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문화, 진화,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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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문화, 진화, 조화?
  • 신희섭
  • 승인 2017.02.1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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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초등학교시절 학교를 가기 위해서는 개천길을 지나 작은 다리를 건너야 했다. 우리 동네에서는 그 다리를 ‘배고픈 다리’라고 했다. 보통 다리들과 딜리 오목한 다리라 배고픈 다리라고 불렀다. 다리를 건너면 개울 반대편에 작고 낡은 집들이 따닥 따닥 붙어 있었다. 가난하던 1970년대였고 그 중에서도 형편이 좋지 않았던 쌍문동이었지만 개울 반대편 동네는 특히나 가난했다. 작은 방 하나에 여러 가족들이 세를 사는 경우들이 많았다. 따닥따닥 붙어 있는 집들을 지나 학교를 가는 길에는 평상이 몇 개 있었다. 평상에는 아침, 점심으로 소주를 마시는 아저씨들이 늘 있었다. 윷놀이나 화투나 장기를 두기도 했지만 항상 술에 취해 있었다.

그 그림이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취기, 옥신각신, 욕설과 주먹질. 더 나쁜 그림은 부인을 패는 것이었다. 사느니 마느니 하는 악다구니, 찢어진 옥가지, 던져지는 살림집기들, 그리고 엉엉 우는 자식들. 좋은 기억은 아니지만 뚜렷해서 잘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요즘 이곳에 다시 가면 다른 그림이 있다. 배고픈 다리는 배가 부르게 새로 만들어져 있고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던 자리에는 아파트가 자리잡고 있다. 그 자리는 과거 기억들이 많이 지워져있다. 이런 기억이 내가 살던 동네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또 다른 한 가지 기억이 있다. 지금은 상상이 안되지만 초등학교 시절 동네에는 첩이나 후처와 같이 사는 가족도 있었다. 전처와 후처 그리고 그 자식들이 같이 살았다. 동네사람들이 후처니 첩이나 하면서 쑥덕쑥덕하기는 했지만 그런가 보다 하고 받아들이고 살았다. 지금도 두 집 살림을 하는 엄청난 능력자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때처럼 공개적으로 가족들을 모아서 살지는 않는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직장을 잃어버린 남성 가장들의 위상이 약화된 뒤에 후처니 두 집 살림이니 하는 것은 동화책에나 나올 이야기처럼 되었다.

다소 아련하지만 괜찮은 그림도 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나왔던 것처럼 그 무렵에 경양식이 유행하였다. 스프를 주는 돈까스나 값 비싼 비후까스를 먹을 기회들이 가끔 있었다. 너무 가끔 있는 일이라 항상 헷갈렸던 것이 포크를 어느 손에 쥐고 나이프를 어느 손에 쥘 지였다. 지금이야 어느 손에 쥐든 편하게 쥐면 그만이지만 그때는 왠지 그 정도도 모르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양식집이나 돈까스 집에 가기 전날 저녁에 열심히 오른손 왼손 연습을 하였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어린이들도 돈까스를 어떻게 먹을지 알기에 이것을 교육받고 예행연습을 할 일은 없어졌지만.

얼마 전 진상인 중국 관광객들을 보았다. 길게 늘어선 줄에 중간에 새치기를 하는 것은 예사이고 다른 사람 계산을 하고 있는 점원에게 다짜고짜 다가와서 자기 물건을 환불해달라고 10분 동안 혼자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뷔페식당에서 음식 앞에 놓여있는 집게를 개인용으로 들고 다니면서 자기 음식을 집는 중국인. 너무 급한 나머지 자기 포크를 가지고 뷔페음식을 뜨는 사람들도 있으니 그 정도는 양반일 수도 있다. 모든 중국인들이 그렇지 않을 것이고 진상 중국인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이 칼럼의 주된 주제는 아니다.

중국인들의 매너 없는 행동을 보면서 든 생각이 있다. 과거 방송매체들에서 한참 열심히 이슈를 만들었던 ‘어글리 코리안(ugly Korean)’이다. 실제 영어 표현은 아니지만 외국에 나가서 매너 없이 행동한다고 해서 붙여진 단어다. 한국인들이 외국 문화에 익숙하지 않고 영어를 잘 못하다 보니 한국에서 하던 방식대로 행동한 것 때문에 생긴 비판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어글리 코리안이란 이야기 들어본 적이 있는가? 중국인들이 ‘어글리’라는 용어를 빼앗아 간 면도 있지만 한국여행객들이나 이주민들이 외국 문화에 익숙해진 측면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문화가 변화하고 진화한 다는 것이다. 문화라는 것이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자 사고하고 행동하는 방식이다. 개인들이 사회로부터 학습하고 사회를 구성하기도 하기에, 사회가 달라지면서 문화는 변화하고 진화한다. 한국인들이 이제는 어글리하지 않게 된 것처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017년 한국은 어떤가? 탄핵정국, 트럼프시대 보호주의, 저성장의 장기화, 조류독감과 구제역. 한국은 총체적인 위기이다. 한국의 정부와 기업의 불법적인 운영으로 부패지수는 높아지고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에 대한 투자를 지속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누가 애국자인지를 두고 한국은 투쟁중이다. 이런 투쟁의 과정으로 세대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좌우를 두고 맹목적인 투쟁이 진행되는 상황이 한국 사회내 세대 간 대화를 불가능하게 할 것이고 이는 지역에서 이념으로 그리고 이제는 세대간 정치로 한국정치의 갈등축이 변할 것이라는 예측으로 이어진다. 실제 그 예측이 실현될 가능성은 높다. 언어 사용을 대표로 하여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문화 간 격차가 점차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될까? 결론은 이 갈등과 대결의 문화가 지속되면서 상호 포기를 하든 상호인정을 하든 어느 방향에서든 대화를 하고 동행할 길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기성세대는 부양을 위해서라도 젊은 세대가 필요하다. 젊은 세대 역시 부족한 경험을 채우기 위해 기성세대를 필요로 한다. 적대감이 강해질수록 더 서로에 대한 필요성은 커지게 되어있다. 서로를 배척할수록 상대방에 대한 중요함은 더욱 간절해지기 마련이다. 마치 부부싸움이후에 배우자의 도움이 절실해지는 것처럼.

지금 평상에 않아서 아침점심으로 술을 마시던 아저씨들이 사라진 것이나 본처와 후실이 함께 사는 가정이 사라진 것이나 돈까스를 어떻게 자를 것인지를 두고 심난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된 것처럼 지금의 갈등과 투쟁의 문화도 시간이 지나면 역사속 한 풍경이 될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더 싸우고 자기 주장을 드러내야 한다. 무엇이 국가이고 무엇이 애국인지에 대해 더 강한 목소리가 필요하다. 그렇다. 지혜의 상징인 솔로몬이 말하지 않았는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hoc quoque transi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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