령을 20세에서 19세로 인하하는 내용과 종전 금치산・한정치산제도 대신 성년·한정후견제를 새로 도입하는 개정안은 2011년 2월 18일 국회를 통과, 2013년 7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또한 여행계약을 신설하여 여행자를 보호하고 보증제도를 개선하는 민법 개정안은 2015년 1월 12일 국회를 통과하여 2016.2.4.부터 시행되고 있다. 우리민법이 1960년 1월1일부터 시행된 이후 재산법 개정은 1984년 단 한 차례 개정에 그쳤는데 그 때 부터 헤아려 보아도 약 30년 만의 개정이다. 그러나 1999년 2월 법무부가 중심이 되어 추진한 민법(재산법)개정특별위원회의 개정작업의 결과와 민법 재산법 중 그 밖의 중요한 부분의 개정안은 정부안으로 확정되어 국회에 제출되어 있으나 국회의원의 임기만료로 자동 폐기되었다. 그 중에는 부동산 유치권을 폐지하는 내용과 근저당에 관한 상세한 규정 및 세계 통일법의 흐름을 반영한 민법총칙 및 채권법 개정 등 중요 개정내용이 있었는데 국회의 심의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안개 속에 사라졌다. 특히 2009년 구성된 법무부민법개정위원회는 그동안 연 인원 약 155명이 학자 및 실무가가 참가하여 5년간의 작업 끝에 개정시안을 확정하였는데 국회에서 좌초되었다니 아연할 뿐 아니라 매우 실망스럽다. 민법 재산법 개정안 중 일부가 그나마 국회를 통과한 것도 법무부가 민법 개정안 중 일부만 심의토록 한 전략적 제출의 결과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두 번에 걸친 민법 중 재산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번번이 좌초된 근본적인 이유를 살펴보면 ‘회기계속의 원칙’을 규정한 헌법 제51조 때문이다.

알다시피 회기계속의 원칙이란 국회에 제출된 법률안 등의 의안이 회기 중에 의결되지 않더라도 그 의안을 페기하지 않고 다음회기에 인계하여 계속심의 할 수 있는 원칙을 말한다. 다만 국회의원의 임기가 만료된 때는 이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미국, 프랑스를 비롯하여 우리나라 등 많은 국가의 의회에서는 회기계속의 원칙을 채택하고 있다. 한국은 제5대 국회까지는 회기불계속의 원칙을 채택하였다가 제6대 국회이후 부터 회기계속의 원칙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회가 겉으로는 회기계속의 원칙을 고수하지만 입법부가 불성실하게 운영되거나 합의가 어려운 법안은 질질 시간만 끌다가 임기만료가 되면 자동폐기되는 결과가 지금처럼 반복되면 회기불계속의 원칙과 다름없이 운영될 위험이 상존한다. 현재 우리나라 국회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임기 만료로 국회의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던 고유법안의 폐기되는 비율이 2000년 이후 점증하고 있다는 통계가 이를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16대 국회 때는 216건 중 폐기되는 법안이 95건으로 44% 수준이었지만, 17대에서는 623건 중 291건으로 46.7%, 18대 때는 988건 중 585건으로 59.2%로 급증하였다. 2016년 5월 임기만료된 19대 국회에서는 1296건 중 무려 71.6%인 928건이 임기만료로 폐기되었다. 19대 국회가 역대 최악의 국회라 평가받는 오명도 이 통계가 보여 주고 있다.

이번에 폐기된 법안 중에는 민법을 비롯하여 여야가 늘 강조하는 다수의 민생법안,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소송제기전 증거조사제도) 도입을 주요골자로 하는 민사소송법안, 중재산업진흥법 제정안, 집단소송법안 등 중요한 법안이 너무나 많다. 이러한 개혁법안들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마치 블랙홀 속에 빠져 들 듯이 연기도 없이 사라졌다.

변화한 사회현실을 반영하여야 하고 세계의 입법추세에 비추어 보아도 이번 민법개정안은 반드시 성사되었어야 마땅하나 국회 임기 만료되면 자동폐기라는 악순환과 벽에 부딪쳐 번번히 좌초되고 있다. 일본은 우리와 달리 회기불계속의 원칙을 채택하고 있으나 양 의원의 의결에 따라 다음 회기에도 계속심의 할 수 있게끔 탄력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영국도 회기불계속의 원칙이지만 민생법안과 사법안(私法案)은 다음회기에서 계속 심의 할 수 있다.

필자도 10년간 두 차례 민법 개정작업에 참여하여 성사되게끔 진력하였지만 국회가 이런 식으로 운영된다면 개인의 허탈감을 넘어 어떤 개혁입법도 국회의 벽을 넘지 못할 것이다. 헌법 개정이 어렵다면 우리 국회도 운영의 묘를 살려 회기계속의 원칙의 정신을 되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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