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 (118) - 여러분의 표정은 안녕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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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 (118) - 여러분의 표정은 안녕하신가요?
  • 차근욱
  • 승인 2016.12.27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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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공단기 강사 

운전을 하고 가다가 긴 신호대기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멍하니 기다리기도 좀 심심하곤 해서 운전 중 확인하지 못했던 전화나 문자 등을 확인하곤 한다. 하지만 별다른 연락이 없을 경우에는 창밖 경치를 보거나 주변 건물을 보거나 사람들을 본다.

정신없이 살아가다보면 계절의 흐름이나 세상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잠시 신호대기 중 보는 세상은, 문득 세상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계절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알려주니까. 플라타너스 잎의 색깔이나 사람들의 옷차림에서 계절을 읽는다.
 

그 날도 신호대기에 걸려서 건널목 앞에서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늦가을이자 초겨울 느낌의 도시 속 건널목 양 끝편에는 각자의 길을 가던 다양한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런데 문득, 왼쪽 끝에서 활짝 웃으며 장난치며 몸을 흔들고 있는 어린 커플이 눈에 띄었다. 1~2학년 정도의 대학생으로 보였다. 두 사람은 모두 잘 차려입고 있었고, 볼이 뽀얗게 상기된 여자도 남자도 모두 행복해 보였다. 이제 막 시작하는 듯,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올 법한 예쁜 커플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여중이나 여고생으로 보이는 여학생들이 재잘거리며 웃고 떠드는 중.

건널목 오른쪽 끝에는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마주할 수 있는 아주머니들이 서 있었다. 무심한 표정, 지친듯한 모습. 그리고 그저 두툼하게 입은 모습.

문득, 표정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친구와 함께 있어서, 연인과 함께 있어서 밝고 활기찬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건널목 앞에서 혼자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고 있을 때라면 무심한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지 상황이 그럴 뿐이라고 말하기엔 조금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생기’였다.

문득 차창에 비추인 내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아주머니들과 다르지 않은 무심한 얼굴. 별다른 감정의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 듯 무표정한 사내가 차창에 비추어 보였다. 창에 비추인 내 얼굴에는 ‘생기’가 보이지 않았다. 물론, 한참을 운전하다 신호대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얼굴에 ‘생기’가 넘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만, 그래도 자신의 얼굴에서 낯선 무표정을 발견했을 때의 느낌은 아주 작은 충격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표정이 없다는 외국친구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쳇, 지네 나라 사람들은 얼마나 표정이 다양하다구!’라는 정도의 기분이 들어 ‘그냥 길을 걸어갈 뿐이니까’라고 심드렁하게 대답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문득, ‘표정이 없다’라는 말의 의미가 가슴 속으로 쑤~욱 하고 들어왔다. 우리가 모습을 살피기 위해 거울을 보기는 하지만 자신의 표정을 보고자 천천히 거울을 보는 경우는 사실 드물다. 거울 앞에서 외모가 아니라 표정 그대로를 천천히 살핀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없다. 그저 머리가 흉하지 않은지, 뾰루지가 나지는 않았는지, 살이 붙지는 않았는지만을 살필 뿐이다.

나이가 어릴 때에는 많은 것을 느꼈었다. 세상이 신기했고 재미있었다. 온통 새로운 것 뿐이었고 친구들과 떠들고 뛰어 노는 모든 순간이 환희로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아마 그 시절의 나 역시 표정이 다양했을 것이다. 풍부한 감정만큼 풍부한 표정을 하고 얼굴에 빛을 잔뜩 머금고 거리를 당당하게 활보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조금씩 나이가 들고 사회인이 되어 가면서 나는 내 얼굴에 얼마나 생기있는 표정을 담았던가. 그저 하루 하루씩 죽어가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좋은 일, 궂은 일, 기쁜 일, 슬픈 일. 인생사 희노애락이 회전목마처럼 돌아가기 마련이지만,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며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무디어져 간다. 그리고 표정을 점점 잃어간다. 무표정을 한 채로 무채색 도시를 살아간다.

둔감해져 가는 것인지 감수성이 메마르는 것인지, 돌아보니 어느 순간 부터인가 기쁜 순간도, 재미있는 순간도, 신기한 순간도 점점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딱히 우리네 세상살이가 재미없어서라기 보다도, 아마 그냥 습관적으로 살아가며 순간 순간을 넘겨내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시무룩한 표정을 하고 그저그런 태도로 인생을 꾸역 꾸역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 이런 인생이 앞으로 몇 십년씩이나 이어진다면, 마음의 병이 생기지 않을리 없지. 희노애락이 없이 그저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에 생기가 넘칠 리 없을테니까.

사촌 여동생의 남편인 박서방에게 여동생의 어디가 예쁘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새신랑인 박서방은 그저 멋쩍게 웃기만 했다. 그래서 ‘어디가 예쁜지 늘 찾아보고 생각해야 해. 안그러면 예쁜 사람 예쁜줄도 모르고 살게 되거든’이라고 말했다. 왠 아재같은 소리인가, 하실지 모르겠지만 감사한 일을 돌아보지 못하고 살다보면 감사한줄도 모르고 살게 되기 마련 아니던가.

그 건널목의 신호가 바뀌어 다시 앞으로 차를 몰아 나가면서 나의 표정은 안녕하신지, 내 얼굴에서 생기를 잃어버린 이유는 무엇인지, 생기를 잃지 않기 위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내가 즐겁고 행복한 순간은 언제였는지, 재미있고 활력이 넘치는 일은 무엇인지 고민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월이 갈수록 우리는 그저 그렇게 표정을 잃고 살아가게 되는지도 모른다. 어린시절의 행복과 웃음을 잃어가며 나이가 들수록 무채색의 인생이 되어가는 일은 참 슬픈 일이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가 어린시절의 활짝 웃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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