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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 (61)
박준연  |  desk@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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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2.16  10:4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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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시를 읽는 연말

따뜻했던 며칠이 지나고 도쿄에도 겨울다운 추운 날씨가 찾아온 지난 주말은 금요일에 밀린 일을 하고 또 시와 평론을 읽으면서 보냈다. 회사 내부 행사에서 법에 관련된 시에 대해 짧게 발표를 하겠다고 손을 들었기 때문이다. 시인이자 시 평론가로 활동하는 변호사의 글에서 특히 와닿은 부분은, 시인과 변호사가 별로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친화성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먼저 시인도 변호사도 언어를 통해 갈등과 복잡한 상황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시와 법 관련 글쓰기에는 닮은 점이 있다. 또 시인은 시를 통해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데 변호사는 법적 언어를 사용한다는 사실만으로 상대방을 움직일 수 있는 어느 정도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

발표를 위해 미국에서 발표된 법과 변호사에 대한 현대시를 순전히 내 취향에 따라 몇 편 골랐다. 그 중 한편이 역시 변호사이자 시인, 또 한국계 미국인이기도 한 모니카 연(Monica Youn)씨 블랙에이커(Blackacre) 연작 중 한편이다. 영미법을 가르치는 로스쿨에 다닌 사람에게 블랙에이커는 낯설지 않은 용어이다. 전공필수 수업 중 하나인 물권법(Property law)에서, 가상의 토지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블랙에이커, 그린에이커(greenacre), 브라운에이커 (brownacre) 등의 개념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어떠한 땅도 실제로는 소유권이나 건물 건축, 해체의 역사 없이 백지상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블랙에이커란 개념이야말로 법적 허구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땅과 물권의 비유를 통해 개인적인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시로 표현한다.

또 로스쿨은 졸업했지만 진통제에 중독되어 약국에서 약을 훔치고 5년간 복역을 한 시인이 쓴 운문(verse)을 골랐다. 로스쿨을 다니면서는 언제나 자신을 소설가나 시인으로 생각했는데, 형무소에서 수인들에게 오는 서한을 해석해주고 도움을 주다보니 어느샌가 변호사로 불리게 되었다는 부분을 골랐다. 약물 중독은 정당화될 수 없지만, 로스쿨에서 진통제 중독이 더 심해졌다는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복잡한 기분이 되었다. 로스쿨 학생은 물론이고 변호사라는 직업은 미국 통계상 음주는 물론 약물 중독이 꽤 많은 직업이다. 마침 이때쯤, 로스쿨 1학년 첫 기말고사 직전의 우울한 기분을 상기해보면 뭐라고 해야하나, 그 기분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내가 일상적으로 다루는 언어가 반드시 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시와 그렇게 동떨어진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구나 싶었던 것은 재판의 최종 변론이나 판결문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 같은 내용을 시로 옮긴 것을 읽고서였다. 영미계 형법 특유의 개념인 중죄 모살화(felony murder) 범죄로 실제 있었던 사건을 소재로 하는 이 시는 건조한 언어로 상황을 묘사하는 것만으로 무고한 생명의 희생을 전달한다.

또 제목이 증거법(The Rules of Evidence)인 전직 이혼 전문 변호사이자 시인인 리 로빈슨(Lee Robinson)씨가 쓴 시도 발표 자료에 넣었다. "세계의 역사는 전문증거(The history of the world is hearsay.)"이지만 "그것을 들으라(Hear it.)"는 부분이 변호사의 감성을 자극한다고 해야할까. 증거법은 수업때도 기말고사 준비때도 많은 고생을 했지만, 교과서에 나오는 문구 중에 시적이라고 느껴지는 문구가 꽤 있었던 것 같다. 예컨대, 전문증거는 증거로 채택되지 못하지만 전문증거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주장을 위한 목적이 아닌 행동(nonassertive conduct)의 경우는 전문증거가 아니다. 비가 와서 우산을 펴는 행동은 비가 온다는 사실을 주장하기 위한 행동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 목격한 사람의 누구누구가 우산을 폈다는 증언을 하면 이는 증거로 채택된다. 교과서의 이런 설명을 읽다가 과연 비가 온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우산을 펴는 경우는 없는가 하는 생각에 빠지고 그래서 증거법 공부는 더더욱 미궁에 빠졌던 기억이 있다.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 수석 합격한 재원이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펌 중의 하나인 ‘Latham & Watkins’ 로펌의 도쿄 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l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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