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무결합연대사회, 유옥희 시인의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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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무결합연대사회, 유옥희 시인의 “그나마 다행이다”
  • 오시영
  • 승인 2017.02.24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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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현대는 개체의 세상이다. 도시화, 문명화, 산업화로 인해 현대인은 모두 외롭다. 변호사이자 작가인 데이비드 리스먼(David Riesman)은 2차 세계대전 직후의 사회현상을 분석한 “고독한 군중”이라는 작품(1950)을 통해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로 현대인을 정의하였다. 리스먼은 인구 성장 단계에 따라 전통 지향, 내부 지향, 타인 지향이라는 세 가지 유형으로 사회적 성격을 규정하고, 현대 사회를 타인 지향의 사회, 즉 출생률과 사망률이 동시에 낮아지며 고령화사회로 진입하게 된다고 예측하였다. 그가 예상한 타인 지향 사회는 제3차 산업이 우위를 차지하며 외부와 타인의 기대에 민감한 인간형이 양산되는 사회로, 그러한 군중 속에 포섭되기를 바라면서 동시에 군중으로부터 괴리되는 고독이 개체를 지배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현대사회는 고독한 사회가 되었고, 출생률과 사망률이 동시에 감소하면서 자살률이 급격히 증가하는 이상한 사회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리스먼은 제4차 산업, 즉 현대 정보화사회가 “개체의 접착성 없는 무결합연대사회”로 발전하리라는 것을 미처 예상하지 못 했던 듯싶다. “개체의 접착성 없는 무결합연대사회(無結合連帶社會)”는 필자가 주장하는 현대사회의 상징어이다. “무결합연대사회”는 결합 없이 이루어지는 연대사회를 의미한다. 결합이 없으니 조직이 없고, 조직이 없으니 영속성도 없다. 하지만 연대되어 있으니 개체가 이루어낼 수 없는 힘의 집약이 있고, 힘의 집약이 있으니 “순간가치의 집단성취”가 가능하게 된다. 미약함에 익숙해 있던 개체들이 접착제 없이 순식간에 한 가지 토픽으로 의견일치를 볼 때 신속하게 결합하여 강한 힘을 폭발시키는 것이 무결합연대사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무결합연대를 가능토록 한 것은 과학기술의 결과이다. 네트워킹의 개방성과 신속성이 이러한 “무결합연대사회”를 가능케 한다. 현대사회는 리스먼의 “군중 속의 고독”에서 철저한 외톨이인데다가 “무결합연대사회”를 통해 무한 폭발력 속의 에너지원이 되는 이중적 사회구조라고 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결정시기가 임박해지고 있는 골치 아픈 이때, 화가이자 시인인 유옥희 선생의 “그나마 다행이다”를 읽으며 잠시 머리를 식혀보자. “모든 길에는, 조합과 배열은 달라도/ 공통점 하나 있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그리고 평지// 평생, 예기치 못한 험난하고/수많은 운명의 부침에 맞서/ 꿈과 희망 찾아 가는 길/ 우리네 인생에도./ 오르막길만./ 내리막길만, 그리고 평지만 있지는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 그래서 희망으로 산다” (전문, “얼뜨기의 세상살이”에 수록, 모던 포엠, 2015).

유옥희 시인은 우리네 인생에 그나마 다행인 게 오르막, 내리막, 평지가 그 정도는 달라도 누구에게나, 시시때때로 변화 속에 찾아오는 것이므로 희망을 갖고 살자고 한다. 오르막길은 힘들지만 성취할, 도달할 목표가 있으니 희망이 있다는 것이고, 내리막길은 실패하여 추락하는 것 같지만 쉴 수 있는 평지가 가까이 있으니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평지는 힘들지 않게 쉬엄쉬엄 가면 되니 이 역시 희망이라는 것이다. 동일한 현상을 반대로 생각하면 절망이겠지만,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이를 받아들이면서 다음을 생각하면 그래도 희망 한 가닥 있다는 것이다. 정말 이 엿 같은 세상에서 희망이라는 게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긴 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결정시기가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측에서는 탄핵시기를 늦춰보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지만, 헌법재판소는 이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피력해 보이고 있다. 목에 매달린 목줄이 점차 조여들어오니 박근혜 대통령은 점차 숨을 쉬기가 힘들어지나 보다. 길어야 20일이 채 남지 않은 듯싶은 탄핵결정이 이제야 그 실체가, 그 위압감이 조금씩 옥죄어 들어오는 느낌을 실감하는 듯하다. 물론 살아온 과정에서 어려움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말 한 마디가 금과옥조가 되어 실행되어 온 “말의 실현”이라는 꿈같은 삶을 살아온 박근혜 대통령은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자신의 말 한 마디로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진다.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2016년 12월 9일 가결된 이후 77일이 흘렀다. 이 기간 동안 온 국민은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로 양분되어 엄청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최순실ㆍ박근혜 국정농단사태에 대한 본격적 수사를 실시한 후 수많은 범죄자들이 구속되고 기소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해 온 거짓말쟁이”인지를 온 국민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환한 웃음 뒤에 감추어진 진면목, 국민 앞에 수많은 거짓말을 하면서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 어이없는 “연극배우”였음을, “꼭두각시”였음을 국민에게 보여주었다. 문제는 아직도 본인이 그 실체의 까발림을 깊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국정농단사태에 대한 특별검사팀의 수사결과와 헌법재판소의 탄핵 관련 소송자료는 조선실록처럼 역사의 한 페이지로 영원히 보존될 것이다.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가 태종실록을 꺼내 태종 이방원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보듯, 세종실록을 꺼내 세종 이도의 사상과 행동을 읽어나가듯, 영조실록을 꺼내 영조 이금의 선정과 실정을 평가하듯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재판기록을 통해 독재자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으며 어떻게 대통령직을 수행하다가 국정을 혼미하게 만들었는지 생생하게 알게 될 것이다. 어리석은 혼군(昏君) 대통령의 실상을 반면교사삼아 다시는 이런 어리석은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교훈을 주는 귀한 지침서로 기능할 것이다.

그녀가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출생 100주년을 맞은 2017년, 그렇게 전국의 모든 중ㆍ고등학생에게 보급하여 아버지의 업적을 자랑하고 가르치고 싶어 했던 국정 역사 교과서 보급 계획은 경북 경산 소재 문명고등학교 한 곳만이 교과서로 채택하는 성과(?)를 거두고 막을 내렸다. 문명고등학교 교직원들, 재학생과 학부형들, 동문들이 그렇게 반대하는 데도 사립학교 이사장의 압력에 굴복한 교장 선생의 독단적 결정으로 국정 교과서가 채택되었으나, 집단적 반대에 직면하여 분규를 겪고 있다. 문명고등학교 학생 몇 백 명이 배우게 될 국정역사교과서를 편찬하기 위하여 국가 예산 100억 원 이상이 소요되었다. 직접적인 예산뿐만 아니라 각종 홍보비용, 반대자들과 찬성자들이 반대와 찬성을 위해 들인 집회 시간에 대한 일당 계산이나 집회 표지 등 제작비용까지 합하면 수백억 원의 돈이 소요되었다. 문명고등학교 학생들이 최종적으로 배우게 될지 아닐지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배우게 된다 하더라도 1인당 1억 원짜리 교과서로 공부하게 되는 셈이다. 그 돈으로 아이들 맛있는 것이나 사 주지 싶다.

국정역사교과서 보급을 통해 아버지의 과를 덮고 공을 자랑하고 싶었던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탄핵결정이라는 극단적 상황에 내몰려 있다. 그런데도 그 밑의 교육부장관이란 이는 탄핵소추결정으로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되어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권한 정지 전 지시를 기계처럼 떠받들고 따르고 있다. 교육부의 수장이라는 자가 이렇게 영혼 없는 공무원으로 교육을 망치는 제일선에 서 있는 바보가 되어 버림에 거의 모든 국민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만, 여전히 국정역사교과서를 옹호하며 태극기의 본질을 훼손하는 자들의 함성은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지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유옥희 시인의 또 다른 시 “절망”을 보자. “간절한 소망을 첩첩 쌓아가며/ 헛헛하고 암울한 날도 씩씩한 척/ 두려워도 실날같은 희망으로 버텨온 시간// 온 세상 다 가진 듯 했을 때도/ 기쁜 내색 숨긴 채 만남 뒤의 이별을 걱정하고/ 애태우며 표현 못한 응어리진/ 사랑이 있었다// 섣부른 상사병에 어긋날까 마냥 기다리다/ 두메산골 깊은 계곡 웅덩이,/ 고인 물보다/ 더 시퍼런 가슴앓이// 속앓이 세월 지나 가까운 미래/ 한 풀어주며 위로받기 원했는데// 억장, 무너지네/ 느닷없이 돌아선 발길”. (위 같은 시집 수록). 이 시는 어찌 보면 아주 단순한 연애시 같기도 하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고, 헤어지게 되는 단순한 과정을 묘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시를 “오늘의 대한민국”으로 환치해 보면, 전 국민의 마음이 이런 절망상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기에, 보릿고개를 극복한 경제성장의 주역이었다고 자찬하는 산업화시대의 지지자들의 지지 속에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이 너무 정치를 못해 억장 무너진다고 말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해 자식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을 찍었다는 어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억장 무너진다”며, 창피해 죽겠다는 아우성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오고 있다.

희망과 절망은 동시에 존재할 수가 없다. 정호성 시인은 열두번째 시집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에서 “희망에는 희망이 없다”고 희망의 위선을 고발한다. 시인은 절망을 통해 희망을 가졌을 뿐이라며, 희망의 손을 먼저 잡는 것보다 절망의 손을 먼저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변한다. 희망 속에 희망이 없다는 말, 절망에서 희망을 본다는 말, 맞는 말이다. 하지만 동일한 상황에서 희망을 보는 자와 절망을 보는 자는 있다. 동시 존재는 아니지만, 동시 다른 관점은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가장 절망의 구렁텅이상황에 내몰리고 있는 탄핵정국 속에서 참다운 민주공화국의 희망을 보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정치무관심층이 옅어지고, 참여를 통한 정치 혁신이 진정 중요한 것임을 깨닫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은 리스먼의 군중 속의 고독을 즐기고 살다가, 이제는 촛불집회를 통해 “무결합연대사회의 위대함”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고, 행동의 주체자로서의 지위를 인식하게 되었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음은, 이러한 자각된 주체의식이 예전처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무디어지거나 망각되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SNS를 통해, 사회관계망을 통해 더욱 철저하게 고독해지면서 동시에 “번개 같은 무결합연대사회의 수시적 조성”이 동시다발적으로 형성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무결합연대사회는 작은 지역단위에서 국가단위로 발전하여 왔다. 이제는 국제적, 세계적 단위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한국인이 미국의 대통령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고, 그 반대도 가능한 무결합연대사회의 결집력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앞으로 인류보편의 역사인식이 결여된 사회는 이러한 무결합연대사회의 응집력을 통해 고쳐져 나갈 것이고 수정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희망아, 희망아, 어디 있느냐? 절망아, 절망아, 어디 있느냐? 희망을 거절하는 정호승 시인이 희망에 집착하듯, 우리네 인생에서 오르막길을 오를 때도 내리막길을 내려갈 때도 평지를 걸을 때도 그나마 다행이라며 희망으로 살아야한다는 유옥희 시인이 절망 가운데에서도 절망에만 사로잡혀 있지 않듯,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희망을 품고 내일, 무결합연대사회의 희망을 보고 살아가자. 착하고 선한 대한민국 국민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등교육을 받은 대한민국 국민이 지난 해 말부터 금년 초까지 너무 힘들어 하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사태로, 무엇보다도 커다란 잘못을 저질러 놓고서도, 전혀 반성할 줄 모르는 후안무치한 이들의 낯짝을 매일 매일 티비를 통해 지켜봐야했던 국민들의 집단 노이로제성 울화병은 하루 속히 치유되어져야 한다. 여전히 박근혜 대통령이 무엇을 잘못했느냐며 어깃장을 놓은 새누리당, 최순실이 최서원으로 개명하듯 자유한국당으로 개명하고서도 여전히 새누리당의 잘못된 길을 걷는데 수치심을 못느끼는 그들로 인해 많은 이들이 화병 났다고 야단들이다.

시 한 편 읽자, 그나마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 그래서 희망으로 산다라며 가슴을 쓸어내리자, 당신은 참 훌륭하고 멋진 사람이다. 그래그래 나는 참 좋은 사람이야 라고 스스로를 위로하자. 어찌? 위로 좀 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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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 2017-02-27 08:52:16
교수님 언제나 일필휘지 감사합니다
언제나 글로 위로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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