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짜증나는 민주주의
상태바
신희섭의 정치학-짜증나는 민주주의
  • 신희섭
  • 승인 2017.01.26 17: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요즘 질문을 많이 받는다. 누가 대통령이 될 듯 하냐고. 너무 어려워서 잘 답변을 못하겠다. 그러면 답을 알면서 안한다고 비판 아닌 비판을 받는다.

그런데 정말이지 누가 될지 잘 모르겠다. 올 해 말에 선거를 하게 될지 올 해 중반에 선거를 하게 될 지부터 결정해야 하는데 이것부터 예측이 어렵다. 헌법재판소가 오로지 대통령탄핵에 집중하는 것이 반드시 빠른 결정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며 원하는 방향으로의 결정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입장에서도 지금 상황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서둘러도 문제고 지체해도 문제고. 탄핵을 인용해도 그것으로 끝이 아닐 것이고 기각을 해도 끝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정치가 사법부의 결정만을 바라보고 있다. 특검이든 헌법재판소든 사법부의 결정이 한국정치의 미래를 결정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 이전에 민주주의의 동력이 지금의 상황으로 이어졌고 사법부가 손을 댄 순간 제도적인 결정을 기다리는 상황이 된 것이다.

설 연휴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한국정치에 대한 토론이 이어질까! 그리고 얼마나 소모적인 논의가 진행될까!

이 시기에 진지하게 고려할 질문이 있다. 민주주의는 과연 효과적인 정치체제인가 하는 점이다. 현재 상황을 보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론이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민주주의 시기 대신 과거의 권위주의 시기를 떠올리면서 그때가 좋았는데 하는 이들도 있다.

이 질문 역시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지를 예측하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민주주의는 기대만큼 효과적인 정치체제는 아니다. 많은 이들이 의견을 모아서 결정한다는 것이 최상의 선택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합리적 선택보다 집단의 합리적 선택이 언제나 우월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논리는 독재체제를 옹호하는데 사용된다. 독재체제의 뛰어난 지도자가 민주적 결정을 넘어서는 효과적인 운영을 할 수도 있다. 민주주의에서는 다양한 이해집단이 있고 이들의 의견을 모으고 조정해야 하기 때문에 사회적인 이익의 최적상황이 무엇인지를 결정하기 어렵기도 하고 결정된 사안을 시행하기 어렵기도 하다.

일이 이렇다 보니 한국 정치 지도자들과 한국 정치상황의 ‘비효율성’을 들어 “한국이 과연 민주주의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필요한가?”하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이 상황은 권위주의를 오랜 시간 경험한 기성세대에게 민주주의를 거부할 수 있는 현실적인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하면 민주주의는 거부되어도 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의 최고의 덕목은 효율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 편한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한 가정이 이사를 한다고 가정해보자. 이사는 가족에게 중요한 문제이다. 그래서 이사를 계획한 부모는 이사로 인해 영향을 받을 자녀들에게 이사하는 문제에 대한 의견을 물어볼 수 있다. 특히 자녀가 성장을 한 경우에는 자녀들 역시 의사결정에 일정한 지분을 허용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가정해보면 자녀와 가족 구성원이 많을수록 의사 결정은 어려워질 것이다. 각자 이사로 인해 받게 될 부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정과정에서 가족 구성원들이 어려가지 의견을 제시하고 다른 가족구성원의 의견을 듣다가 자신의 견해와 차이가 있다고 해서 판을 뒤집을 수 있을까? 자기 생각이 관철되지 않는다고 화를 내면서 이것으로 결정할 거라고 선포해버리면 문제는 끝이 날까?

만약 이사에 대해 의견을 묻기로 했다가 의견 조정이 어렵다고 포기해 버리면 아예 처음부터 묻지 않는 것 보다 나쁜 결과가 된다. 처음부터 의견을 묻지 않고 이사를 결정할 경우는 자녀들과 다른 가족 구성원은 아예 의견제시와 의사결정을 포기 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의견을 나누는 기회가 생겼다면 이때는 자신의 견해가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의견을 말하고 그 의견에 대해 검토하기를 바라게 된다. 비록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사를 하지 않더라도.

그래서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의 가진 의견을 표출하고 진지하게 그 의견이 검토되기를 바라고 실제 검토되는 것 이것이 민주주의의 최고의 덕목이다. 내가 지적으로 뛰어나든 지적으로 부족하든, 내 재산이 다른 이들을 위해서 사용될 정도로 부유하든 다른 이의 노력에 의존해서 살아야 할 정도로 가난하든, 사회적 자산을 많이 가지고 있든 그렇지 않든. 민주주의는 어떤 조건과도 관계없이 사회구성원이기 때문에 그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게 하고 그 의견을 진지하게 고려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으로 개인들이 자신의 인생에 관해 결정할 수 있는 ‘자기 지배가능성’을 보장하게 한다. 비민주주의의 경우 뛰어난 독재자에 의해 효율적인 국정운영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평범한 이들이 자기 인생을 결정하는 자기 지배가능성 자체는 없는 것이다.

사회구성원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각 계층과 각 집단의 의견을 표출 할 기회는 높아질 것이다. 그럴수록 효율성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소수의 견해에 의해 우리가 실수 할 가능성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가장 비효율적인 결정을 할 수도 있고 가장 효율적인 결정을 할 수도 있다. 다만 그 결과는 정해져있지 않고 오로지 구성원들에게 맡겨져 있다.

현재 한국 정치상황이 맘에 들지 않을 수 있다. 여러 가지로 짜증이 날 수도 있다. 대통령의 구차한 방어가 짜증날 수도 있다. 북한의 사주를 받고 돈 몇 푼에 팔려 촛불을 들고 나온 이들 생각과 나라 걱정에 짜증이 날 수도 있다. 그래서 반대편에 선 이들과 의견을 나눈다는 것 자체를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날 수도 있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그것이 민주주의의 최고 장점인데. 내 편의 의견이 아예 제시될 수도 없는 상황이 아니며 나와 뜻을 같이 하는 이들이 많다면 세상을 움직여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대한민국은 현재 편을 가르고 적과 동지를 구분하고자 하는 지도자 덕분에 민주주의가 투쟁적이라는 것을 오랜만에 배우고 있다. 확실히 민주주의는 투쟁을 먹고 산다. 이 투쟁의 결과가 어찌 되었든 민주주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가능하게 한다. 설 명절에 가족들과 열심히 싸울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한 것 그것이 1987년 민주화 이후 30년의 선물이다. 그러니 다소 짜증나겠지만 열심히 민주주의의 선물을 즐겨보자.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