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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시대정신, 학습, 사회화
신희섭  |  desk@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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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1.06  12: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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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어수선한 한 해가 지났다. 지난했던 한 해를 어렵지만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넘어온 우리에게 수고했다고 박수 한 번 보내자. 일상을 평범하고 평탄하게 보내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가!

어려운 경제, 메르스에서 시작해 AI로 마무리 지은 전염병. 정유라로 시작해 터져버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다. 새로 시작하는 2017년은 지난 2016년 한 해의 묵은 때를 벗겨내고 한국사회가 비정상의 정상화를 이루기 바란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것이다. 소란스러운 세상살이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가는 수많은 이들의 노력들이 혼란스러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발전해 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생각해 보면 어떤 이들이 더 많을 지는 명확하다. 시대의 균형을 깨뜨리고 시대의 방향을 변화시키는 이들이 있다. 적극적으로 새로운 역사를 위해 도전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과거를 지키기 위해 시대의 진화를 막아서는 이들이 있다. 이 지점에서 진보와 혁신의 논리와 보수와 수구의 논리가 충돌한다. 한편으로는 도도한 시대의 흐름에 있어 균형을 찾으려는 이들도 있다. 강의 저류(底流)처럼 천천히 시대를 따르고 시대와 같이 흘러가는 이들이다. 굽이치고 물살을 만드는 강물의 상층부와 달리 드러나지 않지만 강을 이끄는 것은 바로 이들이다.

시대정신. 이 시대 저류를 이루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상식. 높은 곳에 있는 유리잔이 흔들리면서 불안 불안할 때 이 유리잔을 낮은 곳에 내려두어야 마음이 편해지는 것처럼 균형이 잡힌 상태로 되돌리기 위한 관념적 노력. 정확한 원인분석이 따르지 않아도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려 두지 않으면 생기는 불안. 도덕적인 불편함. 이러한 것들이 모여 시대정신을 만든다.

대한민국은 여러 차례의 고비를 지나왔고 그 고비 고비를 이끌어낸 시대정신이라는 무서운 힘이 있다. 그래서 지금의 이 고통스럽고 지난한 과정 역시 시대정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본다면 역사의 저류는 서서히 그러나 무겁게 원래의 흐름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몇 일전이다. 저녁에 카톡으로 사진이 하나 왔다. 와이프가 찍은 사진에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 아이 둘이 머리에 종이로 만든 띠를 두르고 있었다. 띠에는 ‘치킨운동’이라는 표어가 있었다. 몇 일전부터 바삭바삭한 치킨이 먹고 싶다고 한 것을 사주지 않았더니 엄마에게 띠를 만들어 두르고 ‘기습’시위를 한 것이다. 두 아이가 활짝 웃으면서 치킨을 사달라는 투정이 귀여워 한참 웃었다.

한편 여러 생각도 들었다. 자신의 주장을 이렇게 유머러스하게 풀 수 있구나 하는 생각.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는 민주주의의 조기교육의 효과를 보여주는가 싶기도 했다. 또 한편으로는 띠를 두르고 투쟁을 하는 모습으로 민주주의를 극단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다. 다만 웃는 얼굴과 위트로 풀어내려는 뜻은 알겠기에 집안내 급진 강경파 투사를 만드는 것은 아닌 듯 하였다.

딸아이들을 보면서 스쳐지나간 생각. 과연 10살 남짓한 아이들은 지금 돌아가는 세상을 어떻게 배우고 있는 것일까?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방식, 촛불을 들고 거리를 걷는 방식, 자신의 주장을 다양한 형태로 풀어내는 방식, 대통령탄핵심판을 이끌어낸 촛불 집회와 이후 이에 대항하는 태극기집회를 바라본 이 아이들은 과연 정부와 국가 그리고 정치를 어떻게 바라보게 될 것일까?

사회화이론에 따르면 10살 무렵에 정치에 대한 인식이 생겨난다. 아직 정치인으로 인간과 정치제도를 구분하지는 못하지만 정치인에 대한 인식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 성향은 평범하게 정치가 작동할 때이다. 거대한 사건을 경험하게 되면 더 강력하게 그리고 더 빨리 사회화가 될 수 있다. 10대 이전에 전쟁을 경험한 아이들은 평화로운 시기를 산 10대 이후에 사회화를 한 아이들보다 자신의 경험에 더 의존하여 판단한다. 아랍권에서 내전을 경험하고 테러리즘과 대테러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너무나 어린 나이에도 테러단체에 가입하여 총을 드는 것을 보라.

아랍과 맥락은 다르지만 대한민국의 청소년들도 이전 세대가 경험하지 않은 사회화를 하고 있다. 부모의 손을 잡고 촛불 집회에 나온 어린이들이나 친구와 촛불 집회에 참여한 청소년만이 사회화를 하는 것은 아니다. 직접적인 경험이 있어야 학습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TV와 인터넷과 주변매체를 통해서 한편으로는 간접적으로 친구들과 부모님 그리고 선생님을 통해 현재 나타나고 있는 상황을 해석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립해갈 것이다.

이 시기에 공유할 경험을 만들어간다는 것은 중요하다. '동년배효과(cohort effect)'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같은 시대를 경험하면서 만들어진 가치관과 정치문화가 이후 이들의 시대정신을 만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이 기준으로 가족, 사회, 국가를 해석할 것이다. 권위와 권력에 대한 생각을 정립할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만드는 시대해석의 방향이 어떠할지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이들이 세상의 중심축이 되었을 때 지금과는 다른 시대정신 해석으로 세상을 이끌고 갈 것이다.

공적권력의 사적인 전용, 국회와 야당의 제도권 정치가 아니라 촛불 시위라는 운동의 정치가 만들어내는 탄핵, 직접민주주의와 광장민주주의에서의 저항, 저항에 대한 또 다른 저항, 권력자와 국가의 등치, 태극기와 기성세대의 의미. 이러한 한국사회의 갈등은 고스란히 지금 어린이와 청소년들에 대한 시대교육이다. 여기서 갈등과 투쟁을 이들에게 가르치자는 말이냐고 반문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이들을 교육하기 위해 갈등과 투쟁을 만든 것이 아니고 갈등과 투쟁이 만들어졌기에 이 아이들이 학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에서 공부나 할 것이지’라고도 반문하지 말기 바란다. 이런 세상을 아이들한테 보여주고 ‘자, 학교공부만 공부야’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민주주의가 학교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인가!

롤러코스터와 같은 한국의 민주주의. 이 거대한 사회교육의 현장에서 한국의 청소년들은 그들대로 시대정신을 배우고 있다. 2017년, 열심히 그리고 묵묵히 살아온 우리는 이들이 시대정신을 잘 배울 수 있도록 또 한 해 그저 열심히 그리고 묵묵히 살아야겠다. 시대정신을 만들어 온 우리의 평범한 일상의 힘. 여기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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