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드라마로 보는 공무원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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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드라마로 보는 공무원 한국사
  • 노범석
  • 승인 2017.02.21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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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법국사 노범석 교수의 영화와 드라마로 보는 공무원 한국사

사람은 누구나 ‘호민’이다, 영화 <군도>

<홍길동전>의 저자이자 광해군 때의 정치가인 허균은 ‘호민론’에서 백성을 세 부류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첫 번째 부류는 항민(恒民)이다. “무릇 이루어진 일이나 함께 기뻐하면서 늘 보이는 것이 얽매인 자, 시키는 대로 법을 받들고 윗사람에게 부림을 받는 자는 ‘항민’이다. 이들 항민은 두려워할 만한 존재가 아니다.”

두 번째 부류는 원민(怨民)이다. “모질게 착취당하며 살이 발겨지고 뼈가 뒤틀리며, 집에 들어온 것과 논밭에서 난 것을 다 가져다 끝없는 요구에 바치면서도 걱정하고 탄식하되 중얼중얼 윗사람을 원망하거나 하는 자는 원민(怨民)이다. 이들 원민도 반드시 두려운 존재는 아니다.”

허균이 주목한 부류는 바로 세 번째, 호민(豪民)이다. “자기 모습을 푸줏간에 감추고 남모르게 딴 마음을 품고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엿보다가, 때를 만나면 자기의 소원을 풀어보려는 자가 호민(豪民)이다. 이들 호민이야말로 두려운 존재이다.”

호민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재물이 넉넉하고 세력이 있는 백성”이라고 뜨고, 실제 올해 지방직 7급 시험에서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호민이 나라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표현하여 허균의 호민론을 설명하였다. 그러나 호민을 이렇게 이해하고 실제 허균의 ‘호민론’을 보면 내용이 선뜻 이해가 안 간다. 허균이 말하는 호민에 대해 더 알아보자.

“호민은 나라의 틈을 엿보다가 일이 이루어질 만한 때를 노려서, 팔뚝을 걷어붙이고 밭이랑 위에서 한 차례 크게 소리를 외친다. 그러면 저 원민들이 소리만 듣고도 모여드는데, 함께 의논하지 않았어도 그들도 같은 소리를 외친다. 항민들도 또한 살길을 찾아 어쩔 수 없이 호미자루와 창자루를 들고 따라와서 무도한 놈들을 죽인다.”

이에 따르면 호민은 민란 내지 혁명의 기폭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호민은 시세에 맞추어 행동만 취할 뿐, 실제 민란을 일으키는 것은 민중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민란은 군사권을 쥔 지배층의 반란과는 그 성격이 다를 수밖에 없다. 지배층의 반란에서는 주모자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피지배층의 민란에서는 다수의 피지배층이 움직이게 된 원인이 중요하다.

그래서 허균이 강조하고 경계하는 것 또한 호민이 아니라 백성이다. “하늘이 사목(司牧)을 세운 까닭은 백성을 기르려고 했기 때문이지, 한 사람으로 하여금 위에 앉아서 방자하게 흘겨보며 골짜기 같은 욕심이나 채우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즉 그러한 짓을 저지른 진, 한 이래의 나라들이 화를 입은 것은 마땅한 일이었지 불행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부패한 지배층은 이 말을 의도적 곡해하여 백성 대신 엉뚱하게 호민만 두려워한다.
 

 

19세기 임술 농민 봉기를 주제로 한 영화 <군도>에서도 남원 목사와 대부호 조윤(배우 강동원)은 지리산 화적떼만 소탕하면 도적질이 잠재워질 줄 알았을 것이다. 조윤과 남원 군수, 그리고 토포사는 ‘군도’의 핵심 맴버들을 잡아 죽인 후 호민이 없다는 것에 한동안 안심하였다.

그러나 지리산 영화 마지막에 민란의 불을 지핀 인물인 도치(배우 하정우)는 쇠백정으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는 의미에서의 호민이 아니다. 또한 혁명이나 민란의 대의가 따로 있지도 않다. 하지만 도치가 홀로 남원 병사들을 각개격파했더라도, 저잣거리에 모인 백성들이 봉기하지 않았다면 지배층들을 징벌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전근대 사회의 숱한 민란이나 역사에서 그간 등장했던 혁명에 대해 그간 여러 가지 보수적‧진보적 해석이 있어 왔다. 어떻게든 ‘호민’이라는 배후세력으로 민란의 원인을 파악하려는 편협한 시각이 있는 반면, 거대한 역사적 흐름과 전망을 전제해놓고, 더 좋은 세상으로 바뀌어 나가는 이행기로 보는 결과론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하지만 혁명이나 민란을 그대로 직시하는 데에는 부차적이거나 큰 의미가 없는 해석일 뿐이다.

혁명 혹은 민란을 직시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사회적 모순’이다. 임진왜란에서 극적으로 살아났던 조선은 만성적 재정 부족, 신분제의 동요, 총액제의 남발로 인해 발생한 삼정의 문란, 지방 관리의 부정부패 등으로 19세기에 이미 사망선고가 내려진 상태였다. 이때 홍경래나 유계춘 등을 사사로운 반란의 수괴로 보거나 혁명의 주동자로 보는 것은 사실 차원에서의 접근이 아니라 실천적 차원에서의 접근이다.

사실 홍경래나 유계춘이 등장하지 않았더라도 19세기의 민란은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었다. 백낙신이나 조병갑 등의 탐관오리가 아니었더라도 민란의 원인 제공자는 언제든지 생겨났을 것이다. 민란 그자체가 아니라 민란으로 표출되는 사회적 모순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영화 <군도>에서의 조윤도 조선시대의 또 다른 신분적 모순인 ‘서얼 차별’의 피해자기도 하다. 사람은 누구나 호민이 될 수 있으며 누구나 사회적 모순의 중심에 있을 수 있다. 역사가뿐만 아니라 국정을 운영하고자 하는 분들은 영화 <군도>에서 조윤을 죽인 인물이 도치가 아니라 이름 모를 백성이었다는 것을 두고두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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