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강분의 미국 대안적 분쟁해결(ADR) 제도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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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강분의 미국 대안적 분쟁해결(ADR) 제도 (17)
  • 문강분
  • 승인 2017.03.09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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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강분 행복한 일 연구소 대표 
공인노무사, 법학박사 

분열의 한국, 나의 옳음을 의심하고 남의 옳음을 탐구해보자

천신만고 끝에 입학하게 된 페퍼다인 로스쿨의 분쟁해결과정에서 첫 수업은 통상 졸업할 때쯤 마지막으로 듣는다는 "사과, 용서, 화해: apology, forgiveness and reconciliation" 과목 이었다. 첫 학기를 시작하는 외국인 학생을 프로그램 책임자인 유명 조정인 로빈슨 교수가 직접 챙기게 하려는 배려임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이 과목은 최근 조정의 주요 기법으로 등장하고 있는 이 분야를 본격적으로 다룬 페퍼다인의 고유한 프로그램이다.

한 학기 수업은 정확히 사과, 용서, 화해를 1/3로 나누어 교재와 함께 각 주제 관련 수십 편의 논문을 예습하도록 하고, 매 시간 전 시간에 다루었던 주제와 관련하여 학습자의 소감을 개진하는 한 페이지 짜리 저널을 과제로 제출해야 했다. 수업시간에는 몇 분동안 예습한 내용에서 제기되는 핵심 논점을 노교수가 제시하고, 곧장 교수가 작성한 두어건의 사건 페이퍼를 가지고 사건당사자와 조정인의 역할을 맡아 두 시간여 롤플레이를 통해 합의를 도출한 뒤 다시 모여 해당 결과를 기초로 토론하는 참여식 수업으로 진행되었다.

수동적으로 교수의 강의를 듣는데 익숙한 필자에게 물론 당사자와 조정인으로 역할을 나누어 제시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롤플레이 수업에 적응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지만, 저널을 정리하는 작업이 더욱 곤혹스러웠다. 영어표현이 맞는지도 해결하기 바쁜데 자신의 사과에 대해 매번 고백해야 하는 저널 숙제는 참으로 골칫거리였다. 언제나 정의의 편에 섰고 선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필자였다. 나 자신이 ‘정의’인데 누구에겐가 “사과”따위를 할 만한 행동을 한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남의 ‘사과’이야기만 잔뜩 써낸 대가로 중간고사는 낙제점을 받아들어야 했다. 최고 성적을 받은 미국 변호사 R을 졸라 살펴본 저널 내용은 정말로 소소한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쌍둥이 아이들 간의 싸움 가운데 곤란했던 아빠로서의 처지나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깊이 성찰하고 있었다. 해당 사안에서 아이들 간의 다툼이 어떠한 경위였는지, R이 억지로 주선한 사과가 이들의 다툼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이 사건에서 사과가 진실하지 않았는가, 가식적 사과가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어떻게 나타났는가, 그렇다면 화해에 이르는 진정한 사과는 어떤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들이 깨알같이 서술되어 있었다. 전형적인 서부지역 출신으로 상당히 성공한 중견 변호사인 그일진데, 그가 겪은 굵직한 법률소송이나 사회문제에 대한 사례를 찾을 수 없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일상 속 소소함에서 이슈를 끌어내고 해결거리를 치밀하게 접목해내는 그의 에세이에서 드러난 것은 스스로를 탐구하는 진실함과 자신에 대한 성찰과 반성의 모습이었다.

언제나 큰 악에 맞서고 있다고 자부하면서 정작 내가 저지르는 악은 돌아보지 않고 살았던 나를 돌아보게 된 순간이었다. 부모, 형제, 동료, 고객과의 관계에서 나는 진실로 반성할 점이 없었을까? 항상 정의를 외치고 정의의 편에서 살았다고 믿으면서 나는 언제나 나 자신을 뺀 채 국가와 사회, 결국 남의 책임만을 힐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로도 유익하고 새로운 수업이 이어졌지만, 살아오는 동안 배움을 통틀어 가장 충격을 안겨준 순간으로 기억된다.

내가 정의한 ‘정의’란 무엇일까? 코란이 옳은가, 성경이 옳은가? 미국 ADR은 각자의 정의가 모두 사실이 아닌 ‘지각된’ 사실, 각자의 사실에 대한 ‘해석’의 과정을 거쳐 모두의 렌즈를 가지게 된다는 ‘다름’의 문제에서 시작하고 있다. 축제 퍼레이드 속에서 아이를 무등 태운 아버지는 아버지 위에 올라 탄 아들과 같은 세상에 있지 않다. 앞사람 뒷모습만 따라다닌 아버지는 반라의 무희들이 보이는 선정적 몸짓에 어리둥절한 복잡한 아들의 감정을 알아채기 힘들다. 한 공동체 내에 있는 우리 구성원이 서로 다르게 세계를 인식하는 것, 선한 의도에 관계없이 부정적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을 자꾸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 그 차이를 줄여가는 것이 미국 ADR 교육의 현장이다.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고 폐허에서 가족을 돌보느라 온전히 희생해 온 분들이 태극기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죽음과 고문을 각오한 채 민주화를 진전시켜온 기성세대들은 촛불을 들고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치고 있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포기를 강요당한다는 젊은 세대들의 절망적 눈빛은 처절하기 까지 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 옳다고 믿고 있는 것들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스스로의 ‘옳음’은 의심하고, 상대방의 ‘옳음’에 대해서는 탐구하는 것이 오늘 두 개의 광장에 서있는 우리가 해야 할 첫 실천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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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 2017-03-22 21:58:09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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