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이진심 시인의 고해성사, 자궁 외 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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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이진심 시인의 고해성사, 자궁 외 임신
  • 오시영
  • 승인 2017.01.1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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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 2014년 4월 16일의 행적에 대한 변론서를 제출하였다. 세월호 참사 당일의 대통령 행적 관련 변론서를 확인한 지금, 많은 이들이 누군가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내려치고 싶고, 고개가 돌아가도록 누군가의 뺨을 때리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느라 힘들어 하고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을 사정없이 때리며 내가 왜 그녀를 대통령으로 선출했을까 하며 제 발등을 찍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의 행적을 적어 헌법재판소에 제출하였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였는지 적어내라고 하면 육하원칙에 의하여 일목요연하게 적어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행적보고서는 알맹이 없이 공허하기만 하다. 행적보고서는 6하원칙에 의해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의 순서에 따라 서술하여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고발생사실에 관한 보고서를 받았다면, 몇 시에 누가 그 보고서를 가져왔고, 그 보고 내용이 무엇이었으며, 그 보고서 내용을 파악한 후 어떤 참모들과 상의한 후 다시 몇 시에 어디에서 누구에게 어떻게 조치하라는 지시를 내렸으며, 그 지시한 내용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어떠한 내용으로 실시되었다는 결과가 보고되는 과정과 내용 등이 일목요연하게 기재되어야 한다. 적어도 수백 명의 목숨이 오가는 그 긴박한 순간에 최소한도의 이성을 가진 자라면 당연히 그런 절차를 밟는 것이 마땅하다.

모든 사건의 전개과정은 기승전결, 인과관계가 있다. 따라서 헌법재판소에서 당일 행적을 적어내라면 그 행적과 관련된 일체의 내용을 6하원칙에 의해 이성적인 면과 감정적인 면을 모두 기술해 제출하는 것이 옳은 데도 여전히 모든 것이 두루뭉술하다 못해 오히려 사안을 밝힌 행적보고서가 더 큰 분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자칭타칭 실력 있다는 변호사들이 10여명 붙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러한 행적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하지 못하는 까닭은 그 날의 행적을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을 정도의 구체적 행위가 거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밝힐 수 없는 은밀한 비밀이 있어 이를 은폐하거나 가공하려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확한 팩트가 들어가야 할 자리에 “촛불은 민심이 아니다.”라거나, “촛불집회는 종북좌파들에 의한 선동”일 뿐이라거나 하는 황당한 궤변이 꿰차고 있는 것이다. 결국 특검의 강제수사에 의해서만 모든 것이 밝혀질 수 있을 듯하다.

방학을 맞아, 미뤄두었던 글들을 읽을 수 있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책장에서 10년이 훨씬 넘는 오래 전 이진심 시인이 보내온 “맛있는 시집”에 수록된 “고해성사”라는 시를 다시 읽으며 생각에 잠긴다. “당신은 내게 너무도 잘 속아 주었다/ 제대로 속아 주려고 했던/ 단단히 속아 넘어간 사람처럼/ 당신이 결국은 나를 속였다// 어두운 기도실에 엎드려 두 손을 촛불처럼/ 모아 쥐고 간구했다// 겨우 손가락으로 당신의 얼굴을 읽었듯이/ 마음으로 더듬거려 당신을 새겨 넣었듯이/ 앞 못 보는 자,/ 이렇게 자신의 얼굴도 읽지 못해 얼굴을 읽혀 버렸다/ 더듬더듬 나아갔다/ 당신이 나를 속였듯이 내가 나를 속였듯이/ 그렇게 벽에 붙은 스위치를 지나친다/ 지금은 환하게 불 켤 수 없다/ 아직도 내가 너무 어둡다” (전문, 시선사, 2003년 간).

촛불이 환한데도, 내일 다시 광화문에 수많은 촛불이 밝혀질 것인데도 이진심 시인이 읖조리는 “그렇게 벽에 붙은 스위치를 지나친다/ 지금은 환하게 불 켤 수 없다/ 아직도 내가 너무 어둡다”라는 마지막 부분이 가슴에 달라붙어 떨어져 나가지 못하고 있다. 속아 주었다고, 다시 말해 내가 속였다고 생각했는데, 속아준 척 한 상대방에게 오히려 내가 속고 있었다는 시인의 고백이 오늘의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에 접목되어 가슴을 치게 한다. 자칭 국가와 결혼하였다고 호언장담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얼마나 많은 거짓말과 거짓행동을 해왔는지, 이번 사태가 잘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그렇게 잘못된 행동을 많이 해 놓고서도 “내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이러지?”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정신상태이다. 그리고 그러한 잘못된 것을 여전히 잘못되지 않았다며, 잘못을 잘못이라고 직시하고 있는 많은 지혜의 사람들을 향해 빨갱이라거나 종북좌파라거나 하면서 색깔을 덧입히려는 후안무치한 세력이 여전히 상당수 잔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두운 기도실에 엎드려 두 손을 촛불처럼 모아 쥐고 간구하고 있는 현실을 공감하지 못한 채 벽에 붙은 스위치를 지나치고 마는 어리석음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다.

하기야 생각의 자유가 있고, 모든 사람의 생각이 같을 수는 없는 것이므로 그마저도 수용해야 하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합리적 의심을 전혀 하지 않고 맹목적인 것이 더 무서운 일이기도 하다. 헌법재판소법은 탄핵심판에 대해 형사재판절차를 준용한다고 하면서 동시에 민사재판절차도 준용하도록 하고 있다. 양자 모두 변론주의(공판중심주의)를 원칙으로 하여 첫째는 주장하고, 둘째는 주장 사실에 대해 다툼이 있을 경우 증명을 필요로 한다. 즉 주장은 주관적 진술일 뿐이어서 법원에서 재판을 할 때는 그러한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치부하고 시작한다. 주장은 첫째, 상대방이 자백하면 증명할 필요가 없다(다만 형사재판에서 유일한 증거가 자백일 때는 별도의 보강증거를 필요로 한다). 둘째, 주장 사실이 공지의 사실인 경우, 즉 모든 국민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인 경우에는 증명이 필요 없다. 셋째, 주장 사실이 법원(헌법재판소)에 현저한 사실인 경우에도 증명이 필요 없다. 즉 재판 등과 관련된 사실이어서 일반 국민이 알지 못하는 사실이더라도 법원 자체 내에 증거 등이 보관되어 있어서 굳이 증명할 필요가 없는 경우에는 법원이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에 증명이 필요 없다. 넷째, 법률이 추정하는 사실 역시 증명이 필요 없다. 즉 법률 규정 등이 이러이러한 경우 이러이러한 사실을 추정하거나 간주한다고 규정한 경우 그러한 사실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거나 간주되기 때문에 굳이 증명이 필요 없다. 이러한 경우에는 오히려 당사자가 그러한 사실이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해야 하며 그러한 부존재 사실을 증명하지 못하면 존재하는 것으로 의제되어 버리는 것이다. 다섯째, 고도의 경험칙에 의한 “일응의 추정”의 경우에도 증명이 필요 없다. 즉 어떠한 사실, 예를 들어 고도의 음주만취상태라면 심신이 상실될 수밖에 없다거나, 식물인간인 경우 의사능력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경우 등의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위와 같은 다섯 가지 예외의 경우 이외에는 주장에는 반드시 증명이 필요하다. 즉 증명은 “사실의 존재 또는 부존재에 대한 객관적 확인”인 것이다. 이러한 증명에는 크게 인증과 물증이 있는데, 인증으로는 지금 출석을 회피하고 있는 증인이나, 전문적 지식을 재판부에 알려주는 감정인 등이 있고, 물증으로는 서증(문서)이나 검증물(객관적 검증의 대상이 되는 유형물)이 있다. 그 외에도 국가기관 등에 대한 사실조회 등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러 곳에 사실조회를 신청하여 그 회신이 올 때까지 재판절차를 지연하려는 방법을 쓰려 하나 헌법재판소가 상당한 제동을 가하고 있다. 어찌 되었든 하나의 사실이 객관적인 사실로 확정되려면 첫째는 주장이 있어야 하고, 이러한 주장에 대해 위와 같은 예외적 사정이 있거나 아니면 객관적 증거에 의해 증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탄핵심판은 통상적인 형사절차와 달리 엄격한 변론주의(공판중심주의)가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변론주의라는 것은 당사자가 주장하고 증명해야 하는 재판원칙이다), 직권탐지주의 내지 직권주의가 적용되기 때문에(직권탐지주의는 재판부가 직접 증거를 탐색할 수 있는 것이고, 직권주의는 직권탐지주의와 변론주의의 중간 형태로 적극적으로 증거를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증거가 일부 부족하여 보완 등이 필요할 경우 이를 보충적으로 직권으로 보완하는 제도이다) 당사자가 변론하지 않더라도(현재처럼 증인들이 의도적으로 증언을 거부할 경우) 직권을 발동하여 필요한 증거조사 등을 할 수 있고, 당사자에게 불리한 절차를 재판부가 진행해 나갈 수도 있다.

까닭에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피소추자)에 대해 최소한의 변론주의를 보장하겠지만, 피소추자가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직권탐지주의나 직권주의 절차에 따라 특검 등에서 조사한 각종 증거 등을 증거로 채택하여 탄핵심판의 결과를 도출해 낼 수도 있다고 하겠다.

같은 시집에 수록된 이진심 시인의 “자궁 외 임신”이라는 시를 한 편 더 본다. “마취가 덜 깬 탓일까/ 철제침대는/ 삐끄덕삐끄덕 신음소리를 내고/ 물 위에 붉은 꽃잎들처럼/ 커튼의 그림자 이 방 천장을 흘러다닌다// 자궁의 문이 너무 단단하게 닫혀 있어/ 왼쪽 나팔관,/ 그 벗어난 길 위에 집을 지어버린 것일까/ 이제 내 몸은 폐광이다/ 괴어 놓은 버팀목들은 툭툭 분질러졌다/ 정전이 되어 버렸다// 나는 서서히 물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침대는 연못처럼 나를 빨아들인다, 꿀꺽/ 나를 먹어 버린다/ 여기 연못에 누웠던 여자들의 삐끄덕삐끄덕/ 신음소리가 나를 가라 앉힌다” (전문)

마치 박근혜 정권은 자궁 외 임신을 한 것처럼 국가권력을 엉뚱한 사람들로 하여금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방법으로 행사해 왔다. 수많은 향정신성 의약품을 처방하여 주사하였다. 국가공권력이 폐광된 광산처럼 모든 게 막혀 있다. 편을 가르고, 반대 의견을 가진 국민을 국민이 아닌 적군 대하듯 돈줄을 끊고 명예줄을 끊고 자리줄을 끊어 내쫓았다. 그러면서 수많은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유신시대의 악령에 갇힌 김기춘 비서실장을 통해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익히 써왔던 독재의 방법으로 국가권력을 부당하게 행사하였다. 국민의 정신을 죽이고, 공정한 경쟁을 죽이고, 국가의 존재 근거를 말살하였다. 더 늦기 전에 고해성사를 해야 한다. 이진심 시인이 “고해성사”라는 시를 통해 비판하고 있듯이 “국민을 속이는 모습이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 수준”으로 모두 발가벗겨졌다. 자신의 불법적 권력 행사가 생명을 잉태하는 자궁의 문이 닫혀버린 후 “자궁 외 임신”을 한 것처럼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더 늦기 전에 국민 앞에, 신 앞에 고해성사하듯 자백하고, 자신의 책임을 다 하는 것이 옳다. 여전히 헛된 미망에 둘러싸여 거짓에 거짓을 늘어놓는 것은 자신을 더 초라하게만 할 뿐이다. 아무리 어두운 세상일지라도, 고해성사에서 이진심 시인이 이야기하듯 겨우 손가락으로 당신의 얼굴을 읽듯이, 마음으로 더듬거려 당신을 새겨 넣었듯이 진실을 향한 국민의 더듬이는 끝없이 이어져 결국은 권력자의 부정을 읽어내어 형상화시킬 것이다. 처음에는 사소한 것처럼 여겨졌던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블랙리스트 작성이 그들뿐만 아니라 학계, 경제계 등을 포함한 모든 영역별로 작성되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이러한 블랙리스트 작성은 헌법이 보장한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정면으로 침해하는 심각한 헌법유린행위이고, 이 행위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탄핵사유가 된다고 할 것이다.

이제는 국민은 속지 않을 것이다. 국민을 속였다고 희희낙락했을 어둠 속의 그들이 스스로 속았음을 자각하며 아마도 땅을 치고 싶을 것이나, 진실의 목줄은 서서히 그들의 목을 조여들어가고 있다. 국가라는 자궁을 임신도 못하도록 폐광으로 만든 이들에게 헌법재판소와 특검은 엄중한 법의 심판을 해야 할 것이다. 서서히 세상이 밝아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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