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정진규 시인의 “죽음의 암내”와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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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정진규 시인의 “죽음의 암내”와 상상력
  • 오시영
  • 승인 2017.03.02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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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3월, 생명의 달이다. 3월은 풀림의 달이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풀리고, 붙잡음이 풀린다. 땅속에 숨죽이고 있던 생명이 땅을 뚫고 나오고, 말랐던 나뭇가지 끝을 비집고 나온다. 죽음이 생명이 되기 위해서는 고통이 따른다. 기독교에서는 3월 1일부터 사순절이라고 하여 40일 동안 엄숙한 종교의식을 갖는다. 사순절은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리고,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시는 날까지의 40일 동안을 기념하는 기간이다. 삶은 죽음의 연결선에 있다. 광화문 광장과 서울시청 광장은 촛불과 태극기물결이다. 하지만 비극적으로 촛불과 태극기는 결합하지 못한다. 섞이지 못한다. 마치 생명과 죽음처럼, 진실과 거짓처럼, 미래와 과거처럼 하나 되지 못한 채 경계 없는 경계의 골이 깊다.

정진규 시인의 “죽음의 암내”를 본다. “풀릴 때가 제일 위험하다 해동 때를 대비하라 제일 위험할 때가 환희의 시절이니라 큰 돌이 무작정 구른다 도처에 푸른 멍투성이다 너를 만날 때가 네가 다녀갈 때가 제일 위험하다 위험의 향기를 아느냐 벌써 초록 먼동이 번져오기 시작한다 풀 내를 맡는 방식을 나는 안다 나는 물들 줄 안다 죽음의 암내다 풍긴다 상엿소리가 넘어간다 봄은 날렵하게 죽음을 입력한다 네 몸의 향기다 화훼 사전(花卉 辭典)에도 없는 풀꽃, 환희라는 이름의 꽃, 너의 이름을 몸꽃, 환희라 지었다 나는 너에게 아득히 입력되고 있다.” 정진규 시인, 내년이면 벌써 팔십이시니 원로시인이다. 삶을 관조한 한 시인의 눈에 비치는 봄은 위험하다. 동시에 무한한 상상력에 의지하여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산다. 마치 온 국민이 탄핵 정국의 혼돈 속에서 보이지 않는 희망의 실체를 붙잡으려 몸부림치듯이 말이다.

지금 3월, 대한민국은 해동기를 맞고 있다. 얼어붙었던 것들이 봄에 녹아내리면 축대가 무너지고, 산의 돌들이 무너져 내리고, 사람의 목숨이 죽어나간다. 정진규 시인은 말한다. 해빙기가 되면 큰 돌이 무작정 구른다고. 하지만 천지개벽하듯 살갗을 파고들던 추위가 사라지고, 깨어지지 않을 것 같던 얼음이 녹아내리면 붙잡고 있던 어둠의 세력이 큰 돌 구르듯 무너져 내린다고, 그 돌에 맞지 말라고 경고한다. 어찌 보면 “죽음의 암내”라는 시는 슬픈 시다. 살만큼 산 한 인간, 무한한 상상력의 시세계에서 일생을 살았던 한 시인이 사물의 해빙기를 맞아, 인생의 해빙기를, 하루하루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직면해야 하는 고통을 절박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이 고통스럽다. 화훼 사전에도 없는 풀꽃, 그것은 나이든 시인에게는 너무 젊다. 영혼은 젊으나 몸이 너무 낡았다. 하지만 시인은 그 마지막 낡은 몸으로 마음을 채우고, 몸꽃, 환희라 이름 짓고, 꽃을, 여인을, 희망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나는 너에게 아득히 입력되고 있다는, 내가 죽더라도 너는 나를 기억하리라 하는 소망 하나로 죽음의 암내를 이겨내려 한다. 하지만, 죽음 끝에 선 자, 죽음과 접신하는 노시인의 모습은 천착하는 태극무진의 진실만큼 아프다. 그리고 슬프다.

지난 2월 27일,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절차를 변론종결하였다. 이제 8명의 재판관의 평의와 평결, 그리고 선고가 남아 있다. 위기의 대한민국에 절박한 해빙기가 도래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탄핵을 찬성하는 이들과 반대하는 이들의 몸짓이 점차 더 절실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탄핵결정이 이루어지기 전에 박근혜 대통령이 자진 하야할 것이라는 확인되지 않는 의견들이 개진되고 있다. 자진 하야로 물러나는 것과 탄핵결정으로 물러나는 것 사이에는 신분예우상의 차이가 크다.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탄핵결정으로 물러나게 되면 전직대통령으로서 누릴 수 있는, 연금(현직 대통령의 95% 보수상당액) 수령, 유족연금(박근혜 대통령에게는 배우자 및 30세 이하의 자녀가 없으니 유족연금은 해당되지 않는다)의 수령, 기념사업에 필요한 지원, 비서관 3명 및 운전기사 1인의 지원, 교통ㆍ통신 및 사무실 제공 등의 지원, 본인에 대한 치료, 그 밖에 전직대통령으로서 필요한 예우를 받을 수 없게 된다. 유일하게 필요한 기간 동안 경호 및 경비의 예우만 받을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를 그나마 받기를 원한다면 탄핵결정이 나기 전에 자진 하야의 길을 택하는 방안을 모색해 볼 수도 있다.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결정을 예상하고 자진 하야의 길을 탄핵결정 선고 전에 택할 수 있을 것인가 여부인데, 박근혜 대통령의 현재까지의 행태를 보면 탄핵기각이나 각하가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는 듯하기 때문에 결코 자진 하야의 길을 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필자의 견해가 맞지 않아, 박근혜 대통령이 자진 하야의 길을 택할 때 자진 하야가 허용될 것이냐 여부이다. 이러한 경우 적용될 수 있는 법령으로 “비위공직자의 의원면직 처리제한에 관한 규정”이 있다. 위 규정은 재직 중 비위를 저지른 공무원이 형사벌이나 징계처분을 회피하기 위하여 의원면직을 하는 사례를 방지함으로써 공직기강을 확립하고 깨끗한 공직사회를 구현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결정문은 “대통령도 공무원”임을 분명히 하고 있으므로 박근혜 대통령도 이 법의 적용대상이 된다. 탄핵은 공무원의 파면사유(징계처분)에 해당되기 때문에 파면대상자인 탄핵 피소추인인 박근혜 대통령은 파면처분을 회피하기 위하여 의원면직(자진 하야)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탄핵소추 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자진 하야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동법은 임용권자는 의원 면직을 신청한 공무원이 비위와 관련하여 형사사건으로 기소 중이거나, 징계위원회에 중징계의결 요구중이거나, 감사원, 검찰, 경찰 및 그 밖의 수사기관에서 비위와 관련하여 조사 또는 수사를 받고 있거나, 각급 행정기관의 감사부서 등에서 비위와 관련하여 내사중인 경우에는 사표(의원 면직, 자진 하야가 이에 해당)를 수리해서는 안 된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강제규정을 둔 이유는 재직 중 비위를 저지르고서도 연금 등의 수혜를 그대로 누리고자 징계처분이나 형사처벌 전에 사직하는 꼼수를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국가공무원 신분이 인정되는 이상 위 법령의 예외가 될 수 없다 할 것이다. 혹자는 대통령은 임용권자가 없으므로 위 법의 적용대상자가 될 수 없다는 견해가 있을 수 있으나, 이는 형식논리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다.

문제는 현재 8인의 헌법재판관의 재판절차가 9인의 재판관에 의해 재판받을 기회를 박탈당하게 되어 부당하므로 각하되어야 한다는 박근혜 대통령 측의 주장인데, 이는 전혀 타당하지 않다. 이미 8인의 헌법재판관에 의해 위헌 결정 판결이 난 경우도 여러 차례 선행절차가 있었고, 7인의 헌법재판관에 의한 위헌 결정도 여러 차례 있었다. 즉 헌법재판관 수가 적다는 것은, 헌법재판관이 9인인 경우 네 명이 기각(탄핵반대)에 찬성해야만 기각되는데 반해 8인인 경우 세 명만 기각에 찬성해도 기각이 되므로 네 명의 반대자를 확보하는 것보다 세 명의 반대자를 확보하는 것이 보다 더 쉬우므로 피소추인인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서는 전혀 불리할 것이 없다. 오히려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인데도 이를 부당하다고 하는 것이야말로 부당한 주장에 불과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진규 시인은 시인의 생명은 “상상력”에 있다는 주장을 자주 하곤 하였다. 예를 들어 어머니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을 때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말을 꺼내는 대신 “어머니의 고봉밥”을 상상하라는 것이다. 지금 젊은 세대에게는 고봉밥이 주는 의미가 많이 약화되었겠지만, 가난했던 시절, 자식의 그릇에 밥을 고봉으로 담아 주던 모습이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어머니는 자식에게 고봉밥을 차려 주기 위해 자신의 밥그릇을 비워야 했고, 밥을 굶어야 했고, 물을 마시며 허기를 채워야 했던 그 사랑, 그게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모두가 시인의 상상력을 함께 공유하게 될 때 어머니의 사랑이 하나의 실체가 되어 우리 곁에 다가오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탄핵결정 여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대통령이 법률을 초월하여 자진 하야의 길을 택할지, 끝까지 해빙기의 위험을 안고 커다란 돌덩이를 안고 얼음이 녹아내릴 때 함께 굴러떨어지는 위험한 길을 택할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해빙기에, 죽음의 암내가 짙어질 때에 질지 우리의 상상력은 끝없이 확장되어지고 있다. 우리의 상상력이 화훼 사전에도 없는 풀꽃, 환희의 이름으로, 불꽃의 민주주의, 광장의 민주주의로 다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회복하게 되는 상상력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을 듯하다.

프랑스 인문학자 질베르 뒤랑은 “상상력은 이성보다 힘이 세다”라고 말하였다. 모든 이들이 이성이, 현실이, 실질적인 힘이 더 힘이 세다고,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의 권력이야말로 최고의 힘이라고 모든 것을 힘으로 밀어붙일 때, 블랙리스트에 기록된 연극쟁이, 소설생이, 시쟁이, 노래쟁이 등의 상상력이 세상을 바뀌고, 풍물패의 노랫가락이, 춤사위가 세상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을 보면, 상상력이 이성보다 더 힘이 세다는 것이 맞는 말인 듯싶기도 하다. 한 주 남았다. 이 한 주가 대한민국의 역사를 결정하는 소중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시중에는 “힘이 세다”는 말이 여러 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철학은 힘이 세다거나, 독서는 힘이 세다거나, 아버지는 힘이 세다거나 등등 수많은 힘 센 현상들이 주장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촛불집회를 지켜보며, 하나된 촛불의 힘이 얼마나 센 것인지 새삼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왠지 이번 주 칼럼에서는 긴 이야기가 하고 싶지 않다. 그냥 정진규 선생님의 또 다른 시 한 편을 보자. “햇볕 좋은 가을날 한 골목길에서/ 옛날 국수 가게를 만났다/ 남아 있는 것들은 언제나 정겹다/ 왜 간판도 없느냐 했더니/ 빨래 널 듯 국수발 하얗게 널어놓은 게/ 그게 간판이라고 했다 백합꽃 같다고 했다/ 주인은 편하게 웃었다 꽃 피우고 있었다/ 꽃밭은 공짜라고 했다” (국수가게 전문). 정진규 선생님의 추천으로 현대시학을 통해 시단에 등단한 필자에게 정진규 선생님은 시스승님이시기도 하다. 이제 팔순에 접어드는 선생님께서 세상을 관조하고 계시는 모습을 시작품을 통해 접하면서 “참 치열하셨던 분이셨는데...”하는 감동이 잔잔하다. 어쩌면 오늘로부터 한 일주일쯤 지나고 나면 용광로처럼 들끓었던 대한민국이, 국수 삶은 가마솥처럼 휘몰아쳤던 대한민국이 한 순간 정적에 사로잡힐지 모르겠다. 어찌 보면 승리도 없고, 패배도 없는, 허망함만이 온 국민의 가슴에 상채기로 남는 긴 침묵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은 분명할 것이다. 간판도 없는 국수가게, 시인은 왜 간판이 없냐고 묻고, 국수집 주인은 빨래 널 듯 국수발 하얗게 널어놓은 게 간판이라고, 그게 자연스러운 간판이라며 웃었다. 그러며 노시인을 가르친다, 꽃밭은 공짜라고. 노시인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여기가 오래된, 옛날부터 있던 국수가게라는 것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새삼 물었던 것은 그 구수한 국수 삶은 냄새와 더불어 사람의 산 냄새를 맡고 싶어서였을 게다. 국수 한 그릇 말아 먹고 나오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그 무엇, 국수가게 주인과 말을, 사랑을, 생각을 섞고 싶었을 것이다. 그게 길게 늘어진 하얀 국수발이고, 우리네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섞임이다.

광화문 광장에서 그 섞임이 있었다. 분리된 경계의 섞임이 있었다. 탄핵이 결정되든 기각되든, 우리는 다시 섞여야 한다. 다만 정의로움이 승리하여, 정의로움으로 하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한 것이다. 풀릴 때가 제일 위험한 것이다. 큰 돌이 굴러 떨어질 때가 제일 불안한 것이다. 하지만, 봄은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 칡넝쿨로 잇고, 담쟁이로 잇고, 환희의 꽃띠로 세상을 이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이어주는 것은 우리는 하나라는 상상력일 것이다. 국민의 하나된 힘은 세고 세다. 무척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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