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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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 (66)
  • 박준연
  • 승인 2017.01.26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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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오페라와 로펌, 시대정신

지난 주말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머나먼 사랑(L ‘Amour de Loin)의 공연 실황을 이곳 도쿄의 극장에서 관람했다.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가능한지, 궁극적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의 정체는 무엇인지 하는 대한 다소 관념적인 주제를 다룬 오페라의 비극적 결말을 본 후, 눈물이 찔끔 나온 장면은 오페라의 결말 장면이 아니라 커튼 콜 장면이었다. 이 오페라의 작곡자인 카리자 사리아호(Kaija Saariaho)씨와 지휘자인 수재너 말키(Susanna Mälkki)씨 두 여성이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포옹을 하는 부분에선 오페라에 문외한인 나도 감동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페라 공연과 로펌을 단적으로 비교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을지 몰라도, 아직까지는 남성 위주의 조직이라는 부분에서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지금 회사에서도 예전 회사에서도 여러 안건에서 여성 파트너 변호사, 어소시에이트 변호사들과 일할 기회가 많았지만 통계상 수치와 비교해보면 이는 내가 단지 운이 좋아서라고 밖엔 할 수 없다. 게다가 최근 발표된 NALP (National Association for Law Placement)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전까지 증가 추세에 있던 여성 어소시에이트의 수는 금융위기를 계기로 감소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미국 법조계의 여성의 활약과 관련하여 가끔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로스쿨 졸업 직후, 예전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 로스쿨 교수님의 뉴욕 민사소송법 관련 자료 개정을 도운 적이 있다. 교수님께서는 단순히 최근 판례를 추가하는 데에 더해, 알기 쉽게 다시 쓰기를 원하셨고 그 초안을 내가 준비하였다.

개정 전의 자료에서는 남성 대명사인 he를 일반적인 "사람"을 지칭하는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 자료가 예전 뉴욕 판례를 인용하였고 예전의 글쓰기 스타일이 바로 그랬기 때문이다. 그 부분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인용이라 어쩔 수 없지 않나 싶어서 손을 대지 않았다.

그 초안을 검토한 교수님께서는 예전 판례 인용이더라도 일반적인 사람을 지칭하는 경우에는 he대신에 he or she로 쓰자고 하시면서 이런 설명을 덧붙이셨다. 이러한 표현 수정이 사소해보일지는 몰라도 최근 판례에서 he 대신에 he or she를 쓰게 된 것은 너의 선배인 많은 여성 변호사들이 싸워서 비로소 얻어낸 결과이며, 그 결과를 결코 당연시해서는 안된다고. 남성인 노교수님의 힘있는 설명을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다시 오페라 이야기로 돌아오면, 여성이 제작의 주역을 담당했다는 것 이외에 또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대장치였다. 바다를 표현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LED 전구를 사용하고, 인물들의 등장과 퇴장에는 크레인 비슷한 장치가 이용되어, 시대적 배경과 묘하게 충돌하면서도 보면 볼수록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이 무대장치에 대해 인터미션 중의 인터뷰에서 무대감독은 인터뷰에서 새로운 기술은 마치 화가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색깔의 물감과도 같아서 이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최근 시간이 날 때 시사 토론을 하는 모임에 참가하고는 하는데, 내가 변호사라는 것을 밝히고 토론을 하면, 어김없이 뉴스 중에 인공지능(AI)이 언급되는 뉴스가 있고, 여기에 대해 AI가 변호사나 패러리걸의 일을 빼앗아가는 것이 아니냐 하는 질문이 나를 향하게 된다. 인공지능이나 다른 기술발전이 법률 서비스의 제공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예측할 능력은 없지만, 요 몇년 사이에도 당연히 인간인 변호사나 패러리걸 등이 수행하는 업무로 여겼던 일을 컴퓨터가 대신하는 것은 눈에 띄게 늘어났다. 물론 그러한 기술을 개발하고 적용하는 것은 나의 역할은 아니지만, 기술의 진보의 동향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필요한 경우 이 기술을 도입하여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변호사의 책무이다.

이번주 칼럼을 어떻게 써야할지 고민하는 상황에서 오페라를 관람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번 시즌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담긴 "시대정신"은 내 일상에도 완전히 무관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했다.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 수석 합격한 재원이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펌 중의 하나인 ‘Latham & Watkins’ 로펌의 도쿄 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l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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