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곤 전 ICTY 부소장 “국제재판 동향이 국내에 주는 시사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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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곤 전 ICTY 부소장 “국제재판 동향이 국내에 주는 시사점은..”
  • 김주미 기자
  • 승인 2017.03.14 18: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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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체계, 국제재판에서 돋보이기도”
“사법부의 공정·투명함은 그 자체로 국격”
“검찰의 이중지위, 논증경시 판결은 우려”

[법률저널=김주미 기자] 한국인 최초로 구유고슬로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 상임재판관으로 선출돼 부소장까지 역임했던 권오곤 한국법학원 원장이, 한국법제연구원(원장 이익현) 주최 입법정책포럼에서 발제를 맡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의 국제재판 경험과 의견을 심도 있게 풀어냈다.

지난 13일 오전 7시 쉐라톤 서울 팔래스 강남호텔 1층 로열볼룸에서 개최된 이번 포럼에는 이홍훈 전 대법관, 김동희 교수를 비롯한 다수의 현직 법조인·학자 및 공무원들이 참석했다.

권오곤 원장은 ‘국제형사재판의 최근 동향과 문제점’이라는 주제 하, 지난 15년 간의 국제 실무 경험에 비추어 본 우리 법체계의 개선점과 국제형사법적 문제 등을 논했다.
 

▲ 지난 13일 포럼이 열린 쉐라톤 서울 팔래스 강남 호텔 로열 볼룸 / 사진 김주미 기자

국제형사재판의 정당성, 그리고 근거

‘국가 주권’ 혹은 ‘국권’이라는 개념에 근거할 때 한 국가가 자국의 국민에 대해 형사권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국제형사재판에 대하여는, 그 관할 범죄가 전쟁범죄·인도에 반한 죄·집단살해죄 등에 한정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 당사자 혹은 당사국으로부터 재판의 정당성에 대한 공격이 왕왕 제기된다.

“무슨 근거로 외국의 재판소가 나를 재판하느냐”는 것. 나아가 범죄가 일어난 뒤에 근거법을 제정하여 재판하는 것을 두고선 ‘소급입법금지 등 죄형법정주의 위반’을 말하거나 ‘승자의 정의’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권원장은 먼저 Opinio Juris(법적 신념)에 근거한 국제관습법(customary international law)원칙을 들어 해명했다. 이는 UN 공식 재판소인 ICJ(유엔국제사법재판소)가 발전시킨 이론으로, “어떠한 관례(practice)가 모든 나라에서 예외없이 채택되고 있고 채택의 근거가 단순한 도덕적 의무가 아닌 국가의 법적 의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러한 관례는 국제관습법(customary international law)을 구성한다”는 원칙이다.

즉 “국제형사재판에서의 재판이 사후입법에 근거해 이뤄지더라도 국제관습법에 따라 죄형법정주의 위반이 아니게 되는 것은, 해당 행위가 법이 미리 규율하고 있었든지 아니든지 너무도 명백하게 ‘죄’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한편으로 권원장은 “승자의 정의라는 주장으로 selective justice(선택적 정의)를 지적한 것은 인정할 부분도 있다. 즉 ‘패자의 악만을 처벌하고 승자의 악은 공정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것인데, 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이 이 논리로 도쿄재판의 정당성 자체를 부정하려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다면 이렇게 불공정한 부분이 있으니 전쟁범죄 같은 중대 사안에서 패자의 악까지 아예 처벌하지 말아야 하는가. 이를 생각한다면, 승자의 정의라는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우선은 해당 범죄자들을 처벌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라는 의견을 개진했다.

피고인석의 정치지도자...첫 재판 영예

세계 모든 국가가 현직 국가원수에 대한 형사소추를 면제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형사재판소는 한 나라의 국가원수라 하더라도 해당 범죄에 혐의가 있는 경우 피고인석에 앉힌다.

독일의 히틀러나 일본의 히로히토 또한 국제형사재판소의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경우였지만, 당시 미국의 반대와 소극적 태도로 인해 수포로 돌아갔다.

당시 미국은 “국가주권원칙에 비추어 한 국가의 정치 지도자를 국제재판소에 세워 형사책임을 지게 할 순 없다. 그는 자국의 국민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지거나 제3국에 대해 민사적 책임을 질 수 있을 뿐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권원장은 이에 대해 “특히 일본에 대하여는 미국이 먼저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점도 있으니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런 연유로 한 나라의 정치지도자가 처음 국제형사재판소에 피고인으로 선 것은 권오곤 원장이 ICTY에서 재판했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신유고연방 대통령의 경우가 됐다.

다만 밀로셰비치는 재판 도중 사망하여 판결을 선고하지는 못했고, 국제형사재판소가 처음 국가 원수에 대해 형사판결을 내린 것은 찰스 테일러 전 라이베리아 대통령에 대하여 시에라리온 특별재판소가 50년형을 선고한 것이다.

현재는 UN 안보리(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에 의해 수단 대통령 오마르 알 바시르가 ICC에 기소되어 있다. 하지만 회원국이 아닌 수단은 전혀 협조를 하지 않고 있으며 ICC가 발부한 구속영장 또한 무시하고 있는 상황.

ICC는 보충성의 원칙이 적용되는 다자조약에 의한 기구다. 따라서 조약을 비준한 현재 124개국에서만 효력을 가지며, 자국이 형사권을 행사할 의지와 능력이 없을 때 보충적으로만 행사된다.

비준국으로는 2016년 8월 기준, 아프리카 34개국, 중남미 28개국, 아시아태평양 19개국, 동유럽 18개국, 서유럽 기타가 25개국이다.

현재 국제법의 중심은 형사법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정작 ICC의 이상은 ‘모든 나라가 해당 범죄에 대해 형사권을 공정하고 신속하게 행사해서, ICC로서는 할 일이 없게 되는 것’이라고 권원장은 전했다.
 

권오곤 전 ICTY 부소장(현 한국법학원 원장)

선례없는 황무지에서 국제적 판결 내리기까지

2차 세계대전 전범재판을 위한 뉘른베르크 재판 및 도쿄재판 이후 첫 국제전범재판소인 ICTY는, 권원장에 따르면 그야말로 황무지였다. 재판의 실체는 물론 재판 절차까지, 참고할 만한 선례가 전혀 없었던 것.

각국에서 온 재판관들은 증거 한 건 한 건마다 증거능력을 인정해야 할지를 두고 다투기도 했다. 대륙법계 국가의 판사와 영미법계 국가의 판사는 시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권원장은 이 과정에서 법체계 전반에 대한 국제적 감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특별히 대륙법계와 영미법계의 절충 형태를 취하고 있는 우리 법체계는 우수한 측면이 많다고도 말했다.

실제로 ICTY 재판 과정에서는 권원장의 주장에 따라 우리 형사소송절차가 취하고 있는 증거능력 인정 절차를 갖게 되기도 했다. 이전까지는 모든 증인이 일일이 법정에 나와 구두로만 증언할 수 있었는데, 증인이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을 토대로 검사가 작성한 진술조서에 대해 증인이 법정에 나와 그 성립의 진정을 인정하면 그에 대하여도 증거능력을 갖게 한 것이다.

한국의 형사절차가 국제재판절차의 진일보한 변화를 견인한 대목이다. 그러나 권원장은 “역으로 국제재판의 우수함을 국내로 들여오는 일도 부지런히 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형사재판소가 다루는 사건들은 어느 하나 가벼운 사안이 없다. 재판부가 갖는 무게감 또한 그만큼 막중하다.

권원장이 맡은 사건 중 보스니아 내전 당시 집단학살죄를 저지른 스릅스카 공화국 대통령 라도반 카라지치 사건의 경우 증거만 19만 페이지, 증인이 600명이었는데, 재판부 또한 21,000개 각주가 달린 2,600페이지의 판결문을 작성하고 천여개의 서면 결정 및 400개의 구두 결정을 내렸다. 재판 기간은 4년 6개월, 판결문을 쓰는 데만도 1년 반의 기간이 소요됐다.

법원·검찰, 개선해야 할 부분은...

권원장은 국위를 위해서라도 사법부의 공정·투명함은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쉬운 예로, 외국 기업의 국내 투자를 유인할 때 정부에서는 먼저 경제적 유인책부터 생각하나 권원장은 이 같은 접근이 옳지 못하다고 봤다.

그는 “국제 재판을 하고 있을 때 (내가) 휴가 때 잠시 국내에 들어와 강연한 것까지 주요 외신에 실리거나 다 번역이 되어 각국 대사관에 전달되는 것을 경험했다”며 “한 나라의 사법부, 사법체계가 운영되는 모습은 외국이 유심히 모니터링하는 부분이다. 국격 그 자체라고도 볼 수 있다. 외국기업들은 잠시 맛볼 수 있는 유인책 때문에 국내 투자를 결정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향후 한국에서 분쟁이 생겼을 때 한국 법원에서 공정하고 투명한 판단을 받을 수 있느냐를 중요하게 고려한다. 즉 사법부의 공정성이 상당히 중요한 평가요소”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권원장이 말하는 ‘공정한 재판’이란 무엇일까. 권원장은 “글로벌 스탠다드로서 ‘공정한 재판’은 아직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며, “당사자가 주관적으로는 결과에 대해 만족 혹은 공정하다고 여길지라도, 객관적인 외관상 불공정하게 보일 여지가 있다면 공정한 재판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불공정한 요소가 ‘실제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닌 ‘있는 것처럼 보이느냐, 아니냐’의 문제라는 것.
 

 

권원장은 또한 법원의 권위는 ‘치밀한 법적 논증’에서 찾아진다고 주장했다. “국민들 보기에 판사가 밤을 새서 일한다, 기록을 몇만장 본다, 이런 것에서 재판부의 권위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판결은 재판의 당사자가 가장 궁금해 하는 부분, 이를테면 “내가 왜 집행유예인지, 내가 왜 보석이 안 되는지, 내가 왜 구속되는지”에 대한 이유설시를 최대한 상세히 풀어주어야 하는데, 그저 “~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고” 혹은 “~이 정당하고”라는 식으로 맺어버리는 데서 국민의 불신이 쌓인다고 말했다.

권원장은 “(나는) ICTY에서 판결을 내릴 때 보석결정을 하면서도 그에 대한 판결문을 20여장 써내려가며 법적 논증에 최선을 다했다”며 “(우리 판례들이) 이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아쉬운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권원장은 검찰의 이중적 지위 또한 국제적 기준에 비춰 개선의 필요가 있다고 봤다. 그에 따르면 영미법계 검찰은 대등당사자주의에 입각해 철저히 재판의 일방당사자의 입장에 선다.

반면 대륙법계 검찰은 사건인지는 검사가 하지만 증거수집을 판사가 한다. 재판을 하지 않는 수사판사가 따로 있어 검찰측과 피고인측 증거를 모두 이들이 수집해 기록을 만든다. 이것을 검찰에 보내면 검사가 기소여부를 결정하고, 검사가 기소를 결정하면 수사판사가 만들어 둔 그 기록이 당연히 증거로 되는 형태다. 크메르루즈 특별재판소(ECCC)가 이런 형식을 취하고 있다.

권원장은 “우리 검찰은 절충형이다. 재판의 일방 당사자로서의 지위와 수사검사의 지위까지 다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검찰은 상대측과 싸우는 일방이면서, 증거까지 스스로 양산해 낸다.”며 검찰 지위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끝으로 권원장은 변화하는 법감정에 대한 우려도 내비쳤다. 법학도들이 책에서 법학을 배울 땐 ‘9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이 생기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반박의 여지 없는 법언이었는데, 요즘은 ‘한두명 억울하더라도 확실해 보이는 범인은 빠르고 신속하게 처벌하자’는 인식이 지배적으로 돼 있다는 진단이다.

권원장은 “이 같은 법감정은 파생적으로 무죄추정의 원리를 무색하게 만들면서 반인권적인 검찰의 밤샘·가혹수사까지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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