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덕윤의 로스쿨 이야기 5 / 민사법 실력은 변호사의 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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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덕윤의 로스쿨 이야기 5 / 민사법 실력은 변호사의 실력이다
  • 문덕윤
  • 승인 2016.12.3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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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엇도 결국은 애초에 ‘민법’을 잘해야 잘 할 수 있다.”

로스쿨 지원생들의 자기소개서를 지도하면서 지금은 로펌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선배와 농담처럼 했던 말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자기소개서에 OO 전문 변호사 하겠다는 애들이 많아?”였습니다. 제가 “언니, 전문 변호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었더니, 그 언니 하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야, 우리나라에서 전문 변호사로 먹고 살 수 있는 변호사는 손에 꼽아. 전문의도 아니고 무슨 전문 변호사냐. 애초에 전문 변호사라는 용어 자체가 없어. 법조인은 최고 수준의 제너럴리스트야.”

법조인은 법적 지식과 시선으로 다양한 사건을 다룹니다. 그래서 법학이라는 기준에서는 전문가이지만, 사건의 내용이라는 기준에서는 최고 수준의 제너럴리스트가 맞습니다. 그리고 계약과 송무 전반을 다루는 능력은 민사법 전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합니다. 오늘은 로스쿨을 졸업한 뒤 변호사로 활동할 때, 민사법 실력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로스쿨 이야기 제2화 : 민법 선행학습 성공방법>에 이어 정연석 변호사님께서 오늘도 좋은 글 보내주셨습니다. 현직 변호사의 눈으로 본 “변호사의 실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글이 지금 로스쿨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내가 왜 민사법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지 동기 부여가 되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제5화 : 민사법 실력은 변호사의 실력이다.
 

 

 

 

 

정연석 변호사
서울대학교 법학과 졸업
사법연수원 40기
법무법인(유한) 정률 변호사
메가로이어스 민법/민사소송법 전임교수

1. ‘OO 전문 변호사’가 되기 위한 공통요건

몇 달 전, 파산법 분야 전문 변호사가 꿈이라는 로스쿨 9기 입학 예정자가 “변호사님, 파산 전문 변호사가 되려면 로스쿨에서 어떤 공부를 하고 어떤 경험을 쌓는 게 도움이 될까요?”라고 물어왔다. 파산 분야에 대해서는 지식과 경험이 많이 부족한 나였기에,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개인회생과 파산 분야 업무로 정평이 나있는 30대 후반의 변호사와 대형 로펌에서 도산 및 기업회생 팀에 소속된 선배 변호사에게 각각 물어보기로 했다.

서로 경험도 다르고 성격도 많이 다른 두 변호사는, 신기하게도 똑같은 대답을 했다. “알잖아요. 로스쿨에서는 그냥 민법 열심히 해야죠.” 허무한 대답, 하지만 또 ‘그럼 그렇지. 역시는 역시인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대답, 로스쿨 학원에서 민사법을 전임하고 있는 내가 대체 무얼 물어보고 무얼 들은 거지 싶은 대답이었다. 그리고 그 입학 예정자인 친구에게도 참 난감해졌다. 진지하게 향후 자기 전문 분야를 개척하기 위해 실제 도움이 되는 답변을 기대했었을 텐데, 마침 민법 강사인 변호사가 ‘그냥 민법 열심히 해야 한단다’라고 말하는 것도 참 없어 보이는 일로 생각됐다. 억울하기도 했다. 이 말은 민법 강사가 해준 말이 진짜 아닌데.

사실 달리 반박할 것도 없기 때문에, 두 변호사로부터 저런 대답을 들었을 때 나는 놀라기는커녕 곧장 “그렇긴 그렇겠죠?”라고 대답하긴 했지만, 그래도 무언가 답을 해줄만한 소스가 필요했기에 포기하지 않고 “그래도 뭔가 좀, 파산과 관련하여 로스쿨에 있을 때 경험해볼 만한, 공부해볼 만한 좀 특별한 것은 없나요?”라고 연신 캐물었고, 재무제표나 회계학 같은 뭔가 전문적으로 보일만한 얘기들이 억지로 끌려나왔지만, 이건 그래봐야 그저 선배의 그럴싸해 보이는 내용으로 채택된 몇 가지 조언이 될 것 같았고, 사실 정답은 민법 공부였다.

가만 생각해보니 나 역시도 수년 전 법무법인 변호사 1:1 채용면접에서 면접관으로서 면접자들 13명 모두에게 ‘민법’ 사례 문제를 물었다. 당시는 민사법 강사를 시작하기도 전이었다.

사실 변호사들은 다 알고 있다. 개인정보도, 공정거래도, 금융도, 그리고 인사‧노무도, 국제통상도, 기업인수‧합병도, 그리고 자본시장도, 환경도, 지적재산권도, 그 무엇도 결국은 애초에 ‘민법’을 잘해야 잘 할 수 있다(다만 형사와 헌법소송 분야만은 독자성이 있어 거의 그러하지 않은 편이다. 행정법 분야는 다소의 관련성이 있다).

다만 민법을 잘 하는 것은 그냥 기본적인 전제이기 때문에 특별히 언급되지 않을 뿐이다. “좋은 민사법률가가 아니고서는 결코 좋은 법률가가 아니다.”라는 격언도 타당하지만, 또 한편 ‘민사 전문’ 변호사라는 말이 특별히 성립할 수 없는 것도 관련된다. 도대체 그 이유는 뭘까.

2. 민법은 사람의 사회생활을 규율하는 기초법이다.

‘법’의 다른 말은 ‘권리와 의무’이고 이것이 법학의 본질이요 코어(core)다. 그런데 ‘민법’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면서 그 누구라도 사회생활에서 일반적이고 보편적으로 겪을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권리와 의무를 모두 규정한 법률이다.

사람이 태어나서부터, 아니 심지어는 태어나기 전 모체에 존재하는 ‘태아(胎兒)’ 상태에서부터 누릴 수 있는 권리로 민법은 이야기를 시작한다[태아의 권리능력]. 그래서 성년이 되기 전인 미성년자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부담하게 되는 절차나 효력을 논하고[미성년자의 행위능력과 법정대리인], 나아가 사람이 죽으면 남은 가족들에게 죽은 자의 권리와 의무가 승계되는 내용까지 다룸으로써[상속과 유언], 어찌 보면 한 인간의 일생(一生)을 모두 규율하고 있고 또 논의하고 있다.

한편 그 권리와 의무의 내용으로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다양한 재화들을 사용‧수익하는 등 지배하는 권리[물권법], 특정인이 특정인에 대하여 가지는 채권(채무)과 그 불이행에 대한 구제책[채권총론], 사람과 사람이 매매‧임대차 등 각종의 계약 체결을 통해 권리의무 관계를 맺고 계약의 목적을 실현해 나가는 구체적인 내용[계약각론]까지 모두 규율하고 있다.

그렇기에, 한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민사법의 적용을 받지 않고 지내기란 매우 어렵다. 아침으로 편의점 도시락을 사먹기 위해 들른 편의점에서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전철을 타고 출근하며 여객운송계약을 체결한다. 친구로부터 노트북을 잠깐 빌려 쓰면 사용대차계약이 되고, 월세를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전화를 받고 그 타당성과 대응 조치를 고민하는 것은 임대차계약이다. 누군가 뒤에서 내 차를 들이받으면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가 성립하고, 그리하여 치료비 등의 명목으로 얼마를 받고 끝내기로 합의하면 화해계약이 된다.

3. 민법은 전문분야가 아니기에, 전문분야 모두에 적용된다.

간혹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민법이 너무나 일상적이고 일반적인 내용들이다 보니 구체적인 사안별로 직접 적용되는 전문 분야의 법률들에 비하여 중요성이 낮거나 법리 전개가 단순할 것이라 오해할 수 있다. 실제 위에서 예로 든 개인정보, 공정거래, 금융, 인사‧노무 등은 모두 그 분야의 특별한 법률이 존재하여 그 법률이 직접 적용되기 때문에 그러한 오해는 더욱 강화될 수 있다.

그런데 그 특별한 법률들은 사실 자기 영역 고유의 특수한 문제만을 규정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특수한 규정을 두지 않은 나머지 공간, 매우 커다란 그 규정의 공백 부분에 관하여서는 온전히 ‘민법’의 규율을 받게 되는 것이다(손가락으로 가장 크게 원을 그려봐. 그걸 뺀 만큼 민법이 적용돼…?). 그러나 이와 반대로, 민법의 입장에서는 다른 법률의 규정을 원용하거나 그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

민법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법이기도 하고, 우리의 경우 민법은 최다 개수의 규정(1118개)을 가진 법률이다. 어떤 특수 분야를 예정하지 않은 상태의 ‘일반적’ 규정이다 보니 사안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단순해 보일지 몰라도, 구체적인 법 규정의 ‘요건’과 ‘효과’라는 기본구조를 살펴보면 민법이야말로 그 어떤 법보다도 짜임새 있게 논리적으로 완성되어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수천가지 분야의 법들이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편하게 기본 법리를 원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적어도 규정 일반론의 관점에서는 가장 모범이 되는 형태로 요건과 효과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즉, 특별법 규정의 경우에는 어떤 구체적인 경우에 어떤 결론이 된다는 항목 중심의 나열이라면, 민법 규정은 어떠한 법률요건에 해당하면 어떠한 법률효과가 발생하며 그 예외는 어떤 것인지 등에 관하여 일반적 공식이나 법칙이 될 수 있게끔 원리원칙을 명확하게 정립해둔 것이다.

4. 민법, 모두의 기본임에도 변호사들 간 실력 차이는 하늘과 땅이다.

얼마 전 메가로이어스 입학예정자 설명회(Lawyers’ Day)에 친분 있는 대학 후배인 현직 판사가 짧은 강연을 했었는데(나 역시도 사전에 강연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한 채 현장에서 듣게 되었다), 자기 경험담을 얘기하는 과정에서 “판사 입장에서 받아보면 변호사 간의 실력 차이가 서면에서 확연히 드러난다.”고 솔직하게 털어놨고, (당연히 변론주의의 원칙상 불허되지만, 그저 심정만으로는) 너무 답답해서 주장해야 할 민사 법리를 알려주고 싶을 경우도 많다고 했다.

변호사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경우는 상대방의 첫 번째 서면을 보면 승패가 예상되기도 한다. 민사 법리가 엉망진창인 서면을 보면 ‘변호사가 쓴 것이 맞나?’ 하는 매우 강력한 의심이 들기도 하는데, 업무에 성의가 없는 변호사가 사무장으로 하여금 대신 쓰게 하는 경우도 없지 않고(이것도 정말 심각한 비양심의 문제다), 대부분은 법정에 나와 말로 하는 변론을 들어보면 놀랍게도 그 변호사가 쓴 것임이 확인된다. 그 중 일부의 경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변호사가 교체되기도 한다. 아마도 의뢰인이 눈치를 챈 것 같은데 사임을 당한 변호사가 같은 변호사로서 심정적으로는 안 됐다는 마음이 들면서도, 사실 불필요한 동료의식을 빼버리자면 오히려 교체되지 않고 있는 경우, 즉 적지 않은 수임료를 지급하고 눈치 채지 못한 채 자신의 변호사를 계속 신뢰하고 있는 의뢰인의 경우가 더 안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력 차이의 원인은 아무래도 로스쿨 기간이나 사법시험 공부 기간에 있을 것이다. 방대하고 완결된 체계를 갖춘 기본법으로서의 민법의 특성상, 이미 변호사가 된 이후에는 민법 교과서를 다시 들춰보며 내용을 습득하거나 체계를 정리할 기회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것은 민법 실력과 체계를 일단 갖추고서 진출한 변호사가 단순히 개별 지식 일부를 ‘까먹어서’ 필요에 따라 교과서에서 찾아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변호사라고 해서 모든 것을 암기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 사안에 들어맞는 정확한 내용을 신속하고 적절하게 찾아내서 적용하는 것도 변호사의 매우 중요한 실력이다(조금 과장하면, 이것이 변호사 업무의 전부일 수도 있다). 그런데, 민법에 관하여 실력과 체계를 한 차례 갖춰놓지 못한 변호사는, 법학, 특히 방대한 민법학의 특성상, 내용을 ‘찾는 것’도 하지 못한다. 이건 진실이다. 정답은커녕 무엇이 문제되는 것인지 쟁점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5. 로스쿨 시절에 민법을 열심히, ‘지혜롭게’ 열심히 해야 한다.

민사법을 전임하고 있는 강사로서의 ‘혐의’를 벗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나는 제발 로스쿨에서는 민법을 열심히 하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리고 싶다. 모든 법의 기초법인 민법을 못한다는 것은 치밀한 법적 논리와 법적 사고력(소위 ‘Legal Mind’)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알다시피 변호사시험에서 민사법이 형사법이나 공법의 각 비중보다 75% 더 많은 비중을 주도록 되어있다. 그리고 로스쿨 학점에서도 민사법은 매우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로스쿨생들에게 ‘민법’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 당부할 수 있는 당장의 중요한 근거는 일단 이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살펴본 것처럼 법조 경험을 해온 법조선배로서 예비법조인 후배들에게 ‘민법’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하기 위해서 가져올 논거는 저 ‘75% 가중’이라는 비율을 넘어서 훨씬 더 많다. 형사와 헌법소송 업무를 하는 변호사까지 포함하여 국내 모든 변호사의 업무를 통틀어 볼 경우, 언급한 것처럼 특별법에 반영된 법리까지 고려한다면 법적 이슈가 존재하는 곳에서 민사의 비중은 그 비율을 여유 있게 넘어설 것이다.

다만 그냥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민법 실력이 쉽게 늘지 않는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민법의 방대한 분량, 시간적 여유가 거의 없는 로스쿨 생활 등을 고려하면 ‘지혜로운’ 노력만이 배신하지 않는다. 이에 관하여는 지난 칼럼(문덕윤의 로스쿨 이야기 2 - 민법 선행학습 성공방법, http://goo.gl/DV7Fss)에서 상세히 다룬 5대 원칙(① 언제나 쟁점끼리 ‘연관’ 지을 것, ② 민법 전체를 ‘ASAP’로 볼 것, ③ 쟁점별로 공부의 ‘강약’을 조절할 것, ④ 교과서를 읽으면서도 늘 ‘사례형’ 문제를 고민할 것, ⑤ ‘지도(map)’ 획득을 위해 가능한 목표를 세워 ‘완수’할 것)을 반드시 기억하고 지킬 것을 온 마음을 모아 당부한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론은 재학생 이상이라 하더라도 ‘민법 실력’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온전히 통하는 민법공부방법론임을 확실히 말해둔다.

아직 ‘공부’를 하는 기간인 로스쿨생 시절에 ‘민법’이라는 ‘가장’ 일반적이고 논리완결적이며 방대한 법률에 관하여 위와 같은 5대 원칙에 입각하여 전체 과정을 확실히 마치고 난 사람은, 변호사가 된 이후 다양한 사건들을 접하면서 수많은 법률들을 무작위로 처음 맞닥뜨리게 되더라도 아무런 두려움 없이 낯선 법 규정을 빠르게 분석하고 정확하게 해석하여 가장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찾아내는 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의 능력은 결국 변호사로서 자문이나 송무 어느 분야에 있어서든 매사 의욕 넘치는 ‘즐거운 열정’으로 이어지는 가장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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