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119) - 비우고 내려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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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119) - 비우고 내려놓기
  • 차근욱
  • 승인 2017.01.03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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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공단기 강사

한 수행자가 있었다. 그는 수행 중 우유를 먹을 생각으로 염소 한 마리를 구했다. 그런데 염소를 기른다는 것이 좀 손이 가는 것이 아니었다. 풀도 먹여야 했고 운동도 시켜야 했다. 도무지 수행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목동을 구했다. 하지만 목동을 부리려면 돈이 필요했다. 수행은 돈이 되지 않았다. 수행자는 도시로 나아가 돈을 벌어야만 했다. 결국 수행에서 멀어지고 만 수행자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난 그저 수행에 전념하고 싶었던 것 뿐이었는데...’

해가 바뀌면 늘 새해의 계획을 세우고는 하는데, 사는 모습이 갑자기 바뀌는 것은 아닌 탓에 그 계획이라는 것이 사실 매년 그리 다르지는 않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는 작은 변화가 있었다. 이제는 내려놓고 비워,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
 

욕심이 한도 끝도 없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그러다보니 산다는 것은 어쩌면 소유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갖는 것이 많아지면 번잡함도 많아진다. 그건 물건이든 인연이든 마찬가지로. 번잡함이 많아지다보니 점점 지치기 시작했다. 있는 그대로 일상의 추레함을 감추지 않은 채 마음 쉴 곳이 없었다. 마치 염소를 한 마리 구했던 수행자처럼.

물건이나 인연의 탓은 아니겠지. 전적으로 나의 잘못이다. 움켜쥔 채 버리지도 못하고 놓지도 못하는 집착이 문제인게지. 그래서 새해에는 훌훌 털어버리자고 다짐했다. 물건도, 인연도. 그동안 이렇게 움켜 쥐려고만 들었으니 이제는 사나운 욕심을 좀 버릴 때도 된 것이 아닌가 싶어서.

굳이 미니멀 라이프에 동참하겠다는 식의 대단한 각오까지 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아졌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기에 버겁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래된 옷가지며 이제는 쓰지 않는 물품이며 읽지 않는 책들까지... 얼마나 더 이고 지고 살아야 하나 싶어서 스스로의 인생이 처량할 지경이었다. 문득 법정 스님의 ‘버리고 떠나기’가 떠올랐다.

처음, ‘버리고 떠나기’라는 수필집을 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선물이었다. 친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이 친구와는 죽이 잘 맞아서 음악이며 책이며 서로 함께 나누고 이야기 하곤 했었다. 즐거웠다.

내가 법정 스님의 글을 좋아하는 걸 알고 친구는 내 생일을 맞아 선물로 준 것이었는데, 당시 내게는 그 책 한권이 정말 굉장한 선물이었다. 지금이야 읽고 싶은 책은 출간일을 기다리고 있다가 바로 사서 읽어 버리곤 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읽고 싶은 책 목록을 적어 놓고 돈이 들어올 때마다 한 권씩 사서 읽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런 나를 잘 아는 친구가 법정 스님의 글을 선물해 주었다는 사실은, 나를 이해하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로서도 선물 그 자체로서도 내게 참으로 크나큰 행복이었다.

선물을 받고 흥분한 채로 집에 돌아가 그 날 꼼짝하지 않고 다 읽어버렸던 기억이 난다. 법정 스님의 글은 잠언적 경우가 있는지라, 천천히 묵혀가며 읽는 것도 좋았지만, 그저 법정 스님의 담백한 글이 좋아 참지 못하고 단숨에 읽어버리는 것도 좋았다. 가끔 그런 경우가 있다. 남아 있는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아끼고 아껴가며 책에 푹 빠져 독서하는 기쁨은 언제나 달콤했다. 그리고 ‘버리고 떠나기’는 내게 그렇게 기뻤다.

내용이야 이제와 많은 부분 기억하지 못하지만, ‘버리고 떠나기’라는 그 제목 만큼은 너무나도 또렷하게 남았다. 그리고 그 제목이 떠오를 때면 난 항상 부끄러웠다. 아직 버리지 못하는 내공의 내가 참 얄팍하기만 해서.

세월이 주는 선물인지도 모르겠지만, 이제는 어렴풋이 버려야 할 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금은 쓸쓸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제는 담담하게 버려가야지, 라고 생각하면서. 가지지 못해 번뇌하는 마음이나 갖고 있기에 번잡한 마음이나 모두 어리석기는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어쩌면 내가 버려야 할 것은, 물건이 아니라 내 마음일지도 모른다. 어리석음과 집착이 벽지처럼 눌어붙어 때가 타버린 마음.

살다보면 가장 힘든 것이 사람 관계인데, 학창시절을 지나고 나면 마음을 나누고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인간이란 존재가 약한 탓이려니 하며 이해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용할 생각에 손익을 따져 나를 바라보는 이들의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 어디에 그보다 더 슬픈 눈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은 더욱 사랑을 갈구하지만, 세상에 어디 정말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주는 사랑이 있던가. 모두들 그저 꾸며서 보여지는 모습만을 좋아하고 꾸미지 않은 모습에 실망하고 마는 것을. 결국은 그렇게 모두가 남이 된다. 가공된 모습을 좋아하는 이와는 진실이 아닌 포장을 한 채로 한정된 시간 속을 스쳐가기 마련이고, 이해관계에 따라 갑이 되고 싶어하는 이들과는 웃으며 척이 져 멀어져갈 뿐이다.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지만 이제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훌훌 털어버리며 단촐하게 살아가기로 했다. ‘버리고 떠나기’라는 말에 부끄럽지 않도록. 그런 취지로 주 2회 정도는 단식 또한 하기로 했다. 내 몸을 비우며 마음까지 비워내고 싶어서.

말이 많은 이는 사기꾼 아니면 거짓말쟁이, 라는 생각에 말 많은 사람을 참 싫어 했다. 하지만 나도 혹 말이 많은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 보았다. 말이 많으면 재앙을 부른다. 오해가 생기고 상처를 남긴다. 그러니 꼭 필요한 말만, 필요한 만큼만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스산한 세상살이, 결국엔 마음 둘 자리 찾는 일이 제일이었다. 마음 편히 웃을 수 있는 순간만이 행복이었다. 물건도 인연도 욕심도 결국엔 모두 업보가 아닌가 싶어 이제는 그만 털어버리며 살고 싶어졌다. 아등바등 이런 저런 세상 기준 맞추어 무엇을 할까. 마음 한 자락 둘 곳 없어 쩔쩔 매다 가는 것이 인생인 것을. 누구 탓이 아니다. 결국은 내 탓인 게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움켜쥔 손을 모두 놓아버릴 때, 이 황망한 인생이 비로소 풍요로워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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