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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 - 리더십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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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 - 리더십의 조건
  • 신희섭
  • 승인 2017.03.17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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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역사적인 날이 지났다. 지난 3월 10일 금요일 11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있었다. 1948년 국가수립이후 70년에서 1년이 모자라는 2017년에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을 탄핵한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은 전대통령이 되었다.

대한민국이라는 배의 선장을 시민들은 강제로 내렸다. 그동안 선장은 참으로 많은 일을 하였다. 지난 4년간의 국정농단, 억압과 거짓과 불통이 있었다. 탄핵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이 촛불과 태극기로 국민적 분열을 만들고 있을 때 언론전을 펴면서 권한이 정지된 상태에서 조차 권력을 즐겼다. 탄핵과 관련된 전과정에서 수많은 거짓말로 국민들을 기만하였다. 성실한 수사를 받겠다는 발언은 그저 시간을 벌기위한 것이었다는 점이 청와대수사, 대통령대면조사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시민들은 다시 한 번 속았다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가 산업화로 일구어놓은 나라를 딸은 거짓과 부조리로 이끌었고 결국 국가의 망신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수치가 되었다.

박근혜 전대통령의 리더십은 대통령직을 빼앗기고도 발휘되었다. 3월 12일 청와대에서 사저로 돌아간 그 날 저녁 지지자들이 있는 자리에서 발표한 4문장짜리 연설문이 그것이다. 3번째 문장에는 “이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안고 가겠다.”고 쓰여 있다. 4번째 문장에는 “시간은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라고 되어있다.

순교자인식. 진실이 따로 존재한다는 믿음. 이런 인식의 중심에는 여전히 정치와 권력에 있어 자신이 중심에 있다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거짓과 기만에 대한 시민들의 거부가 승리하였다. 이제 선장을 내리게 하였으니 새로운 선장을 뽑아야 한다. 그럼 끝이 날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이번 일을 복기해야 한다. 그저 결론이 났으니 덮는 것으로 끝이 나서는 우리 역사가 배울 것이 너무 적다. 탄핵된 대통령을 마주한 지금 상황에서 배울 것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 대통령제 국가에서 리더십이 중요하며 그 리더십에 대한 경계가 필요하면서도 한편으로 리더십에 대한 지지가 필요하다. 대통령제도는 신생국가들에서 많이 선택되는 제도이지만 실패하기 좋은 제도이다. 지도자인 인간에 대한 지지와 지도자인 인간에 대한 불신이라는 두 가지 모순사이에서 조화를 맞추어야 한다. 불신과 신뢰의 균형.

두 번째, 대통령제국가에서 지도자 선택이 중요하며 이 경우 지도자선택도 중요하지만 지도자주변인물도 잘 보아야 한다. 이번 사태처럼 사악한 지도자도 문제지만 주변 간신배들도 문제이다. 자연스럽게 약탈적 동맹이 만들어질 수 있다. 지도자와 참모들에 대한 강한 지지는 강력한 견제를 토대로 해야 한다. 합리적인 의심과 투명한 운영을 통한 검증속에서 신뢰가 자라야 한다. 언제든지 견제될 수 있다는 인식이 있을 때 제왕적대통령과 참모진의 약탈적연대를 막을 수 있다.

네 번째, 리더십을 운영하기 위해서 제도도 중요하겠지만 한 사람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고 하여 제도를 버리면 안된다. 서양속담처럼 욕조물을 버리기 위해 아이까지 버리면 안되는 것이다. 개헌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대통령제도의 그간 장점이나 대안제도들이 요구하는 조건에 대해서는 간과되는 측면이 크다. 민주화 30년이 되는 현 시점에서 대통령제도 자체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부족했으니 좀 더 제도와 이 제도가 가진 철학에 대해 진지한 고려가 필요하다.

네 번째, 역사를 더 큰 줄기에서 보아야 한다. 현재의 문제가 우리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며 어떤 발전의 동력이 될지 따져보아야 한다. 긴 호흡의 역사인식은 우리에게 조급함을 덜어준다.

다섯 번째, 지도자는 비전이 있어야 하며 비전은 철학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철학적인 기반이 있을 때 정책들이 꼬일 가능성은 줄어든다. 철학은 없고 권력욕구만 있는 이들이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우리는 보았다.

여섯 번째, 사회전체관점에서 볼 때 진보와 보수의 잘못된 대립은 좀 더 명확한 정치이념의 구분을 필요로 하고 있다. 한국은 진보와 보수가 이론적으로 정립되지 못한 상태에서 ‘진보 vs 보수'의 이념정치를 투표의 중요기준으로 하고 있다. ‘보수=반공주의’가 되었던 과거 역사에서 보수도 이제는 제시할 수 있는 가치가 있어야 한다. 반공주의는 무엇이 안된다는 것이지 무엇을 만들겠다는 것은 아니다. 안티테제만 있을 뿐 테제는 없다. 진보 역시 혁신과의 차이를 명확히 하고 지지가치를 정확히 해야 한다. 한국사회의 진보와 보수가 뚜렷하지 않은 상태는 언제든지 선동에 취약할 수 있다.

이제 우리에게 맡겨진 과제는 어떤 지도자를 선택할 것인가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과제는 어떤 지도자를 만들 것인가이다. 지도자는 우리의 스승이지만 시민 역시 지도자에게 충언을 하는 조언자이자 스승이다. 마치 어린이가 어른의 스승인 것처럼.

지도자를 만드는 것. 지도자 선택이 이 난국을 풀어갈 단기적인 과제라면 좋은 지도자 양성은 이런 난국을 다시는 만들지 않으려는 장기적인 과제이다. 역사는 점진적으로 흘러간다. 그러나 그 방향을 가지고 흐른다. 역사의 저류에 지도자를 만드는 시민들이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정치학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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