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드라마로 보는 공무원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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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드라마로 보는 공무원 한국사
  • 노범석
  • 승인 2017.01.17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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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법국사 노범석의 영화와 드라마로 보는 공무원 한국사

격동의 1968년...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영화
<실미도><늑대소년>

영화 <실미도>는 제3공화국 후반기의 반공정책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1.21 사태(김신조 사태)가 터진 후 중앙정보부는 보복조치로 3군에 북파공작원을 훈련시킬 것을 지시하는데, 이때 공군 산하에 조직된 특수부대가 이른바 ‘실미도 부대’다. 이 부대는 김신조 부대와 똑같이 31명으로 구성되었는데 훈련 도중 사고, 탈출, 처형 등으로 7명이 사망하여 24명이 최후까지 살아남았다. 지옥훈련을 통해 단 3개월만에 북파가 가능한 인간 병기가 되어 부대가 창설된 지 4개월만에 첫 번째 실전명령이 떨어졌으나 상부의 저지로 중도 무산되었다.

이후 ‘출정의 날’을 기다리며 3년 동안 실미도에서 대기하였지만 상부에서 내려온 지시는 ‘실미도 부대원 제거’였다. 이에 반발한 실미도 대원들이 실미도를 접수하여 인천에 상륙, 송도 외곽에서 시내버스를 탈취하여 서울로 향하였지만 언론에서는 이들을 무장공비의 공격으로 보도하였다. 이들은 자신들을 포위한 병력들과 교전 끝에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서 수류탄으로 전원 자폭하였다.

 

현대사에서 1968년은 반공으로 점철되었던 해다. 새해의 첫 시작을 김신조 사건으로 마주하였고, 곧이어 푸에블로호 사건이 터져 북한과 미국 사이의 관계도 급격하게 안 좋아졌다. 울진과 삼척에서는 무장공비가 침투하여 민가를 습격하였으며, 이때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친 이승복 어린이도 처참하게 죽었다. 정부는 이러한 시대 조응에 맞추어 여러 가지 반공 관련 정책을 강화하였는데, 이러한 정책 중에서는 향토 예비군과 같이 오늘날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도 있다.

주민등록제도가 통과된 것도 이 때다. 정부는 주민의 동태를 파악하고 남파 간첩 등 불온분자의 색출을 위해 야당의 반대에도 불과하고 주민등록법을 통과시켰다. ‘국민교육헌장’도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여 제정되었다.

정부가 이렇게 반공 정책을 강화한 데에는 북한의 대남도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67년 제6대 대통령 선거에서 10%가 넘는 득표차로 박정희가 윤보선을 누르고 대통령 재선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대통령 중임제라는 벽에 부딪혀 박정희는 다음 번 대통령 선거에 나갈 수가 없었다.

이에 정부와 여당은 집권 초기부터 개헌을 위한 준비과정에 들어가게 된다. 1967년 6‧8 총선 때 3선 개헌에 필요한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서 대대적인 부정 선거가 이루어졌는데, 야당이 전면 재선거를 요구하며 의원 등록을 거부하고, 대학가에서도 반대 운동이 거세어지자 공화당은 “타락되고 혼탁한 분위기의 선거였음에는 틀림이 없다”라며 관련된 국회의원 당선자들을 제명하는 등 당시 총선이 부정선거임을 자인하였다.

정부와 공화당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박정희가 꺼낸 카드는 ‘반공’이었다. 1967년 7월 중앙정보부가 독일과 프랑스 유학생 중 동베를린의 북한 대사관과 평양을 드나들고 간첩 교육을 받으며 대남적화활동을 하였다고 주장하였으며, 간첩으로 지명된 인물들을 강제 송환하여 재판을 벌였다.

훗날 외규장각 의궤 반환 운동을 벌인 서지학자 박병선 박사도 당시 유학 중에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귀국을 종용받자 프랑스로 귀화하였다. 그 외에 윤이상, 천상병 등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은 문화예술인도 적지 않았다.

그로부터 1년 뒤 1.21 사태,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울진‧삼척 무장공비 사건이 터지면서 박정희 정부의 반공 정책은 더욱 강화되었으며, 이러한 반공 분위기를 내세워 1969년 3선 금지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의 6차 개헌을 통과시켰다. 1968년에도 중앙정보부는 ‘통일혁명당 사건’을 일으켜 관련자들을 구속하여 재판에 회부시켰는데, 이때 신영복 교수도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영화 <늑대소년>의 시대적 배경도 이 무렵이다.

동화 같은 스토리에 가려져 주목된 적은 없지만 늑대소년 철수(배우 송중기)는 당시 북한과 맞서 싸우기 위한 특수병을 만들기 위해 비밀리에 행해진 인체실험의 결과물이다. 순이(배우 박보영)네 가족에게 발견되어 행복한 나날을 보내다가 철수의 비밀을 아는 사람들이 오면서 순이는 철수와 헤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헤어지기 전 순이가 철수에게 기다리라는 쪽지를 남겼는데, 철수는 이 쪽지를 보고 47년 동안 늙지도 않고 강원도 산골에서 기다리게 된다. 이후 할머니가 된 순이와 재회하면서 영화는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철수가 어떤 연유로 인체실험을 당하게 되었는지, 정부에서는 철수를 어떻게 처리하고 싶었는지에 대해서는 영화를 통해 알 수가 없다. 다만 작중의 시대적 상황에 미루어 짐작해보았을 때 철수는 실미도 부대원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북파공작원으로 훈련된 실미도 부대원들은 1969년 닉슨 독트린 이후 냉전체제가 완화되어가면서 설립 목적을 실행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어 사실상 방치되어 있었다. 더구나 실미도 부대원의 정체가 외부에 알려질 경우 국제적 여론이 악화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정부는 실미도 부대의 신속한 해체 및 제거를 원했던 것이다. 늑대소년을 제거하기 위해 순이네 집에 파견된 대령과 그의 부대들도 이와 비슷한 목적이 아니었을까 싶다.

반공으로 점철된 격동의 1968년, 누구는 실미도 대원이나 늑대소년처럼 반공 정책의 직접적인 희생양이 되기도 하였지만 당시 살았던 모든 시민들 또한 반공 정책의 희생양이었다. 정치는 파행으로 치달았고 일상에서는 통제 정책이 강화되었으며 아이들은 학교에서 국민교육헌장을 외우지 못해 집에 돌아오지 못하였다.

영화 <실미도>에서는 부대원들이 사랑하는 가족들과 결국 만나지 못하였지만 <늑대소년>에서 순이는 47년 후 다시 철수랑 재회하게 되었다. 격동의 1968년은 이렇게 필름으로 재구성되었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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