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74) - 심기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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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74) - 심기변론
  • 신종범
  • 승인 2017.03.17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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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법률사무소 누림 변호사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군법무관으로 복무하면서 국가나 국방부를 대리하여 소송을 수행할 때 일이다. 1심에서 승소한 후 항소심이 진행 중인 사건이 있었다. 어느 변론기일에 재판장께서 이제껏 당사자가 주장한 것도, 쟁점도 아니었던 사항에 대하여 물어본다. 나름 근거를 제시하며 주장을 하였지만 재판장께서는 계속 의문을 표시한다. 지금 같으면 "말씀하신 사항에 대해서 검토 후 서면으로 제출하겠습니다"라고 했겠지만, 당시에는 젊은 혈기에 재판장의 행위가 부당하다고 생각되어 그 자리에서 재판장의 이야기에 또박또박 반박했다. 재판장께서도 젊은 법무관의 계속된 반박에 심기가 불편하셨는지 언성이 높아졌다. 어느새 재판은 상대방이 아닌 재판장과의 논쟁의 장이 되어 버렸다. 그날 변론이 끝나고 논리에 밀린거 같지 않아 뿌듯함이 들었지만 이후 험난한 재판과정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재판장은 많은 석명자료를 요구하였고, 기일에서는 많은 물음에 답해야 했다. 1심에서 승소하여 순항이 예상되었던 항소심은 뜻밖의 암초를 만나 표류했다. 그래도 어찌어찌 하여 1심의 결과가 바뀌진 않았다. 그 사건에서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재판부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자. 이후에는 변론기일에 조금 일찍 들어가 재판장의 재판 스타일이 어떤지 살펴 그에 맞추어 변론을 하게 되었다. 이른바 '심기변론'이다.

얼마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있었고, 대통령은 파면되었다. 탄핵결정 후 아무런 입장 표명이 없던 전 대통령은 며칠을 청와대에서 버티다(?) 사저로 돌아가면서 지지자들을 향해 환한 웃음을 보였다. 마음 고생이 심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전 대통령의 모습은 밝았고 특유의 올림머리도 여전했다. 전 대통령 밑에서 권력을 누린 핵심 측근들은 사저로 돌아오는 대통령을 깍듯하게 맞이했다. 그 다음날 모 신문만평은 침대에서 공주복을 입고 잠이 깬 전 대통령의 모습과 그 곁을 지키고 있는 7명의 난장이 측근들의 모습을 그렸다. 전 대통령은 여전히 그들에겐 '여왕'이었다. 그 '여왕' 대통령이 재직하는 동안에는 '심기경호'란 것이 있었다. 대통령의 심기에 따라 국가권력이 움직였다. 국정원 댓글 사건은 국정원 직원 감금사건으로, 정윤회 국정개입 사건은 청와대 문건 유출사건으로 변질되었다.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린 공직자는 여지없이 내쳐졌다. 대통령의 의도와 다른 보고서를 작성한 문화체육관광부 국장은 ‘나쁜 사람’으로 찍혀 한직에 보내졌다가 ‘그 사람 아직도 있어요?’라는 말에 공무원 신분마저 박탈당했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을 철저히 수사하도록 한 검찰총장은 수십년간 밝혀지지 않았던 혼외자 의혹이 갑자기 제기되며 유랑의 길을 떠나야 했다. 한때 ‘여왕’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역임했던 여당 원내대표는 대통령과 의견을 달리했다가 ‘배신의 정치인’으로 낙인 찍혀 당에서 쫓겨나 무소속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다. ‘여왕’ 대통령 주변에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하는 공직자는 없어지고, 대통령의 심기만을 살피는 간신들만이 살아 남았다. ‘여왕’ 대통령은 공적 시스템이 아닌 비선에 의해 국정을 운영했고, 주변의 간신들은 이에 부역했다. 국민들은 분노했고, 국회는 국민들의 뜻에 따라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의결했다. 그런데, 탄핵심판을 하는 헌법재판소 대법정에서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변론이 막바지로 가면서 대통령측 대리인단이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모욕하고 막말을 쏟아내는 일이 잦아졌다. 보통 변호사들은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칠까봐 판사나 재판관에게 최대한의 예의를 표시하고, 혹시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까 ‘심기변론’까지 하는데 대통령 대리인단은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뒷목을 잡을 정도로 재판관들의 심기를 대놓고 건드렸다. 생각해 보니, 어쩌면 그들도 ‘심기변론’을 하였는지 모르겠다. 다만, 심기를 살필 대상이 재판관이 아닌 ‘여왕’ 대통령이었을 것이다.

이전에 다른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당시 이제는 파면으로 물러난 전 대통령은 국회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곧 헌법을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이것은 헌법에 대한 도전이자, 체제에 대한 부정입니다” 그런데, 자신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하여는 불복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그의 말대로라면 대한민국 체제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신뢰의 중요성을 그렇게 강조했던 전 대통령의 현재 모습이다. 국가권력은 국정농단세력에 대한 사법절차를 철저히 마무리 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국가권력이 비정상에서 정상으로 돌아와 대통령 개인이 아닌 국민들의 심기를 살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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