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직 9급 시험일, 응시자의 하루를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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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직 9급 시험일, 응시자의 하루를 보니…
  • 이인아 기자
  • 승인 2017.02.21 14: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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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2016년 국가직 검찰 9급 응시자 ㅇㅇㅇ

“간절한 마음은, 없는 실력까지 나오게 해”

올 국가직 9급 공무원시험에 전국 22만 8천여명이 응시할 예정이다. 올 국가직 9급 선발인원은 4,900여명. 필기합격 결정범위가 선발인원대비 120~130% 수준으로 정해질 시 약 6,300여명이 합격의 기쁨을 안게 될 전망이다. 올해도 다수 신규 및 기존 수험생들의 응시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며, 전년대비 지원이 늘어난 만큼 특히 올 국가직 9급 시험이 생애 처음보는 공무원시험인 초시생들의 응시가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공무원시험을 처음 보려는 초시생들은 공무원시험이 어떨지 자못 궁금할지도 모른다. 이에 지난해 국가직 9급 시험이 첫 공무원시험 도전이었던 응시자의 기고문을 통해 국가직 9급 시험 당일 떨린 심정과 긴박했던 일과를 생생하게 전달해보기로 했다. 다음은 수험생 시각에서 본 시험당일 시험전, 후 일과다. -편집자 주

시험 전

6A.M.

전날 미리 맞춰둔 알람 소리를 듣고 깼다. 혹시 못 일어날까봐 5분 간격으로 4개나 맞춰놨었는데, 긴장해서인지 한방에 성공했다. 세수도 하기 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오늘이 시험일이구나.’ 아직 잠들어있는 가족들을 위해 살금살금 씻으러 갔다. 오늘따라 물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 같다.
 

▲  국가직 9급 시험당일, 적막한 교실의 모습/법률저널 자료사진

6:30A.M.

평소에 공부하던, 가장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준비물 확인을 했다. 신분증, 수험표 등등. 가방을 싸놓고 아침을 먹는다. 시험일이라고 특별식인건 아니고. 그냥 먹던 음식, 익숙한 집 밥을 먹었다. 그런데 왜 오늘따라 이 집 밥마저 색다르게 느껴지는지?

7A.M.

준비물을 최종점검하고 조용히 집을 나섰다. 요란하게 나가지는 않았다. 들뜨면 컨디션 조절이 안 되니까. 역에 도착해서 목적지를 확인한다. 도착까지 넉넉잡아 한 시간 반 정도다. 운 좋게 열차가 바로 와서 곧 탑승할 수 있었다. 손에 책을 든 사람들이 많다. 평소엔 신경도 안 썼을 텐데, 날이 날이니만큼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을 다시 보게 된다. ‘뭘 공부하고 있나?’ ‘나랑 같은 시험 보러 가나?’ 흘깃흘깃 책 이름을 훔쳐본다. 아! 공무원 교재다. 저 사람도 같은 처지구나, 생각하니 오만 감정이 든다. 괜히 견제하고 싶고, 한편으론 연민이 느껴지기도 하고. 그렇게 사색에 잠기다가 퍼뜩 나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낡은 어휘책을 꺼내 한 자 한 자 짚어가기 시작했다.

7:50A.M.

환승역에 도착했다. 9시 20분까지 입실완료인데 남은 시간을 보니 많이 뜬다. 역내 매점에 가서 커피를 한 잔 사먹었다. 잠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무념무상이었던 것 같다.

8:10A.M.

시험장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많은 수험생들이 지하철을 탔다. 하나같이 손에 뭔가를 들고 중얼 중얼거린다. 이 쯤 되면 모두가 공무원 수험생이라는 확신이 든다. 아, 어쩌면 저기 앉아서 눈 감고 음악을 듣는 남자도 수험생일지 모른다. 목적지에 내렸다. 생각보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그런데 나가는 출구가 나랑 똑같다. 아직 시험시간까지 멀었는데도 이렇게나 오는구나. 날씨는 제법 쌀쌀했다. 이 차가운 날씨에 용케 피어난 꽃들이 대단해보인다. 나도 저렇게 필 날이 오겠지, 유치한 생각을 하면서 길을 걸었다. 교정이 예쁜 학교였다. 역에서 꽤 멀었지만 사박사박 걷는 기분이 상쾌했다.

▲  국가직 9급 시험장에 들어선 응시자들 모습/법률저널 자료사진

8:45A.M.

내가 치른 시험장 맞은편은 기상직 공무원 시험장이었다. 어쩐지 사람이 많다 싶더니. 기상직 시험장이 마주보고 시험본다고 생각하니 뭔가 신기하다. 교문에 도착했을 땐 정신이 혼미해졌다. 목소리 큰 언니오빠들(학원 선생님들 같지만 편의상 언니오빠라고 하자)이 이것저것 나눠준다. 뭔지는 모르지만 일단 받았다. 가방에 쑤셔 넣어주는 분도 있었다. 학원 홍보하는 것 같은데 목소리가 겹쳐서 잘 안 들렸다. 잽싸게 교문을 통과해서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9A.M.

자리를 찾아 앉았다. 방금 받은 물질들(?)을 확인해보니 홍보 책자, 파일, 사탕 뭐 그런 것들이었다. 교실 안에는 이미 온 사람들이 공부 중이었다. 나는 복도로 나가 화장실에 갔다. 시험 직전엔 공부하지 않는 것이 내 철칙이다. 물도 한 모금 마시고, 스트레칭 좀 하다가 다시 들어왔다.

9:20A.M.

입실완료 시간부터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감독관 들어오고, 그냥 하라는 대로 했다. 휴대폰 끄고(만일을 대비해 배터리까지 분리했다) 유의사항 듣고. 긴장을 전혀 안했었는데 9시 55분쯤 되니까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뛴다. 응시율은 70%였다.

10A.M.

시험이 시작됐다. 100분, 100분 안에 100문제. 1분에 1문제. 가장 잘하는 과목에서 최대한 많은 시간을 단축해야 한다. 국어 영어 한국사 수학에 자신 있었던 나는 그 과목부터 풀기 시작했다. 국어에서 아등바등 했지만, 다행히도 영어, 한국사가 쉬워서 3과목을 모두 끝냈을 때 시간이 50분 정도 남아있었다. 한층 여유를 가지고 수학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왜인지 안 풀렸다. 고등학생 때 그렇게도 공부했던 수학인데! 한 번 막히기 시작하자 버퍼링이라도 걸린 것처럼 두뇌회전이 둔해졌다. 손이 덜덜 떨렸다.

▲ 문제지를 가지고 교실로 향하는 감독관들의 모습/법률저널 자료사진

‘안 풀리는 건 넘기고 다른 것부터 풀어야해!’

알고는 있다. 다른 것부터 풀어야 된다는 걸. 하지만 이번이 첫 시험이었던 나는 바들바들 떠느라 다른 문제로 넘어갈 생각조차 못했다. 시간을 보니 20분도 채 남지 않았는데, 내 앞에는 수학 10문제와 사회 20문제가 남아있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 이후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회 지문은 겉핥기식으로 한 두 줄 읽었고 답은 거의 찍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못 푼 수학 문제도 다 날렸다. 다급하게 마킹을 시작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끝까지 놓지 않았던 것은 그간 고생한 나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마지막 발악이라고나 할까.

시험 후

11:40A.M.

시험이 종료되었다. 끝나는 그 순간 들었던 감정은 아쉬움이었던 것 같다. 처음 본 시험이었기 때문에 한 번에 붙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있는 실력 다 발휘하고 오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못한 것 같아서, 그게 아쉬웠다. 수험생들은 재빠르게 일어나 교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일부러 짐을 천천히 쌌다. 이대로 나가면 1년을 더 기다려야 하니까, 눈에 다 담고 가자는 심산이었다. 15분이 지나서야 마지막으로 교실 문을 닫고 나왔다.

이미 사람들이 빠져나간 탓인지 복도는 허전했다. 그래서 화장실에서 흐느끼는 목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던 것 같다. 다가가서 ‘울지마세요’ ‘고생하셨어요’ 한 마디 건네고 싶지만 이런 말조차도 위로가 되지 않을 걸 알기에 발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듣다보니 나까지 눈물이 날까봐 얼른 뒤돌아 내려왔다. 웃으면서 통화하는 사람들, 계단에 우두커니 서 있는 사람들, 주저앉아 우는 사람들, 무리지어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집으로 발길을 재촉하는 사람들, 주변 음식점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교문에서 기다리고 있던 수험생의 지인들, 시험장을 촬영하러 온 학원/방송가 관계자들.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해졌다.

1

2P.M.

주변에 국회의사당이 있어서 거기를 갈까 잠시 고민했다. 마침 꽃놀이하기 좋은 날이라고 했다. 지하철 안에 들어와 보니 가족들(그리고 연인들)이 삼삼오오 무리지어 웃고 있었다. 기분이 나지 않아서 집으로 가기로 했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인터넷을 들어가니 실시간 검색어에 ‘국가직 공무원’이 올라 있었다. ‘빠른 채점을 제공한다’는 커뮤니티 광고글이 한 가득이었다.

오후 1시에 정답지와 해설강의를 올린다고 했다. 채점을 할까 말까, 수십 번 고민했다. 나는 절박함이 부족했다. 열심히 한다고 한 건데, 어쨌든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건 내 탓이었다. 한 두 문제도 아니도 두 과목을 통째로 날려버렸으니. 합격할 거란 기대가 없었던 것, 그게 문제였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합격하겠다는 각오로 덤볐어야 했는데. 내 시험지는 채점할 가치가 없어보였다. 그래서 채점을 하지 않기로 했다. 성적 발표일까지 겸허하게 기다리면서 기초부터 다시 공부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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