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오늘은 새날이다. 틀림없는 새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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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오늘은 새날이다. 틀림없는 새날이다.
  • 오시영
  • 승인 2017.03.10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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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역사는 시간의 심판이다. 역사에는 미래가 없다. 존재하지 않은 미래를 심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에는 오직 심판받은 과거만이 있을 뿐이다. 그 심판은 칭찬일 수도 있고, 비난일 수도 있고, 무심일 수도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9년 10월 26일 측근이었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궁정동 안가 술좌석에서 시해당함으로써 국민으로부터 직접 심판당하지 않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1961년 5ㆍ16 군사쿠데타로 군정을 실시하고, 가장된 민정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유신독재를 거쳐 긴급조치 9호로 상징되는 최극점의 독재자 상황에서 갑자기 부하의 총에 맞아 시해당함으로써, 당시 부마항쟁으로 상징되던 유신독재반대투쟁에 목숨을 내걸었던 국민들은 저항의 동력을 상실하면서 무력감에 빠지게 되고, 타도 대상을 졸지에 상실해 버린 국민이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동안 전두환 군부독재가 재등장하는 역사의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거기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 제대로 된 민심이라는 역사의 심판이 생략되어 버린 영향이 크다.

그러기에 오히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비운의 운명을 달리 한 훌륭한 대통령이었다는 조작된 이미지가 강하게 형성되어 오늘에 투영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그의 후광이 박근혜 대통령의 대통령 당선에 크게 영향을 미쳤던 것 또한 사실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역사에서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 채 그의 공만이 과대포장됨으로써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위대한 경제부흥의 국가지도자라는 이미지만 강하게 작동하는 과정에서 그의 딸 역시 그러한 후광 속의 공주로서 능력 있는 정치지도자이려니 하는 맹목적 사랑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과인, 군사쿠데타를 비롯하여, 수많은 정적을 살해하기 위한 사법살인이 자행되고, 장기집권을 위해 헌법에도 없는 총칼로 국회를 강제해산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유령단체나 마찬가지인 허깨비단체를 통해 99.9%라는 북한보다 더 높은 찬성률로 단독 출마하여 대통령에 당선되는 등 긴급조치 9호에 이르는 군사독재를 감행하여 그의 시해 당시 국가 경제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던 것이다. 긴급조치 내용 중에 “헌법 개정 의견을 표시”하는 것 자체가 형벌의 대상이 되는 범죄였으니, 그 당시 얼마나 암울한 시대였는지 우리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오늘,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결과를 선고한다. 각하, 기각, 인용 중 어떠한 결론에 이를지 어느 누구도 예단하지 못한다. 8명의 헌법재판관들은 오늘 아침, 목욕재계하고 국가의 먼 미래를 생각하는 결단의 기도를 하였으리라 믿는다. 헌법재판소 법대에 앉기 위해 수많은 날을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에 대해 어떻게 결론 내려야 할 지 노심초사하면서, 재판자료를 검토하고 또 검토하였으리라 믿는다. 찬성파의 촛불에도, 반대파의 태극기 휘두름에도 흔들리지 않고, 정치적 재판관으로서, 역사적 재판관으로서, 국민의 재판관으로서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른 공정하고 올바른 재판을 할 것으로 믿는다. 헌법재판관들은 오늘, 역사의 창조자로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겸손한 신적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인간은 미래를 심판할 수 없지만, 신은 미래의 역사를 창조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헌법재판관들은 오늘의 선고가 새로운 대한민국에 대한 정의로운 창조의 역사임을 명심하고, 올바른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 잘 아는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을 음미해 보자.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몸이 하나니 두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한참을 서서/ 낮은 수풀로 꺾여 내려가는 한쪽 길을/ 멀리 끝까지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 생각했지요/ 풀이 무성하고 발길을 부르는/ 듯했으니까요/ 그 길도 걷다 보면 지나간 자취가/ 두 길을 거의 같도록 하겠지만요/ 그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놓여 있었고/ 낙엽 위로는 아무런 발자국도 없었습니다/ 아, 나는 한쪽 길은 훗날을 위해 / 남겨 놓았습니다!/ 길이란 이어져 있어 계속 가야만/ 한다는 걸 알기에/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거라 여기면서요//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전문).

우리는 헌법재판관들의 결정에 따라 오늘 11시 이후 새로운 길을 갈 것이다. 만일 그 길이 탄핵인용의 길이라면 그 길은 대부분의 국민이 희망하는 새로운 도약의 길이 될 것이다. 그 길이라면 국민들은 가지 않는 길을 아쉬워 하지 않고, 결코 그 길을 훗날을 위해 남겨 놓지 않고 아무런 미련 없이 “가고 있는 길”을 용감하고 씩씩하게, 기쁘게 행복하게, 잘못된 지난 60여년의 왜곡된 역사의 길을 바로 잡는 심판이 이루어졌다고 서로 격려하며 걷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탄핵 각하나 기각의 길이라면 많은 국민들은 프로스트의 저 싯귀처럼 “가지 않은 길”을 사모하는 심한 통증에 사로잡힐 것이다. 다시 한 번 잘못된 권력을 역사가 심판하지 못한 채 잘못된 권력이 역사를 심판하는 왜곡현상에 마음아파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법률가적 양심과 전문적 입장에서 볼 때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인용되는 것이 옳다. 대한민국헌법의 5대 원칙을 들라하면 민주주의, 법치주의, 복지국가, 문화국가, 국제질서 존중 및 세계평화주의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블랙리스트 작성으로 상징되는 문화예술계에 대한 부당한 편가르기 및 예산지원 불허, 탄압 등을 통해 문화국가를 지향하는 대한민국헌법을 유린하였다. 미르재단과 케이스포트재단 설립을 통해 대기업으로부터 부당한 기금출연을 강제하여 그들의 사유재산권을 침해하였고, 더 나아가 일개 사인에 불과한 최순실에게 국정의 중요부분의 결정권을 내맡기는 법치주의 위반 및 민주주의 위반을 통해 대한민국헌법을 무시하였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여 국민의 생명권을 침해하였고, 사기업 인사에 관여하거나 특정 기업의 납품을 강제하는 등 국민의 상식에 반하는 불법행위를 수도 없이 저질렀다. 청와대 관저에서 일반 국민도 하지 않는 대포폰으로 최순실과 500여 차례의 비밀통화를 실시하고, 무엇보다도 특검 등의 수사를 받지 않고, 국민에 대한 약속을 수없이 위반하는 거짓말쟁이 대통령의 모습을 온 국민에게 보여주어, 이미 국가 최고 지도자로서의 신뢰에 회복할 수 없는 손상을 가져왔다.

일부 극소수 맹목적인 추종자들을 제외하고는 국민 대다수가 이미 그녀를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무능함을, 그녀가 정상적인 사고분별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자신의 의견조차 비문이 아니고서는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의사표시능력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음을 온 국민이 알게 되었다.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고, 통치능력을 제대로 갖지 못하여 비선실세인 최순실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던 “어버버 대통령”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난 지금, 헌법재판소는 그녀의 정권연장을 통해 국가를 더 이상 혼란스럽게 해서는 안 된다는 역사적 소명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탄핵이 각하되거나 기각되어 그녀가 정지된 대통령의 권한을 회복하게 되는 것은 대한민국 근대사 최고의 불행한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그녀의 무분별한 권력의지가 잘못 행사될 경우, 그녀의 헌법 위반과 법률 위반 사실로 탄핵을 주장했던 정치권과 민심과의 충돌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 될 것이다. 이때 대한민국이 겪어야 할 혼란은 사드 배치를 둘러싼 중국과의 외교, 경제적 마찰을 수습할 수도 없게 될 것이다. 어차피 기각되거나 각하되더라도 불과 몇 달 후면 새로운 대통령 선출이 임박해 있다. 그 동안의 혼란을 의도적으로 조장할 필요 또한 없으므로, 헌법재판들의 역사적, 정치적 결단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국민은 “가지 않은 길”을 가려 한다.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이미 길을 걸어와 버린 후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을 토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국민에게 가지 않은 길은 과거의 길이 아니라 미래의 길이다. 혼란과 불법, 부정과 부패의 길, 무능과 협잡의 길이 아닌 공평과 정의, 화합과 헌신, 사랑과 기쁨의 길을 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 길은 우리 등 뒤에 있지 않고, 우리 눈앞에 있다. 헌법재판관들은 탄핵 인용을 통해 국민이 열망하는 새로운 길의 대문을 활짝 열어야 할 중대한 사명감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모든 국민이 “보라! 새 날이 열렸다.”라고 환호하는 오늘이기를 바란다. 가짜 보수, 친일과 독재의 잔재세력들이, 뼈다귀에 붙은 마지막 살점 하나를 뜯어먹기 위해 이빨을 으르릉거리는 추악한 세상이 아니라, 국가발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며, 국가에 선한 충성을 맹세하고 바쳐왔던 올바른 국민들이 바라는 새 날이 새롭게 열리는 오늘이어야 한다. 과거의 적폐를 더 이상 방치하지 말고 청산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적폐가 청산된 밝고 깨끗한 세상에서 국민통합을 이루고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연탄길의 저자 이철환 소설가의 “아픔과 슬픔도 길이 된다”를 보자. “오랜 시간의 아픔을 통해 나는 알게 되었다/ 아픔도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바람 불지 않는 인생은 없다/ 바람이 불어야 나무는 쓰러지지 않으려고/ 더 깊이 뿌리를 내린다// 바람이 나무를 흔드는 이유다/ 바람이 우리들을 흔드는 이유다// 아픔도 길이 된다/ 슬픔도 길이 된다.” (대구문학 ‘시야 시야’에 수록). 이번 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전 국민은 엄청난 아픔과 슬픔을 겪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러려고 대통령이 되었나 하고 “자괴감”을 느꼈다고 했지만, 국민은 그녀보다 더 심한 자괴감을 느껴야만 했다. 저렇게 무능한 줄을 모르고, 저렇게 거짓말을 잘 하는 여자인 줄 모르고, 저렇게 나쁜 짓을 하고도 나쁜 짓인 줄조차 알지 못하는 후안무치의 사람인 줄 모르고 대통령으로 뽑았다니 하는 자괴감에 투표에 도장을 찍은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조차 있다.

오늘,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긴 통증의 시간이 끝났다. 60년 질곡의 왜곡된 역사가 끝났다. 인용이든 기각이든 그녀의 모든 행동은 판결문에 기록되었고, 그 기록을 통해 역사는 두고두고 평가하고 또 평가할 것이다. 우리 국민은 오랜 시간의 아픔을 통해 아픔도 길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다시는 어리석은 대통령을 뽑지 않을 지혜를 우리가 얻지 않았는가. 바람이 나무를 흔드는 이유는 나무가 쓰러지지 않게 더 깊이 뿌리를 박게 하기 위한 신의 위대한 섭리임을 우리 모두 자각했으면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과정을 통해 우리 국민은 보다 더 성숙해졌고, 보다 더 위대해졌다. 그것으로 족하다.

가본 길도 우리에게 길이고, 가보지 않은 길도 우리에게 길이다. 아픔도 우리에게 길이고, 슬픔도 우리에게 길이다. 박정희 대통령도 우리의 대통령이고, 박근혜도 우리의 대통령이다. 그건 객관적 역사의 한 페이지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의 공과(功過)를 명확하게 기록으로 남겨두면 될 일이다. 무엇보다 이번 탄핵 과정을 통해 60년 민족의 적폐가 스스로 자멸하고 말았다는 위대함만은 명백하게 기억해두자. 인위적으로 청산될 수 없었던 그 곤고한 가짜 보수의 막강함이 무능한 박근혜 대통령의 4년 통치기간을 통해 스스로 철저하게 자멸하고 말았으니 이보다 더 큰 역사적 기여는 없으리라 싶다. 보수는 이제 진정한 보수로 거듭나야 한다. 먼저 정의롭고, 먼저 자비로워야 한다. 스스로 석고대죄의 길을 걸어야 한다. 더 이상 악한 보수는 패악질하지 마라. 몰염치에 무식한 깡패집단처럼 스스로를 더 깊은 나락으로 타락시키지 마라. 진정 부끄러움도 모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미안하다 사과하고 새로운 길, 가보지 않은 길을 함께 손잡고 걷자. 우리 모두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국민이니까.

오늘은 새날이다. 막걸리에 와인을 섞어 먹으면 어떤 맛이 날까? “막와”를 오늘 저녁에는 마셔봐야겠다. 무슨 맛인지, 먹어보면 알겠지. 먹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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