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새내기 변호사와 연륜있는 변호사, 그 사이 어딘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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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새내기 변호사와 연륜있는 변호사, 그 사이 어딘가에서
  • 지현정
  • 승인 2017.03.17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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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정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법무법인 산지

2007년 4월에 새내기변호사로서의 감회를 법률저널에 기고한지 10년이 지났다. 10년 만에 당시 기고문을 찾아서 읽어보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귀엽다고나 할까. 1년차 변호사로서의 설렘, 기대, 두려움 등 복합적인 감정이 섞여 있는 글이었다. 변호사로서 첫 출발을 한지 두달이 되었을 때 쓴 글이었는데, ‘내일 아침에 눈을 떴을 때 2, 3년이 훌쩍 지나가있으면 좋겠다’라는 문장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2, 3년만 지나면 새내기 티를 벗고 성숙하고 멋진 변호사가 되어 있을 줄 알았나보다. 좀더 성숙해졌는지, 멋진 변호사로 살고 있는지는 필자와 가깝게 지내는 분들이 평가해주시리라.

아주 어렸을 때는 피아니스트를 꿈꿨던 나는 중학생 때부터 막연히 변호사라는 직업에 관심이 생겼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영화 ‘아버지의 이름으로’를 보고 변호사가 정말 멋진 직업이라고 생각해 법대에 진학했다. 막상 변호사가 되어 현실을 겪어보니 영화와 현실은 꽤 거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실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수는 아니더라도 일부 변호사들은 그 영화 속 에마 톰슨처럼 사회 곳곳에서 소금 역할을 묵묵히 감당하고 살아간다.

작년 봄에 사단법인 한국여성변호사회를 알게된 후 소금 같은 선후배님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되었다. 많은 여성 변호사들이 일·가정 두 마리 토끼를 잡기도 힘든 상황 속에서 시간을 쪼개 공익활동을 하고 있었다. 나 자신, 내 가족도 소중하지만 사회와 미래세대를 위해 이타적으로 살아가는 분들이 많았다. 특히 생명가족윤리위원회에는 30명 가까운 여성변호사들이 속해 있는데, 그 중 많은 분들이 꾸준히 모임을 갖고 생명과 가족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공부하고 있다. 열정이 얼마나 대단한지 최근 두어 달은 매주 금요일 아침에 모여 생명법과 관련된 강의를 듣고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두달 간 의사, 교수, 사회운동가 등 다양한 전문가들의 강의를 듣고 토론을 하면서 생명과 관련된 법률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존엄사, 안락사, 낙태, 배아복제와 줄기세포, 시험관 아기시술과 여분의 배아 폐기, 다태아임신과 선택적 유산, 사후피임약, 유전자편집(gene editing), 인공지능, 동물실험과 이종이식 등 의학 내지 생명공학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이슈들이 사실은 법률가들이 더 관심 갖고 연구해야 할 분야였다. 유전자를 디자인 혹은 편집해서라도 보다 더 완벽해지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적 욕망과 이를 뒷받침해주는 생명공학기술의 발달이 만난 21세기 현실에서 ‘법’이 아니면 이를 통제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전통적 가치를 휴지통에 버려야 쿨한 사람으로 취급받을 수 있는 요즘 사회에서 여성변호사들이야말로 생명의 소중함,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하는 첨병 역할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당장 먹고 살기도 바쁜 젊은 변호사들이 스스로 공익적인 일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누군가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어야 한다. 생명가족윤리위원회는 평소 논의했던 내용을 토대로 매 분기마다 포럼을 개최하는데, 이처럼 활발하게 활동하며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은 선배 변호사님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좀 편히 쉬며 누릴 수도 있을 연배임에도 후배변호사들과 미래세대를 위해 사비를 털어 공익활동을 하시는 선배님들을 뵐때마다 ‘나는 과연 저렇게 살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여성변호사들에게 대모 같은 존재이신 이영애 변호사님이 솔선수범하시며 앞서 길을 내지 않으셨다면 생명가족윤리위원회는 없었을 것이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안에는 여러 개의 위원회가 있지만, 다음주부터 시작되는 ‘인권실무연구회’에 거는 기대도 크다. 벌써 30명 가까운 인원이 참여의사를 밝혔고, 월 1회 이상 모여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심도있는 토의와 연구를 하게 될 예정이다. 인권실무연구회 역시 인권전문가이신 김영혜 변호사님의 헌신 덕분에 시작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년 남성에 못지 않은 비율의 여성 법조인이 배출되고 있지만 법원, 검찰, 법원, 로펌의 상층부에서 여성법조인을 찾기는 쉽지 않다. 양성평등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젊은 여성들이 본받고 따라갈 만한 리더가 부족한 것도 원인 중 하나이다.

그래도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지근거리에서 뵈어왔던 훌륭한 여성법조선배님들이 한분한분 떠오른다. 사법연수원에서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우리반을 이끌어주셨던 조희진 검사장님, 사법연수원 신우회를 맡아주셨던 이정미 헌법재판관님,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시절부터 따뜻한 가르침을 주셨던 이선희 양육비이행관리원 초대원장님, 한국여성변호사회를 이끌고 계시며 공익활동을 가르쳐주신 이은경 회장님 등 본받고 싶은 분들이 많다.

새내기 변호사 때는 2, 3년만 지나면 고민이 많이 사라질 줄 알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고민의 종류와 양은 더 많아졌다. 그래도 이기적인 고민보다 이타적인 고민을 좀더 많이 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 때보다 멋진 변호사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좀더 성숙해진 것은 맞는 것 같다. 여성법조인이 희소하던 시절부터 선구자가 되어 앞서 길을 걸어가 주신 훌륭한 법조선배님들 덕분이다. 10년 후의 내 모습은 어떨까? 더 성숙하고 더 이타적인 변호사가 되어 있기를 스스로에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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