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 (125) - Happy K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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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 (125) - Happy Kit
  • 차근욱
  • 승인 2017.02.21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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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공단기 강사

오늘은 바람이 좀 불긴 하지만 볕이 좋은 날인지라 오랜만에 테이블에 커피를 한 잔 올려 놓고 벤치에 앉은 채 파란 하늘을 보고 있었다. 아, 행복해. 그 때, 내 머리 속에는 문득, 현대 사회를 풍자한 어떤 그림에서 보았던 광경이 뇌리에 계속 남아 무한반복 되고 있었다. ‘행복 킷’이라고 되어 있는 박스의 내용물은 최신형 스마트 폰이나 랩탑 컴퓨터나 이런 저런 물건들로 채워져 있었는데, 그야말로 ‘욕망의 편린’이랄까. 정말 저런 물건들로 사람은 행복해 지는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긴... 끼니보다 몇 배나 비싼 디저트를 먹으며 자기 치유를 받는 세상이니까.

갖는 것으로 행복을 느끼는 방법은 먹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행복만큼이나 강렬하고 직접적이면서 간편한 방법이다. 인스턴트식 행복 만들기 라고나 할까. 보통 어릴 적 경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갖고 싶어 했던 것을 사달라고 떼를 쓰고 얻어 낸 뒤 행복해 했던 어린 시절의 경험이야 누구나 있지 않나. 좋은 직장,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연봉... 기타 등등.
 

어쩌면 행복의 기준이 나 역시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전에는. 하지만 요즘의 삶의 기준이란 예전과는 제법 달라졌다. 지금보다도 더 풋내기였던 시절에는 눈에 보이는 가치가 행복의 기준이었다면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가 조금 더 행복에 가깝다고나 할까. 스마트 폰을 최신형으로 바꾸어서 느낄 수 있는 행복 따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되었다.

‘행복 킷’에 나열된 것들은 쉽게 말해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행복이란 결국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캐캐 묵은, 조금은 진부하면서도 식상한 질문에 다다른다. 우리는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 윤리시간에 배웠지만, 본능적으로 행복은 어쩌면 돈으로만 살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조금씩 본능을 향해서 폭주하기 시작한다.

돈 없이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은, 사랑만으로도 배부를 수 있다는 말 만큼이나 아름다운 말이다. 그렇다. 말 그대로 ‘아름다운’ 말이다. 입가에 잔뜩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지만, 아무도 그 말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름다울 뿐이다. 결국 행복에도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최근에는 손목시계를 잘 차지 않게 되었다. 예전에는 제법 시계를 좋아해서 소재의 종류에 따라 하나 둘 사들이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 화려한 갑갑함을 견딜 수 없게 되었다. 시초는 타이핑을 할 때 시계가 걸리적거리기 시작해, 원고를 쓸 때면 시계를 풀어 놓는 것이었는데 나중에는 손목에 아무 것도 없는 그 유쾌함이 좋아 특별히 손목에 꼭 시계를 차야 하는 일이 없다면 손목시계를 잘 차지 않게 되었다.

손목시계가 갑갑해 차에 타거나 기차에 탈 때 벗어놓고 있다 보니 하나 둘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내 시계 중 가장 비싼 손목시계의 경우에는, 시계 길이를 조절하기 위해 시계방에 맡겨 놓았었는데 전문가가 아니셨던지, 시계방 아주머니의 시계 줄 수선은 곧 시계 줄의 파손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손목에 차고 다닌 지 일주일도 안 되었을 무렵, 어느 순간엔가 시계 끈 중 일부가 풀어지며 부품까지 소실되어 더 이상 손목시계는 손목시계로서의 구실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시계방에 맡기는 것이 아니었는데, 라며 조금은 안타까워하기도 했지만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으랴 싶어 그냥 잊기로 했다. 덕분에 큰 마음을 먹고 산 시계는 고스란히 박스를 지키게 되었다.

그리고는 잠재의식에서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무거운 데다 원고 쓸 때 걸리적거리기만 하고 잘 잃어버리는 시계에 더는 돈을 쓰지 말자.’ 그 이후에는 손목시계를 사지 않게 되었다. 간혹 정말 손목시계가 필요한 날에는 가장 가벼운 시계를 차고 나간다. 가격도 가장 저렴하고 가장 가볍고 시간도 잘 맞는 데다, 아직까지 내 곁을 지켜주고 있는 시계를.

그렇다. 시계는 시간이 잘 맞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시계는 시간을 보기 위한 것이니까. 하지만 어느새 인가 훨씬 무겁고 거추장스럽기만한 시계가 고급시계가 되어 버렸다. 지금 차고 다니는 시계의 몇 십 배의 값을 주고 산 시계는 내게 행복을 주지 못했다. 차고 있으면 불편할 뿐만 아니라 무거웠고 잃어버리고 나서는 속상했다. 지금의 시계라면 잃어버려도 그렇게까지 속이 상하지는 않겠지. 게다가 타이핑을 할 때 불편하지도 않고 가볍다. 그리고 시계의 본분에도 충실하다. 되도록 손목시계를 차지 않는 홀가분한 자유로움을 선호하지만, 가끔 손목시계가 필요한 날에는 나는 이 소박하지만 든든한 손목시계로 충분히 행복하다.

행복은, 더 좋고 더 멋있고 더 화려한 곳에 있다고들 생각하지만, 소박한 것에 깃들기 더 쉬운 것이 아닐까. 결국 우리에게 있어 잡지에서 보여 지는 스포트라이트 속 ‘행복 킷’이란, 진정한 행복이 아닐지 모른다. 진정한 ‘행복 킷’이란, 감사하는 마음, 아껴주는 마음, 공감하는 마음, 그리고 내 노력을 통해 얻은 소박한 자부심의 순간순간이므로 ‘킷’이라 부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까짓 명품 차를 타고 다닌다고 행복해질 리가 있나. 행복이란 내 마음에 있는데. 뭐, 거기에 명품 차를 더해준다면 또 모르겠지만.

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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