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 (72)- 보고 싶은 것만 보다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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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 (72)- 보고 싶은 것만 보다가는 ...
  • 신종범
  • 승인 2017.02.17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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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법률사무소 누림 변호사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학생들은 요즘이 조금은 여유롭고 설레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겨울방학을 끝내고 학교에 가기는 하지만, 받아야 할 수업은 거의 끝나서 자율학습을 하거나 단축수업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졸업을 하거나 새 학년을 앞두고 어떤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게 될까하는 마음에 들뜬 기분이 들기도 한다. 무엇보다 숙제도 없는 봄방학이 기다리고 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봄방학을 시작하면서 성적표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성적표 앞쪽에는 새 학년을 시작할 반이 찍혀 있었고, 안쪽에는 지난 1년 동안 각 교과목의 성과가 수, 우, 미, 양, 가로 표시되었다. 더불어 선생님께서 지켜 보아왔던 학생에 대한 평가도 담겨있었다. “성실하게 생활하고, 솔선수범으로 급우들에게 모범이 되며...” 주로 상투적이고 의례적인 표현이 많았지만, 개중에는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쏟으셨던 몇 선생님들의 쓴소리도 있었다. 성적표를 받아든 눈길은 의례적인 칭찬에는 오래도록 머물었지만, 애정어린 비판에는 잠깐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어느 날 우연히 책상을 정리하다가 초등학교 때 성적표를 발견하게 되었다. 대부분 모호하고 상투적인 표현들이었는데, 한 선생님이 써 주신 성적표에는 내가 어느 점이 부족하고, 어떤 잘못된 습관이 있으며, 어떻게 고쳐 나갔으면 좋겠다는 내용이 쓰여져 있었다. 놀랍게도 그 선생님이 지적하셨던 문제는 내가 고치지 못하고 있는 단점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만약, 그 선생님이 써 주신 쓴소리를 주의깊게 보고 고치려는 노력을 했더라면 이제는 습관처럼 되어 버린 단점을 고치지 않았을까 싶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에만 집중하는 경향은 어렸을 때 뿐만 아니라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러한 경향이 취미나 보통의 일상생활에 나타남은 자연스럽고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업무를 처리하거나 이성적 판단을 하는데 있어 이러한 경향은 때로는 심각한 문제를 만들기도 한다. 검사는 피의자를 강력히 처벌하기 위해 피의자의 좋지 않은 면만을 보려는 경향이 있다.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라고는 하지만, 피의자에게 유리한 사정은 검사의 관심 영역이 아니다. 검사는 피의자로 입건한 순간부터 최대한의 처벌을 받게 하기 위한 사실과 증거만 보고 싶어진다. 이를 통하여 범죄자를 엄벌함으로써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정의를 실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피의자를 범죄자로 예단하고, 처벌에만 매몰된 나머지 생사람을 잡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 재심으로 무죄 판결을 받은 사건들을 보면, 수사기관이 다른 증거들은 무시한 채 오직 자신들이 입건한 피의자를 범죄자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증거에만 집중하고 더 나아가 증거를 만들기까지도 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진실을 보려 하지 않고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본 결과다. 검사와는 반대로 변호사는 의뢰인에게 유리한 내용에만 관심이 간다. 그리고, 의뢰인으로부터 나름 법률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만 들으려고 한다. 불리한 사실에 대하여는 귀나 눈을 닫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변론을 준비하는 과정은 편하다. 의뢰인의 이야기를 적당히 취사선택하여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유리한 내용만을 중심으로 생각하니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도 충만해 진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매우 위험하다. 가뜩이나 불리한 이야기는 감추려고 하는 것이 의뢰인의 본능인데 변호사마저 유리한 이야기만 들으려 한다면 법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진실에 불의타를 맞게 된다. 때로는 법률적으로 의미없다고 무시한 이야기가 재판의 결과를 바꿔 놓을 수 있는 무기였을 수도 있다. 검사, 변호사와 달리 대립된 위치에 있지 않은 판사는 상대적으로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경향은 덜하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만큼 쌓여 있는 사건에 치여 당사자의 이야기 대신 기록에만 눈길을 주고, 조기에 형성된 심증에 매달려 이러한 심증을 뒷받침할 증거에만 집중하는 판사의 모습을 보게 될 때도 있다. 이러한 판사의 태도는 검사나 변호인의 경우보다 더 폐해가 크다. 최종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다른 어느 직업보다 법조인에게는 보고 싶지 않은 것, 듣고 싶지 않은 것에도 눈와 귀를 열어 놓은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요즘 학생 때 봄방학을 앞두고 느꼈던 여유와 설렘을 느낀다. 이맘때는 법원의 인사이동 시기로 재판이 열리지 않고, 더구나 필자의 사무실이 있는 곳에 곧 서울동부지방법원이 이전해 오기 때문이다. 얼마 전 새로운 건물에 ‘정의의 여신상’과 ‘서울동부지방법원’이라고 적힌 간판이 내걸렸다. 작은 목소리에도 귀 기울리는 활짝 열린 법원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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