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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새로운 희망을 찾아서 : 공화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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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새로운 희망을 찾아서 : 공화주의
  • 신희섭
  • 승인 2016.12.02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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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절망이 깊을 때 희망이 조용히 찾아온다. 겨울의 두꺼운 얼음은 밑에 조용히 흐르는 작은 물줄기가 깨뜨린다. 움트는 꽃봉오리를 겨울의 찬 바람이 막을 수 없듯이 절망은 희망을 이길 수 없다.

2016년 현재 우리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공화국으로 이보다 더 큰 문제들도 헤쳐왔다. 깊은 생채기를 남겼지만 우리에게 희망의 싹은 있다. 절망이 깊을수록 희망의 싹도 커지고 있다.

절망의 중심에 대통령과 조언자들이 있다.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는 역시나 였다. 다시 한 번 지도자의 모호한 발언은 문제를 다시 키우고 있다. 그리고 사과와 대책을 기대하는 이들에 대해 날아오는 말들은 “어느 별에서 왔나?”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의도하지 않게” 우리 역사에 기여하고 있다. 더 큰 절망을 주고 그럴수록 희망을 더욱 꿈꾸게 한다.

대통령의 현재 상황의 대처는 놀라운 일관성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형으로 원칙과 소신. 현재형으로 철학부재와 상황판단 장애. 하야로 인한 진보정권수립가능성과 임기변동의 개헌과 불명예퇴진 회피에 대한 조언이 주변에서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보수의 아이콘인 아버지 박정희의 역사를 무너뜨리면 안 된다는 확신에 찬 조언자들도 있을 것이다. 현 대통령이 어찌 되었든 보수세력의 후사를 도모하기 위해서 박정희라는 지도자는 보호되어야 한다는 정치적 판단도 있을 것이다. 한 해만 살고 말 것이 아니기에 현재 국민적 감정과 위반되더라도 이런 조언과 정치적 판단은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행동 역시 “의도하지 않게” 한국의 정치발전에 기여한다.

우리는 대통령에 대한 비판과 비난을 넘어서야 한다. 좀 더 명정한 눈과 좀 더 냉철한 마음으로 이 사태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번 사태에 핵심에는 ‘정치사회화’가 있다. 이번 국정농단사태를 일으킨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대통령의 담화와 대응으로 유추해볼 때 중요한 원인의 하나는 대통령이 정치사회화를 잘못 했다는 것이다. 정치사회화란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을 배우는 것이다. 사회화의 정치적 버전이다. 공동체의 운영과 원리에 대한 인식, 공동체에서 자신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인식들을 만드는 것이다.

단순히 이야기 하면 현 대통령은 아버지 대통령으로부터 정치교육을 잘 못 받았다는 것이다. 인간적인 면에서 보면 박근혜대통령은 인간 한 사람으로 경험하기 어려운 경험들을 했다. 아버지가 1961년 5,16 쿠테타로 군력을 잡았을 때 1952년 생인 박근혜의 나이는 우리나이로 10살이었다. 1974년 어머니가 서거할 때 나이는 우리나이로 23살이었고 1979년 아버지가 서거할 때는 28살이었다. 이론적으로 보면 정치사회화에 있어서 정치에 대한 인식이 자리를 잡아가는 10대 중반부터 20대 중엽까지가 중요하다. 이 시기의 경험이 정치적 태도를 만든다. 인간적인 면에서 인간 박근혜의 10대에서 20대까지의 파란만장한 개인사는 안타깝고 측은하다. 그러나 정치지도자로서 이 경험은 대통령이 되고자 할 때 대통령이 되었을 때는 다른 문제이다.

살아있는 이에 대한 평가가 공정할 리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을 유추해 볼 때 박근혜대통령은 이시기 당시 대통령인 아버지로부터 정치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을 것이란 점이다. 1972년 유신 때 21살이었을 박근혜가 대학과 세상에서 만난 그림이 무엇이었겠는가? 아버지의 권력유지방식과 세상의 유신거부사이에서 무엇을 배웠겠는가? 국민들의 마음이 떠나는 상황에서 과연 아버지는 딸에게 무엇을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교육했겠는가?

군인박정희에서 대통령박정희가 되면서 만든 정당이 민주공화당이다. 한국의 정당들이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정당명칭은 정확히 정당이 지향하는 것의 반대를 이야기한다. ‘열린우리당’이 그리 열려있는 정당이 아니었고 ‘한나라당’이 하나의 국가를 지향하지 않았으며 ‘새누리당’이 새로운 정치를 하지 않는 것처럼 당시 ‘민주공화당’도 민주주의를 가장 중시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공화주의 원리에 충실하지 않았다. 지금도 이해하기 어려운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에 대한 교육이 과연 대통령으로 하여금 자식들에게 교육이 되었을까?

박근혜대통령은 민주주의에서 ‘주인-대리인’의 관계를 국민들이 이해하는 것과 달리 이해하는 듯하다.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본인이 아니면 국가가 잘 안돌아간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의 국가와 자신에 대한 인식은 국가를 위한 투사로서 자신을 바라보는 ‘잔다르크 증후군’일 수도 있다. 아니면 모든 질곡을 이겨내고 아름다운 결론을 맞이하는 드라마 여주인공처럼 느끼는 ‘대장금증후군’일 수도 있다.

정치사회화가 문제의 한 가지 이유라면 그 정치사회화가 이 시대 한 가지 희망이 될 것이다. 정치사회화의 두 가지 측면인 문화와 철학을 그 근거로 들 수 있다. 대한민국의 문화는 과거보다 굉장히 여유로워졌고 관대해졌다. 광장에서 보이는 풍자. 촌철살인의 댓글과 위트. 복잡한 문제의 단순화. 유머로 분노를 담아내는 능력. 여럿이 이룰 수 있는 변화에 대한 믿음. 어려운 상황에서 개인이 아닌 우리를 생각하는 정의감.

한편 철학도 우리의 희망이다. 우리는 지금 공화주의를 우리가 학습하고 있다. 단순히 다수의 지배 원리인 민주주의만이 아니라 우리국가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공화주의를 배우고 있다. 다수결주의의 민주주의가 저지를 수 있는 지도자 선출의 실수나 지도자 견제의 실패를 공화주의는 무엇이 국가이어야 하며 공공선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로 다시 생각하게 한다. 대통령이 사적이익을 취하지 않았다고 강변하는 그 순간 공화국에서 사적이익과 공적이익의 구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운다. 이것은 권위주의 시절 국가가 나서서 공익을 명분으로 기업에 헌금을 강요하던 시절의 공화주의가 아니다.

한국에서 공화주의 역사와 전통은 부족하다. 따라서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는 정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날카로운 계급 대립 위에서 공동체 분열을 경험했던 그리스의 아테네, 마키아벨리의 이태리, 루소의 프랑스가 타협책으로 내세운 공화주의를 배울 기회가 우리에게는 별로 없었다. 대신 국가의 독립과 국가건설과 산업화의 논리로 계급 대립은 감춰졌고 공익은 지도자들의 사익의 위장막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공화주의의 ‘우리 조국’과 ‘우리 국가’는 그래서 분열되어 있었고 왜곡되어 있었다.

지금 우리는 제도적 민주주의의 문제들을 경험하고 있다. 정부의 부재. 지도자의 거짓말. 간신배들과 아첨꾼들로 둘러싸인 정책결정 메카니즘. 한편 이런 위기 지속은 우리 정치공동체를 우리 국가를 걱정하게 한다. 그리고 행동에 나서게 한다. 그것이 광장에서 이루어지거나 가정에서 가족들끼리 대화를 통해서 이루어지거나. 거리에서 우리공화국을 고치자고 하거나 일상에서 자신의 할 일을 성실하게 하거나. 그 과정들 전체에는 “우리”의 국가가 있다. 우리 국가를 걱정하면서 대한민국공화국의 시민들은 이 난국에서 조금씩 희망을 만들어 가고 있다.

오늘은 희망의 12월 1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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