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 (120) - 이럴줄 알았으면 에도시대에 태어날걸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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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 (120) - 이럴줄 알았으면 에도시대에 태어날걸 그랬어
  • 차근욱
  • 승인 2017.01.10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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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공단기 강사

처음 일본식 상투를 보았을 때 내가 받은 느낌은 충격 그 자체였다. 계기는 이순신 장군이 나오는 TV 사극이었는데, 어린 마음에 아마 저 모습은 일본 사람들을 더 나쁘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 한 분장인가 보다, 라고 생각했다. 마치 반공 만화 등에서 북한 사람들은 머리에 뿔이 난 사람으로 묘사했던 것처럼.

조금 더 커서는 일본식 상투의 헤어스타일이 역사상 실존했다기 보다는 코스프레의 이미지가 강했는데, 아마 만화나 영화에서 나오는 특이한 캐릭터의 머리를 극적 효과를 위해서 저렇게 표현했나 보다 싶었다. 생각해보면, 저런 이상한 머리를 하고 사람들이 실제로 다닐 리가 없지 않은가 싶어서. 뭔가 공들인 머리이긴 한데 무섭다는 느낌이랄까. 비현실적인 느낌이라고나 할까. 여튼, 실제로 모든 사람들이 저런 머리를 하지는 않았으리라고 생각했다. 진심으로.
 

그런데, 그것이 일본식 상투이고 정말로 그 시대의 사람들은 그런 식의 헤어스타일을 당연시 했던 때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냥 그러려니, 그냥 그 당시의 감각이 지금과는 사뭇 많이 달랐으려니 했다. 그러다 어느날 불현 듯 알게 되었다. 그런 헤어 스타일이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사실, 유전적으로 우리 집안은 두발이 불편한 집안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어서 두발문제에 있어서는 언제나 안심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도 나는 머리숱이 귀찮을 정도로 많았어서 죽을 때까지 머리털은 정말 많으리라 막연히 생각하곤 했었다. 아니, 어쩌면 가렵고 더운 이노무 머리털에 대해서 전혀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나는 뻗치는 머리에 정말 짐승처럼 머리털이 많았으니까.

그런데 스트레스 때문인지 환경 호르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재작년부터 시작된 탈모는 작년 들어 갑작스럽게도 뭉텅 뭉텅 빠지는 상황까지 발전하기 시작했고 급기가 작년 말에는 머리 속이 보일 정도가 되었다. 충격이었다.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나는 그저 수면 부족이려니 라는 생각에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다가 작년 말, 상황이 심상치 않게 되자 인터넷에서 탈모에 대한 정보를 찾아본 뒤, 좋다는 것은 전부 발라보게 되었다. 정말 머리통에 이것저것 왕창 왕창 듬뿍 듬뿍 발랐다. 앗! 그랬더니 이게 웬걸! 이제는 뭉텅 뭉텅이 아니라 마치 네이팜 탄을 맞은 정글같이 고속도로가 뻥 뚫려 있는 듯한 상황이 되었다. 앞머리부터 정수리까지 두상이 보일 정도라고나 할까.

하도 이런 저런 것을 발라보다보니 두피가 상했던 모양인지 머리 가죽이 벌겋게 부어 있는데다 고름이 여기저기서 잡힐 정도였다. 쓰라리고 얼얼해서 결국 피부과에 갔다. 요즘의 탈모는 극소수 일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1000만명, 다시 말해 5명 중에 1명이 겪고 있는 질환이 된지라 인터넷에서는 피부과 탈모 클리닉 광고도 활성화 되어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피부과에 가 보니 정작 의사 선생님들은 심드렁한 느낌이었다. 넌 전두환 장군처럼 훌륭한 사람이 될거야, 라는 식의 불길한 예언을 하면서 결국 모발이식을 해야 할걸?! 이라면서 수술 비용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일반 샴푸 1년 치를 살 수 있는 샴푸도 권한다.

실은 조금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루아침에 거리에 나앉은 기분이랄까. 치료는 별것 없다. 그냥 약을 먹는 것 외에는. 하지만 머리털이 더 나는 것은 아니고 있는 머리털이 덜 빠지게 할 뿐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들의 말씀에 왠지 영혼이 없어서 조금 믿음이 가질 않았다. 아니, 어쩌면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때 나타나는 부정의 4단계를 나 또한 겪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거울에 비친 흉측한 자신의 머리통을 보면서 아... 차라리 다 밀어버리고 싶다. 그런데 주변머리는 무성하니 그냥 흉측한 속알머리를 다 밀어버리고 싶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문득 알게 된 것이다. 속알머리만 홀딱 밀어버리고 남은 머리를 길게 길러 묶으면 일본식 상투나 변발이 된다는 사실을. 음, 그래 그런거였어. 맞다. 그런 것이었다. 분명, 일본이든 중국이든 무소불위의 권력자도 나와 같은 비극을 경험했던 것이다. 그래서 고민 끝에 모두가 공평한 헤어스타일을 공표하여 한 시대를 편안한 마음으로 풍미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미풍양속은 탈모인과 비탈모인의 차별이 없는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준 것일지도 모른다.

병원을 나서면서 일단 의사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머리통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기로 했다. 그랬더니 3~4일 만에 붓기가 가라앉고 다시 하얀 머리통이 되었다. 그리고 머리털이 다시 송송송 돋기 시작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희망은 아직 이르다. 마음의 각오는 매일 조금씩 하게 된다. 이대로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문득, 예전에 피트니스 클럽 샤워실에서 갑자기 어떤 아저씨가 머리에서 가발을 떼어 탈탈 털며 목욕을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순간, 나는 숨이 멎을 듯 놀랐었다. 정말 자신의 두피를 뜯어내는 것만 같아서.

나는 별로 세상을 속이고 살고 싶지는 않은 탓에 정말 대통령을 넘볼 수 있을 만큼의 훌륭한 장군감이 된다면 가발을 써야 할지, 홀딱 밀고 살아야 할지 고민 중이다. 마음 같아선 자랑스럽게 전부 밀어버리고 싶지만, 주변에서는 진정하라고 나를 달랜다. 모발이식 기술이 점점 좋아지고 있으니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만은 말라고.

시간이 갈수록 고통도 커지고 고민도 커진다. 아... 아... 이럴 줄 알았다면 정말 에도 시대 일본에 태어날 것을. 모두가 사이좋게 반짝이는 속알머리를 하고 인사하는 평화로운 시대에서 살아갈 것을.

그러던 중 뱃살을 내려다보니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참치로 태어날 것을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뱃살로 승부하는 참치를 보라. 번쩍이는 두상에도 그 얼마나 늠름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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