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130) - 혼술혼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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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130) - 혼술혼밥
  • 차근욱
  • 승인 2017.03.28 12:1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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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공단기 강사

혼술혼밥이라는 단어가 나타나고 나서야 우리들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혼술혼밥이라 정의하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혼술혼밥이라는 단어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는 도서관 칸막이 같은 자리에 앉아 혼자 벽을 보며 밥을 먹는 괴상한 밥집이 있다는 뉴스가 해외토픽으로 소개되는 정도였다. 마치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행위를 구경하듯이.

아마 일본보다는 조금 더 함께 모여 식사하는 문화를 중요시 하는 우리네 ‘정’문화 때문이었을지도 모르지만, 혼술혼밥은 처음 그렇게 우리들에게 이질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혼술혼밥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던가. 온전히 자기 스스로를 위한 식사이자 술자리이기도 할 뿐만 아니라 관계의 부담에서 벗어나 홀가분하게 마음 편히 순간을 즐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니.
 

이해관계에 조금은 자유로운 학생시절이 아니라면 밥자리와 술자리는 부담스러운 경우가 제법 많다. 접대를 해야 하거나 친목을 다져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이루어지는 자리는 철저하게 정치적이며 권력적인 속성을 따른다. 그러니 마음이 편할 리 있나. 사실 회사의 회식이라는 것도 말이 좋아서 다 같이 즐겁게 함께 먹는다는 것이지 실은 그야말로 업무다. 기분에 따라 상사의 목소리가 조금 더 커지고 그 와중에 막내는 조금 더 눈치를 봐야 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러니 술이 들어가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절대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는, 어찌 보면 더욱 비정한 업무의 연장일 뿐이다.

밥자리도 술자리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있는 순간이 얼마나 되던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과 함께 식사를 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우리는 서로 눈치를 본다. 아니면 이미 정해져 있는 서열에 따라 좋다고만 해야 하는 경우도 한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사무실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할 때면 점심시간에 먹고 싶었던 것을 먹었던 순간이 얼마나 되던가. 적어도 점심시간만큼은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며 스트레스를 잠시 내려놓고 싶지만, 사무실 사람들에 떠밀려 먹고 싶지도 않은 메뉴를 먹고 함께 하고 싶지 않은 커피를 앞에 두고서 질식하기 직전에 이르른 채로 서로 눈치를 보기 마련이다.

점심시간에 잠시 낮잠을 자고 싶은 날도 있으며 가벼운 티타임처럼 빵과 차를 앞에 놓고 책을 읽고 싶은 날도 있다. 하지만 사무실 군상과 함께 하는 시간이란, 그런 개인적인 사정을 용납하지 않는다. 어떤 개인이 자신의 시간과 자유를 누리려 하면 모두 걱정 어린 눈으로 왈가왈부할 다름이다. 실은 시기와 질투어린 압력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바로 그런 흘겨보는 눈으로.

일도 생활도 긴장하고 사는 우리네 일상에서 이렇게 밥자리와 술자리까지 긴장을 풀지 못한다면 어느 순간엔 신경이 버티지 못한다. 물론, 마음이 맞아 음식이 맛나는 밥자리도 있고 이야기가 즐거운 술자리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흉금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던가. 세월이 가면 마음도 변하고, 마음이 변하니 사람도 변하며 사람이 변하니 관계도 변한다. 그러니 세월이 야속할 밖에. 예전에는 그리도 티 없이 웃으며 함께했던 사이도 세월 앞에서는 어색해지기 십상이다. 그러니 어쩌겠나. 혼자 술잔이라도 기울이며 스스로 위로할 밖에.

혼술혼밥은 분명 외로울 지도 모른다. 하지만 혼밥으로 우리는 시간을 아끼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아주 작은 사치를 누릴 수 있으며 혼술로 정말 쓸쓸한 자신의 마음을 달래는 평안을 누릴 수도 있다.

세대와 개인에 따라 혼술혼밥을 처량하게 느끼는 경우도 있겠지만, 어찌 보면 가장 마음 편하고 가장 ‘나’다울 수 있기에 혼술혼밥은 합리성만을 강요받는 현대인에게 가장 안심이 되는 순간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느 날인가는 외롭다. 그것이 결국 존재의 외로움이든 팍팍한 세상살이가 그저 서로워 외로운 날이든 어느 날인가는 위로가 필요한 날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혼술혼밥이 문제가 아닌 게다. 문제는 조직 문화의 정치성과 인간관계의 얄팍함이다. 결국 우리가 좀 더 따스해지지 않고는 혼술혼밥으로 안심하는 현실이란 변하지 않겠지.

봄비가 온단다. 만나고 싶은, 그리운 사람이 있던가. 함께 국밥을 먹고 고기를 굽고, 잔을 기울일 누군가 있던가.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아도 되고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그런 인연이 있던가. 그렇다면 부러운 인생이다. 그런 친구 한 명 없는 이가 어디 한 둘 이던가.

비가 올수록 더욱 사람이 그리워 혼술하게 되는 마음은 아마도 술보다 밥보다 사람의 따스한 온기가 그리워서 일게다. 뭐, 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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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기 2017-04-03 09:51:52
매주 재밌게 잘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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