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외교관 30년에서 로스쿨 교수로, 소통·협상 전문가 서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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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외교관 30년에서 로스쿨 교수로, 소통·협상 전문가 서용현
  • 김주미 기자
  • 승인 2016.12.05 17:33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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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사무총장을 사부로, ‘작은 거인’ 별명 얻어
법대 나와 외무고시 응시, 오랜 꿈은 오히려 ‘PD’
“패러다임만 전환하면 한국 세계 중심 국가될 것”

[법률저널=김주미 기자] 흰색 스웨터 차림의 작은 체구를 가진 그가 장난스러운 인사말로 악수를 청했다.

“알불사(‘알고 보면 불쌍한 사람’의 줄임말)들이 여성의 모성애를 자극해서 인기가 많다고 하더군요. 저는 이렇게 못생기고 키도 작아서 알불사로 먹고 삽니다(웃음)” 

평범한 스타일은 아니라는 주변의 평을 익히 들어왔던 터였다. 만나고 보니 역시나 그랬다. 예사롭지 않은 그만의 분위기가 확실히 있었다.

1977년 외무고시에 합격해 외무부 국제법규과 차석, 외무부 대미통상과장, WTO참사관, 주 베네수엘라 공사, 주 OECD대표부 공사 등을 지낸 그는 외무공무원으로 30여년을 있었다.

반기문 사무총장이 외교통상부 장관직에 있으면서 UN 사무총장 후보에 출마하던 시점에는 반 사무총장의 특별보좌관을 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지난 2007년부터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으로 자리를 옮겨, 소통·협상 등 외교관 경력을 바탕으로 한 그만의 특화된 강의를 예비법조인들에게 전하는 데 힘쓰고 있다.
 

오랜 꿈은 PD..“외시 합격하고도 PD 전향 생각”

“서울대 법대 71학번, 무법자입니다” 그의 말에는 한마디, 한마디 유머가 양념처럼 스며들어 있었다. 법대를 나왔지만 법을 몰라서 ‘무법자’라는 것이다.

법학도가 왜 사법시험이 아닌 외무고시를 응시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원래 어느 고시도 할 생각이 없었어요. 오히려 PD를 하려고 했죠. 덕분에 누구보다 여유 있는 대학생활을 했고, 유신정권이 대학 문을 노상 닫아놓은 덕택에 간신히 졸업을 했지요”라며 웃어보였다.

그러다 군 입대가 늦어져 PD를 못 하게 되었다고 한다. "뒤늦게 고시에 눈을 돌렸는데 제가 천하의 악필이라 글씨(한문) 적게 쓰는 고시를 찾은 것이 외무고시였어요. 외시 선택의 동기가 유치하지요?(웃음)”

외무고시에 합격해 외무부에 입부해서까지도 PD로 전향하기 위한 그의 곁눈질은 계속 됐다. 하지만 결국 주변의 만류, 특히 어머니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뜻을 접고야 말았다.

아쉬움이 컸겠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외의 말을 했다. “내 무대를 만들면서 살아가면 그게 PD니까, 난 PD를 지금도 하고 있어요”

그가 PD를 하고 싶었던 것은 자신이 원하는 세계, 자신이 그리는 무대를 직접 만들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일본 메이지 유신의 영웅, 사카모토 료마의 말을 인용했다. “인생은 일종의 연극이다. 그러나 인생이 연극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연극의 무대는 타인이 설치해 주는 반면 인생의 무대는 자신이 직접 설치해야만 한다. 그것도 자신의 취향에 맞는 무대를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덧붙였다. “PD를 직업으로 하면 재미없을지 몰라요. 그러나 사카모토 료마처럼 어느 직업을 갖더라도 자신의 삶을 꿈꾸고 그리면서 얼마든지 PD 역할을 할 수 있지요”라고.

“외교는 친구만들기다”

그에 따르면 외교는 친구만들기였다. "내가 외교관으로서 새로운 환경에서, 다양한 사람을 처음 만나서 그를 친구로 만들려면 내 스스로 배우가 되고 시나리오를 구상하는 PD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에게 즐거움과 강한 매력을 주어야 합니다. 상대를 ‘편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상대를 사랑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그는 자신있게 말했다. "내가 사랑하면 상대도 나를 사랑합니다. 내가 열려있으면 상대도 열립니다. 그러면 친구 만들기는 쉽습니다. 아주 높은 사람이건, 미스 유니버스 출신이건 저는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주 베네수엘라 공사였던 시절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당시 차베스 대통령 역시 자신과 즐겁게 소통한 한 명의 친구였다고 말한다.

“베네수엘라의 현지어를 거의 못하는 상태에서 발령을 받았어요. 부임 초기 열심히 스페인어를 배웠지만 아직 50단어 정도밖에 익히지 못한 상태였는데, 차베스 대통령이 각국 대사를 위해 신년하례회를 열었거든요. 그 때 제가 대사 대신 참석을 하게 됐죠”

그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연설을 마친 차베스 대통령이 예정에 없이 각국 대사와 개별적으로 신년 인사를 하자고 제안한 거야. 눈앞이 캄캄해졌지. 영어 통역을 쓰는 대사들도 있었지만 대통령과 직접 대화할 기회를 날려? 그럴 순 없었어요. 그래서 ‘내가 아는 50단어 스페인어로 정면 돌파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그렇게 시작된 서교수와 차베스 대통령과의 당시 대화는 이랬다.
서용현: (대통령 앞 10보 전에 서서) 제 이름은 호세(Jose)입니다.
           *호세는 필자의 현지(스페인어) 이름
차베스: (눈이 동그래졌음)...한국대사 이름이 호세라구(?) 하면서 의아해 한 듯
서용현: (대통령 앞 5보 전에 다가 가서) 나는 베네수엘라 사람입니다.
차베스: (눈이 더 동그래졌음)
서용현: (효과를 내기 위해 약 4, 5초간 뜸을 들이고 대통령 바로 앞에 다가가서)
         “내 마음속으로(de mi corazon)” (마음속으로 베네수엘라 사람이라는 얘깁니다).
차베스: (박장대소를 터뜨리고 서공사를 얼싸 안으면서)
         “호세, 정말 고맙습니다”를 연발하면서 몇 번이나 필자의 등을 두드린 후,
          옆에 서 있던 부통령, 외무장관 등에게 필자를 일일이 소개하고 다시 한 번 포옹을 하면서 
          다음과 같이 작별인사를 했다.
          “저도 ‘마음속으로’ 감사를 드립니다(Muchas gracias ”de mi corazon“).
 

반기문 사무총장, 서 교수의 ‘사부’

서 교수가 OECD 공사로 발령받은 지 11개월 정도가 지난 때였다.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던 반 사무총장으로부터 특별보좌관으로 들어오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주된 역할은 연설문과 서한 등을 쓰는 스피치라이터(speech writer)였다.

유독 업무 스트레스를 안 받는 체질의 그였지만, 당시에는 부담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세계 최정상들의 내공 대결’에 발을 들여놓는 일이었던 것이다.

서 교수는 이성이나 지식에 치중된 연설, ‘나 찍어달라’는 식의 진부하고 누구나 아는 내용이 담긴 연설·서한으로는 승부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서 교수는 그의 풍부한 문화적 배경 지식과 감성적 면모들을 사는 이야기, 친구 이야기 형식으로 연설문에 녹여냈다.

서 교수와 반 총장의 인연은 주미대사관에서 총영사와 영사의 만남으로 시작됐다. 서 교수는 “영화 <취권>에 보면 사부와 장난꾸러기 성룡이 나오죠? 그런 관계였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요”라며 웃어보였다.

반 총장이 서 교수에게 ‘작은 거인’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기에 사연을 물었다. “반 총장님은 엔터테인먼트에 약했어요. ‘이 영화도 못 보셨어요?’, ‘이 노래를 모르신다고요?’라며 간간이 자극을 했더니 어느 날부턴가 영화를 갑자기 몰아서 보시는 거예요”

한 주에 2,3개씩 영화를 보고 온 반 총장은 영화를 보았다는 티를 내려 함인지 “서 영사와 꼭 닮은 사람이 이 영화에 나왔어”라며 이야기를 하곤 했다고.

그렇게 거론된 서 교수와 닮았다는 영화 주인공은 ‘리썰 웨폰 2’의 멜 깁슨, ‘아마데우스’의 모차르트 등이었다.

서교수는 멜 깁슨은 너무 사납고, 꼬마 아마데우스(모차르트)는 여자 꼬마들 치마만 올린다고 사양을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교포들로부터 ‘수퍼맨’의 별명을 얻었다는 반 총장이 대뜸 “내가 수퍼맨이면 서 영사는 작은 거인이지”라며 서 교수의 별명을 새로 지어주었다는 것.

서 교수는 “그 호칭 역시 처음에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근데 당시 상영되던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영화 ‘작은 거인’을 보고서는 마음이 바뀌더라구요. 지금은 ‘작은 거인’이라는 말을 100개도 넘는 내 별명 중 가장 좋아하는 별명으로 꼽고 있어요”

새해 ‘정치 동화’ 형식의 책 출간 예정

시대가 어둡고 나라가 어둡다고들 이야기하는 요즈음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손에 촛불을 들고 한 줄기 빛으로 어둠을 조금씩 몰아내고 있다.

서 교수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가장 어두울 때 태양이 떠오릅니다. 이렇게 어두울 때 우리가 희망을 이야기해야 하죠”라며 힘주어 말했다.

진지하고 이론적인 서술은 그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가 택한 형식은 어른들이 가볍게, 또 재밌게 읽을 ‘동화’ 형식이었다.

그의 책은 신화에 가까운 설정으로 포문을 연다. 그가 꿈꾸는 이상적인 지도자상을 ‘시저’라는 주인공에 투영시키고, 이상적인 대한민국 사회를 시저가 통치하는 책 속의 대한민국으로 펼쳐낸다.

기존의 진부한 인물들과는 다른, 패러다임 전환의 결정체인 ‘시저’라는 인물은 선거, 관료주의, 교육, 경제, 복지정책, 외교, 통일까지 모든 영역에서 기존 패러다임을 전복시킨다.

서 교수는 말한다. “이전보다 우리 국민들이 정치에 높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분명해요. 여기서 우리가 더 나아가야 할 것은 대통령을 뽑을 때 포스터만 보고, 책자에 적힌 것만 보고 뽑지 말자는 거죠. 그건 눈 감고 뽑는 수준입니다”

서 교수는 “솔직히 말해 그나마 덜 나쁜 사람 뽑는 것이 지금 선거 아닌가요?”라며 반문했다. “우리가 나라를 이끌 지도자에 대해 분명한 꿈을 갖고 있어야 해요. 대한민국의 지도자는 어떠해야 한다는 분명한 이상이 국민들에게 있으면 그에 맞는 사람을 찾게 돼 있어요. 그런 사람을 발굴할 시스템을 만들게 되는 것이고요”

대한민국은 조기 대선을 치를 가능성이 높아져 가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그가 전하는 하나의 동화는 사회에 던져 줄 시사점이 여간 크지 않을 것이다.

책이 말하는 ‘희망’이 궁극적으로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패러다임만 전환하면 대한민국은 세계 중심 국가가 될 수 있다’라고 정리했다.

주인공 시저가 서 교수님과 상당히 닮은 면이 많다는 기자의 지적에는 “대통령은 할 만한 직업이 아니예요. 보셨잖아요? 옛날 요순시대처럼 하기 싫어서 도망 다니는 인물을 뽑아야 해요”라며 그가 생각하는 대통령상을 제시하기도 했다.
 

▲ 외교관 시절의 서용현 교수 (사진 가운데, 서용현 교수 제공)

청년들아, 너의 인생을 살라

청년들에게 조언을 해달라고 청했다. 그가 꺼낸 첫 이야기는 “긴 줄에 서지 말라”였다. “청년들이 남들의 인생을 살 생각만 한다”는 얘기다. “남들 다 가는 길, 남들 다 하려는 것만 쳐다보면 99%와 경쟁하고 자기 인생이 없단 말이지”라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청년들이 품어야 할 꿈은 ‘과연 내가 사회에 기여할 것이 있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있는가’와 ‘내가 남들을 배려하고 관용하는 큰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로 압축된다고 말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천천히 세상을 둘러보고 쫓기기 말고 여유롭게, 어떤 것에도 쫄지 않으면 공부도, 일도 다 잘되게 돼 있어요”라고 장담했다.

서 교수는 앞으로의 세상에서 경쟁력은 단연코 ‘생각’이 된다고 내다봤다. 다들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판에 박힌 생각만 하는 사이에서 ‘창의적인 생각’을 한다면 그 자체가 경쟁력이라는 것.

다만 쪼잔한 생각, 잔 꾀 부리는 생각, 솔직하지 못하게 변명할 생각은 그에 해당하지 않는다. 자신의 꿈과 미션을 펼치는 데만 집중하여 자유롭게 생각할 것을 당부했다.

끝으로 서 교수는 ‘사랑하는 마음’을 꼽았다. 앞으로는 지식의 시대가 아닌 관계의 시대이므로, 다소 철학적이지만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모든 사람을 하늘 같이 보는(인내천)’ 사람은 성공 안 하려 해도 성공한다고 말했다.

상대에 관계없이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은 누구라도 친구로 만들 수 있고, 그런 사람이 내면에 형성하고 있는 건강한 자신감과 프라이드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호감과 신뢰를 얻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서 교수는 이러한 ‘사랑’이야말로 그가 본 중 가장 ‘무적의 경쟁력’이자 ‘성공의 보증수표’라고 전했다.

인터뷰 김주미 기자, 사진 강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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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2018-03-02 14:19:20
서교수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haaappy 2017-07-01 18:33:31
교수님 홧팅 알불사 홧팅! 꿈꾸는 자들의 진정한 스승님, :)

땡스. 2017-02-13 20:06:37
글 잘 읽었습니다.. 공부가 하나도 안되고, 답답해서 칼럼좀 찾아보다가 발견했네요.ㅎ
좀 더 많은 글과,현실적으로 지속적인 조언 나눠주세요.

꼰대 2016-12-22 16:58:40
개꼰대.. 이래라 저래라... 하지말고 말년 계획이나 잘세우소

서용현교수님 2016-12-07 00:42:48
수업도 잼있고 교수님의 세련된 시각도 배울 수 있어서 넘 좋아요*_*/ 교수님 파잇팅 건강 조심하시구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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