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고명 시인의 촛불의 노래, 그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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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고명 시인의 촛불의 노래, 그 너머
  • 오시영
  • 승인 2016.12.09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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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오늘 2016년 12월 9일은 대한민국이 새로 태어나는 날이다. 5천만 민족이 두려움과 공포, 억눌림과 협잡, 미혹과 무기력의 세계에서 깨어나 평화와 환희, 자유로움과 밝음의 기쁨을 진정 누리는 첫날이다. 집단지성이 하나의 지혜로 모일 때 그 힘을 당해낼 자가 이 세상에는 아무도 없음을 진정 체험하는 첫날이다. 이미 공포의 사슬에서 벗어난 이들은 이를 실감하는 첫날이고, 여전히 공포의 사슬에 얽매여 있던 이들에게는 공포의 사슬을 끊어낼 수 있는 절호의 첫날이다. 모든 국민이 각자 자아 독립을 만끽하는 첫날이고, 빛이 어둠을 몰아내는 첫날이다. 5천년 역사에서 이렇게 평화롭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 본 적이 있었던가? 온몸을 태워 정의를 이룩해낼 수 있었던 날이 있었던가? 서로의 눈빛이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의 손짓이 서로를 따뜻케 하며, 서로의 숨결이 서로를 감싸 안았던 날이 있었던가? 그런 날이 있었던가?

오늘은 국회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결정하는 날이다. 여전히 변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돌아가는 회오리바람의 힘이 더 이상 탄핵의 시계추를 멈출 것 같지는 않다. 세월호 안에서 아이들이 죽어가는 그 긴박한 생명의 시간에, 국민들에게 자신의 고뇌를 연출하고자 천연덕스레 거울 앞에 선 여자, 그녀의 이름은 박근혜이다. 그것도 정갈함을 기본 콘셉으로 삼고 있던 평소의 올림머리를 산만하게 보이도록 머리손질을 했다니 가증스러울 정도로 가관 중의 가관이다. 5분이면 달려 갈 수 있는 청와대 경내 소재 안전상황실까지의 거리를 무려 일곱 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는 그녀의 이름은 박근혜이다. 제2차 청문회에서 최순실을 지근거리에서 보았던 두 사람 중 고영태 증인은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 1위가 최순실, 2위가 정윤회, 3위가 박근혜라는 말에 동의하냐는 한 의원의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고, 차은택 증인은 공동 1위가 최순실과 박근혜, 이 나라 대한민국이 최순실과 박근혜 공동정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증언하였다.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을까? 21세기 문명사회에서, 아이티 강국이라며 최고 선진문화기술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렇게 상식 파괴, 문명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마저 파괴하는 일이 공공연히 일어났을까? 참으로 해괴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제2차 청문회에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보여준 비겁함, 비굴함, 노회함은 평생 권력에 빌붙어 모략중상정치에 골몰했던 한 인간의 초라한 노추를 전국민에게 보여주었다. 뻔한 거짓말을 입을 옹다물고 답변하는 그의 태도에서 반성이나 회한은 찾아볼 수가 없다. 여전히 감추고자 하는 자신의 추악함만이 돋보이는 역설적 상황만이 도드라져 보일 뿐이었다. “모른다.” 혹은 “아니다.”라고 한들 그게 모르는 것이 아니고 아닌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법무부장관까지 지낸 그가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양심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그가 못내 측은해보이기까지 한다. 평생 권력을 쫓아 멀쩡한 국민을 핍박하였던 그의 말년이 비참해지는 것은 자신이 존재함을 우리에게 가르치려는 신의 섭리인가? 김영한 전 민정수석은 비록 운명을 달리 하였지만, 그가 너무나 성실하게 기록해 두었던 업무수첩은 모든 진실을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다.

그 비망록대로 관변보수단체를 어떻게 조종하였는지 그 배후를 밝혀야 한다. 어버이연합에 국한할 사항이 아니다. 관변보수단체들이 맨입으로 그렇게 조종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게 상식이다. 그들에게 얼마의 자금이 흘러들어갔는지, 연락책은 누구였는지, 어떠한 조작사항을 전달했는지 등등 그 모두를 밝혀야 할 것이다. 특히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해산결정에 대한 선고결과를 미리 알게 된 경위를 밝혀야 한다. 어떻게 헌법재판소의 판결내용을 선고 며칠전부터 대통령 비서실장이 알게 되었는지, 당시 이석기 의원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있기 전인데도 사실관계를 헌법재판소가 확정하여 대법원 판결에 앞서 통진단 해산결정을 하게 되었는지 박한철 헌법재판소장과 김기춘 비서실장과의 관계를 새롭게 밝혀내야 한다. 그리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대한 판결 결과에도 어떻게 청와대가 실질적인 개입을 하였는지 역시 밝혀내야 할 사항이다. 이 정부는 비선실세의 농단뿐만 아니라 공식라인실세의 국정농단 또한 심각하였음을 김영한 민정수석의 비망록이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의롭게 살아왔던 김영한 검사가 불의의 꼭지점에 있는 중상모략의 악랄한 모략가인 김기춘 비서실장의 부당한 지시를 받아 이를 실행하면서 얼마나 심적 고뇌가 컸겠는가? 그 죄가 너무 크다.

오늘은 “그 너머”를 생각해야 하는 날이다. 만일 탄핵소추가 결정되어 박근혜 대통령이 직무정지를 당하게 된다면 자진하야의 길을 걸을지 아니면 헌법재판소의 탄핵결정을 기다릴지 아직은 알지 못한다. 전혀 상식적이지 않는 사람이기에 평범한 범부의 상식으로는 판단불가이다. 하지만 남재희 전 노동부장관이 인터뷰했던 것처럼 자진하야하고 아무도 몰래 망명길에 오르면 형사처벌을 받지 않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평생 조국땅으로 되돌아올 수는 없을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처럼 죽어 귀국할 수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니면 탄핵결정 후 형사소추되어 형벌을 받고 나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이 땅에서 영욕의 삶을 살아가는 길을 택하면 이 땅에서 살아갈 수는 있겠지만, 차가운 교도소 생활을 감내할 수 있을지 불안하기만 하다.

현재까지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재직기간 중 향정신성 의약품 처방이 상당량 있었음이 밝혀졌다. 전문가들이 1인에게 처방되었다면 약물중독상태라고 할 수 있는 양이고, 여러 사람에게 처방되었다면 그렇지는 않을 수 있는 양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만일 저 약들이 박근혜 대통령 1인에게 집중적으로 처방된 것이라면 이는 심각한 문제라고 할 것이다. 능력이 미치지 못한 대통령이 아무리 최순실의 도움(?)을 받았을지언정 그 많은 국사를 처리하면서 얼마나 미치고 환장할 정도로 업무압박을 받았기에 저처럼 많은 향정신성 약품을 처방받아야 했을까 싶어 한편으로는 측은해지기도 하지만, 그러기에 얼른 맞지 않은 모자를 벗고, 어울리지 않은 옷을 벗고, 발에 꼭 끼어 오히려 자신을 아프게 하는 신발을 벗고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이 합당할 텐데도, 이를 분별하지 못하니 안타깝기만 하다. 쉬기를 반복하던 청와대와 달리 외국 순방을 마치고 나면 아프다며 며칠씩 드러누웠던 게 다 이유가 있었던 거다.

우리는 2016년 12월 9일, 그 너머를 생각해야 한다. 집단지혜를 모아 새로운 대한민국을 어떻게 청소하고 리모델링할 것인지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누가 다음 국가권력을 잡는가에 우리의 지혜가 낭비되어서는 안 된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절대권력자가 되든, 정의로운 국가시스템에 의해 국가가 통치되어 공정하고 합법적이며 정의로운 질서가 모든 이들에게 평화와 안식을 주는 나라로의 변화가 추구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김기춘 같은 구질서, 구시대정신에 함몰되어 공작정치, 부정부패에 찌든 공직자의 탈을 쓴 이리들을 공직에서 걸러내어야 한다. 그리고 권력에 아부하며 충성경쟁을 벌였던 사이비언론인들을 색출하여 그들의 비틀어진 입을 바로잡아야 한다. 자신의 전문지식을 국가의 공적 이익을 위해 쓰지 않고, 사사로이 부정한 정권의 정당성을 담보하는 근거로 제공한 곡학아세의 대학교수를 비롯한 전문가 집단을 걸러내어야 한다. 그리고 기업의 이권을 위해 권력에 검은 돈을 제공하고, 수많은 이권을 챙긴 기업가들을 징치해야 하고, 그러한 부정직이 판을 치지 못하도록 세제를 비롯한 각종 인ㆍ허가권에 대한 전면적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오늘 우리는 그 너머를 생각해야 한다. 소위 지도자들이라 일컫는,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실 별 것도 없는, 별 것도 아닌 이들의 교만과 아집이 잘못된 길로 나아가지 않도록 감시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촛불을 들었던 그 지혜의 마음을 항시 열어놓고 집단지성의 힘을 발휘해야 한다. 우리는 힘들게 9부 능선을 넘었다. 이제 마지막 10부 능선을 향해 무겁지만 희망찬 발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그리하여 고지에 올라 그 너머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 너머에 비치는 밝은 햇살을 보아야 하고, 맑은 강을 보아야 하며, 넓은 초원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 너머에서 뛰어노는 사슴과 사자를 보아야 하고, 어린 아이들을 보아야 한다. 그 너머, 미래를 꿈꾸며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이 시작하는 첫날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 너머를 향한, 9부 능선에서 10부 능선을 향해 나아가는 첫 걸음의 날임을 자각해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도도한 정의의 물결을 막아서는 장애물이 아직은 강고하다는 사실이다.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구악의 저항은 의외로 강할지 모른다. 그리고 호시탐탐 반격의 기회를 노릴 것이다. 국민의 집단지성은, 그들에게 어떠한 빌미도 제공해서는 안 된다. 오늘을 기점으로 더 뭉쳐야 하고, 더 지혜로워야 하고, 촛불 정도가 아닌 달빛, 아니 뜨거운 태양빛으로 불의를 불사르는데 앞장서야 한다. 오늘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첫날이다. 순간의 기쁨으로 오늘 촛불을 꺼서는 안 된다. 더욱 촛불의 심지를 돋우고, 더 밝음의 세계, 빛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행진을 멈추어서는 안 되겠다. 아직은 9부 능선이다. 10부를 넘어 그 너머를 보아야 한다. 그 너머에 정의의 대한민국을 세워야 한다.

고명 시인의 “촛불의 노래”를 같이 불러보자.

때로 내가
불빛으로 너울너울 흔들릴 때
그것이 감출 수 없는 내 뼈의 노래요
살의 몸부림인 줄을

그대는 아시는가요
하나의 별로 빛나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
밤의 사막을 달려와야 했는지

비 그친 하늘처럼 눈부시게
그대 속의 어둠을 닦아낼 수만 있다면

내가 한나절 들꽃처럼
세월 속에 어린 등불 하나
잠시 비추다 갈지라도

그것이 내 목숨의 향기인 줄을
그대는 아실런지요(전문)

오늘 2016년 12월 9일, 오늘 우리는 그 너머를 보아야 한다.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그 너머, 그러면서도 진정 가고 싶어 했던 그 너머의 세계를 가야 한다. 9부 능선을 넘고 10부 능선을 넘어, 내 뼈의 노래요 살의 몸부림인 촛불의 너울거림을 결코 헛되게 해서는 안 된다. 하나의 별로 빛나기 위해 오랜 시간 밤의 사막을 달려와야 했던 그 별빛을 헛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를 태우듯 촛불을 태워 불의를 태우고, 악행을 태우고, 음험한 권모술수를 태워 빛의 나라, 밝음의 나라, 그 너머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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