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업 변호사의 법과 정치 (2) -법의 도리, 정치의 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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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의 법과 정치 (2) -법의 도리, 정치의 도리
  • 강신업
  • 승인 2017.03.17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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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이정미 재판관은 퇴임사에서 ‘법의 도리는 처음에는 고통이 따르지만 나중에는 오래도록 이롭다(法之爲道前苦而長利·법지위도전고이장리)’는 한비자의 말을 인용했다. 이정미 재판관이 한비자를 인용한 것은 의외다. 헌법재판관을 지내고 퇴임하는 사람에게서 한비자의 말을 듣게 되리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한비자가 누구인가. 약 2300년 전 전국시대를 살며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을 예리하게 분석하여 군주의 통치술과 제왕학을 창시한 법가사상의 대가. 절대군주 진시황이 한 번만이라도 볼 수 있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던 사람.

한비자는 사실 오늘날의 법치주의나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한비자 사상의 핵심은, 군주는 막강한 권력을 지녀야 하고 인민들에게 감사할 필요가 없으며, 인민의 원망에도 아랑곳할 필요가 없고, 상과 벌을 분명하고 엄격하게 하면 인민을 효과적으로 통치하는 만능 정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한비자가 전개한 통치술은 백성의 이익보다는 군주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지만 법을 통한 나라의 통치라는 개념을 창안하고 이를 전파한 것은 한비자의 공이라 아니할 수 없다.

사실 이정미 재판관이 한비자를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정미 재판관은 아마도 사람이 아닌 법을 통해 나라를 통치하는 법치를 강조하고 싶은 소박한 소망에서 한비자의 말을 인용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대통령이 잘못된 비선과의 관계 때문에 파면당하는 것을 보며 법가사상의 집대성자인 한비자를 생각했을 것이다.

어쨌든 한비자가 오늘날도 인구에 회자되며 여전히 의미를 갖는 것은, 권력 행사와 그 방법에 대한 예리한 통찰과 혜안 때문이다. 한비자는 법의 관점에서 권력행사라는 문제에 천착했고, 권력관계와 이를 둘러싼 투쟁을 이해하는 중요한 '틀'로서 인성(人性)이란 문제를 제기하고, 인간의 이기심을 간파한 다음 권술(權術) 이론이라는 통치술을 전개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결국 법을 엄격히 집행하여 상과 벌을 엄격히 하는 것이 통치의 기본이라는 법치사상이다.

비록 전제군주시대의 이론이라 할지라도 한비자의 법치사상과 권술(權術) 이론은 오늘도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사실 우리는 권력취득의 정당성에는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도 권력 행사의 정당성이라는 측면은 간과했다. 1987년 헌법은 권력의 민주적 취득이라는 부분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권력의 분배나 효율적인 견제와 감시라는 부분은 소홀히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헌정사상 최초의 대통령 파면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안창호 헌법재판관은 탄핵심판에서 보충의견을 통해 이 점을 지적하며 제왕적 대통령제를 권력공유형 분권제로 전환하는 개혁을 촉구했다. 그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비선 조직의 국정개입, 대통령의 권한남용, 재벌기업과의 정경유착 등 정치적 폐습을 낳았다”고 지적하면서, 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이원집정부제·의원내각제 또는 책임총리제의 실질화 등 권력분산을 위한 권력구조 개편 및 중앙집권적인 권력을 지방으로 대폭 이양하는 방안 등을 제시하는 동시에 국민소환제·국민발안제·국민투표제 등 직접민주제적 요소의 강화를 통해 이들 권력을 통제할 것을 주창했다. 어쩌면 다소 이례적이라 할 수 있는 안창호 재판관의 보충의견은 국정 농단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인 동시에 권력구조를 개편하지 않고서는 오늘과 같은 불행한 사태의 재발을 막을 수 없다는 절박한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통령 탄핵심판이라는 중차대한 재판을 대하면서 재판관들은 권력의 본질과 그 위력 그리고 그 무상함까지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어쩌면 이정미 재판관의 퇴임사로, 안창호 재판관의 보충의견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인간만사는 순리에 따르면 문제가 없는 것이지만 인간의 이기심은 늘 순리를 거스르려 하고, 또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위정자의 오판과 어리석음이다. 그래서 정치인이라는 사람들이 오늘의 대통령 탄핵 사태에서 배워야 할 것은 그 무엇보다도 순자(苟子)가 말한 ‘군주민수(君舟民水)’의 이치다. “백성은 물, 임금은 배이니,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 정치인에게 이보다 더 무서운 말이, 이보다 더 약이 되는 말이 그 어디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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