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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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 (64)
  • 박준연
  • 승인 2017.01.1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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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로펌의 새로운 마스코트

헬로 키티로 유명한 산리오 사가 가장 최근에 내놓은 캐릭터는 레서 판다인 "공격적인 레츠코(Aggressive Retsuko)"이다. 20대 여성으로 일본 상사의 경리담당 부서에서 근무한다는 설정이다. 요 며칠 사이, 미국 로펌, 법조계를 다루는 인터넷 매체 기사, 그 외의 잡지와 인터넷 언론 기사에서 레츠코가 미국 로펌이나 기업에서 일하는 직원들, 특히 주니어 어소시에이트나 신입사원들의 감정을 대변한다는 감상이 쏟아지고 있다. 작년 여름 이곳 일본 텔레비전에서 처음 레츠코가 등장하는 짧은 애니메이션을 보고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던 나는 혼자서 역시 내가 보는 눈이 있지, 하고 어깨를 으쓱였다.

레츠코는 외양도 귀엽지만 목소리도, 직장 동료와 상사를 대하는 태도도 상냥하고 친절하다. 퇴근 직전에 상사가 서류 더미를 건네주며 오늘 중으로 마치라고 해도 큰 불평없이 일을 한다. 그렇다고 해서 100% 시키는대로 하는 캐릭터는 아니고, 가끔 불평불만도 이야기하고 회사 동료들도 그러려니 하고 이해해주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스트레스와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 레츠코는 귀갓길 노래방에 들러 데스메탈 곡을 열창하고 또 술잔을 기울인다.

많은 사람들이 레츠코 캐릭터를 보고 이게 바로 자기 이야기라고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큰 규모의 로펌을 포함해서 큰 조직에서 일하다 보면, 악의를 가지고 괴롭히는 사람이 없어도 불합리하다거나 억울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없지 않다.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별일도 아닌데 화를 냈다 싶어서 반성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나중에 더 억울하게 생각되는 일도 있다. 하지만 조직에 속해서 생활하다보면 분노를 곱씹기 전에 레츠코처럼 일을 먼저 처리해야 한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그날의 스트레스가 다음날의 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해소하는 것이다. 하지만 좋은 스트레스 방법을 찾는 일도, 그에 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쓰는 것도 좀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일을 마치고 귀가하여 늦은 저녁식사를 하며 혼자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 불평불만을 가사에 담은 데스메탈을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미국 변호사 협회(American Bar Association)에서 지난해 중독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기관(Hazelden Betty Ford Foundation)과 공동으로 실시하여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변호사는 다른 전문직 종사자들에 비해 더 높은 빈도로 알콜 중독을 비롯한 약물 남용, 우울증과 불안을 겪는다고 한다. 또한 이 조사에 따르면 변호사 세 명 중 한 명이 음주의 빈도와 양과 관련한 문제가 있고, 28%가 우울증, 19%가 불안 상태를 경험한다고 한다.

변호사의 생활에서 클라이언트와의 관계, 상대방 변호사와의 관계, 데드라인, 업무 결과의 불확실성 등에서 유발되는 스트레스가 불가피하다면, 스트레스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어떻게 해소하는가 하는 문제는 무척 중요하다. 술로 업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레츠코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 가상의 캐릭터처럼 많은 사람들이 손쉬운 스트레스 해소 수단으로 음주를 선택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현실은 애니메이션처럼 귀엽고 웃기지는 않다.

덧붙여, 나도 혹시 레츠코 주변 등장인물처럼 동료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이 되지는 않았는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악의는 없더라도 무신경하게 피해를 끼치는 레츠코의 상사나 동료들을 보면 혹시 내가 저런 사람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내일은 마침 올해들어 주말을 낀 첫 3일 연휴가 지나고 찾아온 출근일이다. 연휴동안 집에서 일을 안한 것은 아니지만 3일만에 하는 출근은 또 새로운 느낌이 든다. 변호사라도 조직에 속해 일하는 이상은 조직을 통해 좋은 사람들과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한편, 조직생활의 이런저런 애환에서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법이다. 레츠코의 애니메이션 마무리 대사를 되뇌어 본다. "내일도 힘내야지."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 수석 합격한 재원이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펌 중의 하나인 ‘Latham & Watkins’ 로펌의 도쿄 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l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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