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 (121) - 산책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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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 (121) - 산책의 즐거움
  • 차근욱
  • 승인 2017.01.17 12: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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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는, 산책을 왜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운동을 해왔던지라 달리기면 달리기, 근력운동이면 근력운동이지, 왜 정처없이 슬슬 걸어다니면서 시간을 낭비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걸어다닐 시간이 있다면 차라리 달리기를 하는 것이 맞지 않나 싶은 생각 때문이었다.

학창시절,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전공 공부를 할 때면 가까운 형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할 때가 많았다. 간혹 나이가 좀 지긋하신 분들의 경우에는 함께 산책을 하지 않겠느냐 하셔서 식후에 조금 걸을 때가 있었는데, 사실 그 시간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었다.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닌, 그 정체모를 애매모호한 시간이 답답하기만 했던 것이다. 걷는 것이야 생활 속에서 차를 타지 않고 다니면 얼마든지 걸을 수 있을텐데, 왜 굳이 식사를 하고 나서 그렇게 방황을 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목적 중심의 사고는 이성과 시간을 보내게 될 때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었는데, 학창시절에도 ‘데이트’라고 한다면 도무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던 터인지라, 함께 ‘’밥‘을 먹거나 ’영화‘를 보는 행위라고만 생각해, 같이 길을 걷는다는 것은 ’데이트‘의 개념 자체에 들어가지 않았다. 사람을 본다고 해도, 이동시간은 최대한 줄이고 설정한 목적을 빨리 달성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만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니 제대로 연애를 할 수 있었을리 없지. 영화를 보기로 했다면 정확하게 영화 시작 시간에 극장 앞에서 만나 내용 파악에 집중해 영화만 본 뒤 영화가 끝나면 그대로 곧장 헤어지거나, 밥을 먹게 되면 약속 장소에서 만나 미리 정해놓은 메뉴를 찾아 그야말로 음식에 충분히 집중해서 깨끗하게 먹은 뒤 곧바로 안녕이었으니, 그야말로 난 영화를 보고 밥만 먹었던 것이다.

내게 걷는다는 행위는 혼자만의 영역이고 단순한 이동 방법에 속할 뿐인 행위였기에, 걸을 때는 최대한 빨리 갈 뿐, 걷는 행위 그 자체가 목적이 된 적은 없었다. 그러한 개념은 군대에서 특히나 더 굳어졌는데,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행군이었기에 행군을 하며 이런 저런 생각도 하고 자연경관의 아름다움도 즐길 수 있기는 했었지만 역시 행군은 그저 행군일 다름이었다.

어렸던 탓인지는 몰라도, 걷는 것이 하나의 목적이 되고 생각을 나누고 공간을 누리는 행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칸트는 왜 정확한 시간에 산책을 했는지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그냥 운동을 싫어한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정도에 그칠 뿐이었다. 그러던 차에 ‘산책’이 하나의 훌륭한 운동이자 활동 그 자체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은,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 덕분이었다. 관절이 불편하신 부모님께 볕이 좋은 시간, 가족이 함께 집 주변을 걷는 시간은 즐거움이자 건강을 지키는 방법이시기도 한 것을 깨닫고는 나의 시각이 얼마나 좁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제는 나도 볕이 좋은 날, 산책을 기대하곤 한다.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을 둘러보며 살아 숨쉬는 순간을 감사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알게된 탓이다. 가요 프로그램 등에서는 왜 댄서가 나와 가수의 뒤에서 춤을 추는지, 가수가 될 생각이면 TV에 나와야지 왜 시골 장터 무대에서 노래를 하는지, 나이가 들어 프라모델을 만든다거나 의상 코스프레를 하는 취미 등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던 편협함에서, 댄서가 가수와 함께 무대의 주역이 되어 얼마나 멋진 공연을 만들 수 있는지, 시골장터에서 노래해주는 가수들이 계시기에 삶의 고단함을 덜어내는 기쁨을 전할 수 있는지, 프라모델을 만들거나 의상 코스프레를 하면서 일상의 무게를 덜어 내는 일들이 얼마나 작지만 깊은 마음의 위로가 될 수 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은 순간이, 살아가다 보면 이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일들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때가 있다. 세상 모든 일에는 가치가 있다.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기에 세상에 존재한다. 그러한 가치와 의미를 개인의 협소한 경험과 생각만으로 함부로 폄하하고 단정지을 수는 없는 것이다.

가치가 하나로 획일화되고 경쟁이 생존의 전부가 되면서, 나는 치기어린 편협함을 벗지 못한채 몸만 어른이 되어갔던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때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산책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던 순간만큼, 이웃의 마음에 다가설 수 있는 순간들이 쌓여 마음 또한 어른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 매일이 새로운 순간이다. 그 순간 순간 늘 배우고 더 깨달을 수 있기를. 그리하여 하루만큼 더 따스하고 깊어질 수 있기를. 그렇게 시간 속에서 멋있는 산책을 할 수 있는 눈 깊은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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