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무고시 합격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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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무고시 합격자 인터뷰
  • 법률저널
  • 승인 2004.07.20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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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의식을 잃고 표류하지 않도록 자신을 다잡아야”

“어느 한 과목 소홀함이 없이 골고루 공부해야”


◇故 김선일씨 피살사건 이후 외교통상부에 대해 비판의 여론이 높은 이 때에 외무고시 최종 합격에 관한 소감은 특별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김면선: 미력하나마 나라를 위해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얻게 되어 기쁩니다. 최선을 다하여 국익을 증진시키고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외교관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박혜진: 우선, 제가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었다는 성취감에 기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기쁜 웃음은 잠시였구요... 이제 더 이상 불확실성과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함께, 같이 공부하던 친구, 선배들에 대한 고맙고도 미안한 마음이 더 컸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딸이 하고자 하는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해주신 부모님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최다연: 무엇보다도 제가 최선을 다해서 준비한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얻게 되어서 정말 기쁩니다. 그리고, 굳이 김선일씨 사건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또 다른 노력을 더욱 기울여야 하는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는 느낌입니다.


◇외무고시를 특별히 준비하시게 된 이유가 있다면


김면선: 동북아 4강에 둘러싸인 분단국이라는 특수한 국제정치적 환경 하에 있는 한국이 얼마나 지혜롭게 그 생존과 번영을 추구하고 나아가 통일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 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한국의 미래를 일구어나가는 데에 직접 몸담고 일하고 싶다는 포부에서 외교관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박혜진: 이 질문은 3차 면접 준비하면서 계속 생각해왔던 문제인데요 (사실 이 때만큼 가장 진지하게 이 문제를 고민한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외무고시 입문이 다른 합격자들에 비해 좀 늦은 편이었습니다. 대학 때 전공이 사회학이었고, 공부를 계속해서 교수가 되는 게 원래 꿈이었죠... 그래서 대학원에서도 사회학을 계속 공부했습니다.

 

제가 외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99년도 대학원에서 학위논문을 준비하면서부터입니다. 당시 한국 사회는 IMF위기 이후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친 총체적이고 고통스런 변화의 시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문제들을 보다 이론적으로 논구하고 싶다는 생각에 ꡒ문화의 세계화ꡓ를 주제로 한 논문을 구상하였고, 논문작성을 위해 관련 서적을 탐독하면서 세계화라는 것이 거부할 수 없는 하나의 흐름이며, 이 거대한 흐름을 잘 헤쳐 나가기 위해서, 후발 산업국가인 한국으로서는 국가의 역할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물론 국가 위주의 발전전략이 가지고 있는 폐해는 국내적으로 정경유착이라는 문제를 가져왔고, IMF위기를 겪으면서 그 발전전략으로서의 유효성 자체가 의문시 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 판단으로는, 21세기 세계화, 정보화라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문제점 즉, 세계화로 인한 열패자 관리 및 정보격차와 같은 문제들에 응전하기 위해서는 보다 민주화된 국가, 즉 시민사회의 요구에 보다 열려있는 적극적이고 책임 있는 국가 및 공무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리라 생각하였습니다. 공무원 중에서도 특히 외무 공무원은 국가의 국경 최전선에 서 있는 공무원으로서 그 역할과 소임에 있어 막중한 책임과 능력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과 함께, 하고 싶다는 강한 도전의식과 욕망을 느꼈습니다.

 

이것저것 거창하게 말씀드렸습니다만, 결론은 외교관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간단한 답변으로 요약될 수 있겠네요.


최다연: 세 가지 모두 ꡐ시험ꡑ이라는 사실 외에는 공통점이 없는 외시, 행시, 사시 사이에서의 고민은 근본적으로 불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왜냐하면, 선택의 기준은 자신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ꡑ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외교관이 제 적성과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그리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느꼈기 때문에 외무고시를 선택했습니다.


◇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가장 어려웠던 순간과 그 극복방법은


김면선: 긴 수험 기간동안 목표의식을 잃고 표류하지 않도록 자신을 다잡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면 어려웠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외교관의 길을 지망하게 된 초심을 잊지 않도록 거듭 자신을 일깨우고자 했습니다.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신 가족과 선생님, 친구들의 도움과 격려가 컸습니다.


박혜진: 수험생 대다수가 느끼는 바겠지만, 수험초반에는 공부가 재밌고, 새록새록 지식을 알아가는 재미에 고시 공부가 할만하다고 생각할 수 도 있습니다. 이 때 바로 합격하면 가장 행복한 수험생활이 되겠죠... 하지만, 대다수의 경우 1,2차를 막론하고 실패를 경험하게 되고 그것이 반복되다 보면, 공부가 지겨워지고 때론 무서워(?)지기까지 합니다.

 

(공부가 마약같다는 생각이 들게되는 거죠...) 이 때는 공부가 끝이 안 보인다는 생각, 언제까지 해야 하나 하는 불확실성이 주는 무게감 때문에 공부에 능률이 안 오르고 슬럼프에 빠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작년 동차에 큰 기대를 걸었다가 불합격하고, 다시 공부하기 까지 작년 한 해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자신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으나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드는 자괴감과 수험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 이 두 가지가 저에겐 가장 힘든 문제였습니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부모님께 계속 의존해야 한다는 점도 저의 자신감을 크게 위축시킨 요인이었습니다. 

 

*극복방법

저는 성격상 낙천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이를 통해 내가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면, 실패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2002년과 2003년에 계속된 2차 실패 경험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았고, 실패를 경험삼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부끄럽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괴감을 극복하려 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저는 고시입문과 거의 동시에 만난 남자친구이자 같은 외시생인 친구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같은 스터디 멤버로서 서로의 부족한 과목에 대해 충실한 조언자가 되었고, 답안 연습상대가 되어주었고, 공부외적으로도 경제적, 심리적 문제거리에 대해 서로 걱정거리를 들어주고, 자신감을 북돋아주었던 친구가 있었기에 저의 수험 생활은 상대적으로 수월한 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최다연: 아마도 수험을 위해서 좋아하는 것들을 포기해야만 하는 순간들에 직면했을 때가 가장 힘든 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럴 때는 외무고시가 저 스스로 내린 선택이었다는 사실이 극복의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 수험 준비기간과 수험 장소는.


김면선: 대학 3년경부터 외무고시에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졸업 후 본격적인 공부에 들어가 근 4년(2순환)만에 합격한 셈입니다.

 

수험 장소는 주로 학교 도서관을 이용하였습니다. 넓게 트인 공간이고 자연과 어우러져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점이 제 성향과 잘 맞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험이 임박해서는(11월말 내지 12월초부터) 역시 시간활용도라든지 학원 강좌 수강, 체력 면을 고려하여 신림동 독서실에서 공부하였습니다. 신림동은 학교 캠퍼스에 비해 폐쇄적이기 때문에 심신의 체력소모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꼭 필요할 것입니다. 제 경우, 주거지를 신림동 밖에 두어 아침, 저녁으로 통학하였고 식사 후 산책이라든지 규칙적인 운동 등을 통해 활력을 잃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박혜진: 외시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99년 초이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한 것은 대학원 학위 논문을 다 쓰고 나서, 99년 가을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내에 있는 다붕촌에 들어가면서부터입니다. 그러니까 수험기간은 4년 반 정도가 소요 되었구요. 2001년 1차에 처음 합격해서, 이번에 최종 합격하였으니, 2바퀴 만에 합격한 셈입니다.

 

공부장소는 처음에는 계속 학교내 고시반에서 특강, 강평 등을 들으며 공부했고, 2003년 동차로 본 2차에서 불합격하고 나서는, 공부장소를 바꿔 볼 생각으로 신림동으로 들어와 올 4월 시험 때까지 쭉 신림동에서 학원 수업을 들었으며,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기본 강의와 GS를 들으며 공부하였습니다.


최다연: 수험 준비기간은 2년인데 그 중 2003년 1차 합격 후 1년은 휴학을 했습니다. 학교 수업 때문에 줄곧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마지막 반년 가량은 신림동 고시촌 독서실에서 지냈습니다. 하지만 혼자 지내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아서 통학은 계속 집에서 했습니다.


◇ 자기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김면선: 1,2,3차 시험 전반에 걸쳐 결국 중요한 것은 '기본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본이 잘 되어있을 때 그에 대한 응용력도 생길 수 있겠지요. 주요개념의 정의, 법조문이나 조약문의 숙지, 꾸준한 외국어 공부가 그 밑바탕이 될 것입니다. 특히 국제정치학의 경우는 주어진 사안에 대해 종적으로 횡적으로 사고를 유연히 확장하는 연습(행위자별, 이슈영역별..) 이 필요하고 국제법은 조약집을 확인하면서 공부하는 습관이 필수적인 것 같습니다.

 

올해부터는 1차 시험 면제 제도가 없어진 만큼 1차 시험과 2차 시험 대비의 비중 안배도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제 경우 1차 시험 2달 전부터는 1차 과목에 집중했는데, 고득점보다는 1차 시험 합격을 위한 적정 점수를 확보하는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헌법의 경우 수험 초기에 기본서를 읽은 후로는 주로 테이프와 수험서, 헌법조문을 위주로 혼자 단기간 내에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했고 국사는 학원강의를 들으면서 정리했습니다.

 

1차 시험 후에는 곧바로 2차 시험 준비에 들어가 약 7주 동안 최선을 다해 알고 있는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또 기술적인 면에서 학원 파이널 강좌를 수강하면서 '문제에서 원하는 답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연습을 했고 실제로 답안을 작성하는 훈련을 통해서 문제 풀이 감각을 익혔습니다. 이 과정이 2차 시험을 위한 마지막 단계로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별 면접 및 집단 토론인 3차 시험을 대비해서는, 2차 시험 합격자들간에 스터디를 만들어서 주요현안 관련 토론연습을 몇 번  했습니다. 하지만 토론이나 발표 실력이 단기간에 배양되는 것이 아닌 만큼, 평소에 여러 이슈들에 대해 논리적이고 조리있게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혜진: 다들 잘 아시겠지만, 1차는 광범위한 지식을 알고 있는지의 여부를 묻는 문제이므로 깊이 있는 공부보다는, 광범위하게 구석구석을 잘 알고 있는지와 순발력 등이 중요하지만, 2차 시험은 특정한 주제나 이슈에 대해 깊이 있는 분석력과 이론의 응용력 등을 요구하므로 풍부한 지식은 물론 논리력 및 문장력 사고력 등이 요구된다고 하겠습니다. 특히 2차 시험은 자신이 이론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의 능력보다는, 알고 있는 지식을 문제에 맞춰 가공해서 써내는 능력이 중요하므로 시험답안 작성 훈련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1차도 다양한 문제에의 적응능력이 중요하므로 기출 및 모의고사 문제는 가능한 한 많이 풀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1차 시험을 위한 교과서는 관련 이론 등, 내용이 모두 빠짐없이 들어있는 것이 좋습니다. 2-3회독을 빨리 한 후 전체 내용이 잡히면 바로 문제를 풀어봄으로써 시험적응 능력을 키우고 자신이 모르는 부분이 어디인지를 아는 방법이, 교과서를 완벽히 이해한 후 확인용으로 문제를 푸는 방법보다 효율적인 방법 같습니다. 이제 1차 시험이 PSAT체제로 개편되어, 유예제도가 사라지고, 1차 선발인원도 늘어난 만큼 합격의 관건은 2차 시험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2차시험 교재는 수험생 대다수가 보는 교재를 기본서로 삼고, 부족한 부분을 학원자료나 모의고사 강평자료 등으로 보충하여, 서브나 단권화하는 방식으로 내용을 정리, 암기 후, 다양한 문제에 맞는 답안 작성을 해봄으로써 문제에 대한 적응 능력을 키우는 것이 좋습니다. 단, 답안 작성 연습 시에는 2차 유경험자와 초심자 등이 적당히 섞여있는 것이 긴장감을 잃지 않게 하는 것 같습니다.


최다연: 노-하우라고까지 하기에는 너무 부족한 것 같습니다만, 굳이 한 가지를 언급하자면 2003년 여름부터 2차 시험 때까지 진행했던 2차 스터디가 공부하는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단기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영어를 중심으로 기타 과목을 함께 공부해 나간 것이 저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것은 물론, 중장기적인 수험 계획을 짜는데 상당히 유용했습니다.


◇ 끝으로 앞으로 계획에 관해서 한 말씀 해 주세요.


김면선: 부족한 점이 너무나 많습니다. 외교관으로서의 자질과 가능성을 평가해주신 것으로 믿고 앞으로 더욱 정진하여 국가에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일꾼이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박혜진: 아직 외교업무 전반에 걸친 이해와 경험이 없기 때문에 미리 단정지어 말씀드릴 수 없겠습니다만, 다양한 부분에 걸쳐 폭넓은 경험을 쌓고 싶은 것이 지금의 생각입니다. 물론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전문분야를 확정하기 전에 외교전반에 대한 충분한 경험을 쌓고 싶습니다. 수험초반에는 인권이나 국제기구 등에 관심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외에도 통상문제나 협상분야 등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것은 시간을 두고 결정하고 싶습니다.


최다연:  일단, 아직 졸업까지 한학기가 남아있기 때문에 수험기간동안 미처 하지 못했던 전공 및 기타 관심분야에 대한 공부를 좀 더 해 볼 계획입니다. 그리고 좀 쉬면서, 하고 싶었던 야외활동을 몇 가지 시도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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